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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2. 10:12
신미경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든 꼭 지키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 좋은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 이 두가지만 제대로 충족된다면 살아가는데 별다른 불만이 없을 상당히 단순하고 동물적인 욕구다.만족스러운 생활의 영양분은 몸과 마음 챙김에 있다. 마음에 거슬리는게 많고 고민이 많을 때는 편안하게 자기 어렵다.볕을 쬐며 간단히 식사를 할 때면 지금은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한다. 나를 찾고 내면의 평화를 찾아 멀리 떠날 필요가 없어진 건 지금 누리는 시간이 흡족해서다.수집하고 있는 물건은 지금 내가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가장 간결하고 명확한 증거물. 사람은 사랑에 빠진 대상에 시간과 돈을 쓰기 마련이고 많은 경험과 시도는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주는 비옥한 토양이다.롤모델은 정해지지 않은 인생에 방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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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280일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 09:15
전혜진진료실 쪽으로 걸어가던 지원의 누넹,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임신한 여자와, 임신이 안 되는 여자와, 임신을 기다리는 여자들이 같은 공간 안에 모여 있다. (중략)그런데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은 여기 와 있는데, 아빠가 되려는 남자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건데.눈 앞에서 수많은 문들이, 그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손톱만큼씩이라도 열어 두었던 것들이, 모두 쾅 하고 일시에 닫히는 기분이 들었다.만약 우리에게 좀 더 보편적인 복지가 주어진다면,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기회들과, 조금 더 넓은 사회 안전망이 생겨난다면. 원한다면 계속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이 주어진다면.그럼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을까.이렇게 많은 위험과 변화가 수반되는 일인데, 이 많은 증상들 중에 어떤 일이 자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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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바깥은 여름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 09:07
김애란입동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 했다. 명의만 내 것일 뿐 여전히 내 집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십여 년간 셋방을 보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는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한 자부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아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닌 피곤도 겹쳐 있었다. 노찬성과 에반손바닥에 고인 땀을 보니 문득 에반을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손바닥 위 반짝이던 얼음과 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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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 08:46
박완서p6.나의 생생한 기억의 공간을 받아줄 다음 세대가 있다는 건 작가로서 누리는 특권이 아닐 수 없다.p30.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p41.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성냥불 켜는 걸 두려워해서 불편한 적도 많았지만, 할아버지 담뱃불을 못 붙여 드렸을 때가 가장 슬펐다. 할아버지를 위해서 무언가 내 속의 한계 같은 걸 박차 보려고 허둥대면서도 그렇게 안 되던 조바심과, 난 왜 이렇게 못났을까 싶은 자기 혐오 등, 복잡한 심리적 갈등까지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p89.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로 달개비 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중략) 나는 마치 상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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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코리안 티처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 08:31
서수진봄학기 - 선이선이는 학생들의 이름을 소리 내 읽어보았다. 원래 이름에서 너무 멀어져버린 것 같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선이는 그 순간 새로 시작한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월급을 떼먹는 악덕 사장에게 따질 수 있도록 한국어를 익혀야 한다. 비인간적인 욕설을 할 때 알아챌 수 있도록, 불법적인 시급을 줄 때 항의할 수 있도록, 아니, 처음부터 그런 곳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름 학기 - 미주고모들이 미주 흉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못됐으니까 혼자 씩씩하게 잘 사는 거야"라고 미주를 두둔해줄 때는 기분이 좋기도 했다.나는 너와 같은 남자들을 안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 그렇게 해서 여자를 겁주는 남자들. 여선생을, 여직원을 다르게 분류하고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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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여름의 빌라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30. 13:30
백수린 시간의 궤적나는 서울에서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경험해볼 생각이었고, 더이상은 후회로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눈에 언니는 주저함이 없고, 용감하고, 언제나 반짝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용감한 게 아니야. 단지 그러는 척 하는 거지. 척을 하다보면 그래지기도 하니까.""우리는 전부를 걸고 낯선 나라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 만큼 용기를 내본 적 있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걸 찾을 줄 아는 사람이야."창 밖을 다시 바라봤다. 이제 바깥은 먹색으로 가득했고, 어둠 속에서 흰 거품만이 주기적으로 부서져 내렸다. 완벽히 새로운 삶이라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나자 나는 완벽한 유배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러자 알 수 없는 패배감이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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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관통하는 마음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30. 13:09
전우진고작 탈모 때문에 서울 마포에 있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안성에 있는 소기업을 이직하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혹시 근배가 암이라도 걸린 건가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남자에게 탈모가 암만큼 견디기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세월은 사람을 가져갔다.근배가 마음의 감옥에 갇힌 것도, 어느날 갑자기 감옥에서 나온 것도 근배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 때 근배는 독심술을 하는 것이 저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처음에는 제목이 모녀의 이야기를 뜻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소설 속 등장인물의 모든 이야기를 의미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미용실 아주머니, 아니 언니가 무릎팍 도사나 선녀보살 같은 느낌이라 좋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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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독고솜에게 반하면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30. 13:04
허진희그 애들을 비웃을 생각은 없다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약하다는 사실을. 그 애들은 노력하기 싫다거나 노력해 봤자 안 된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강해지길 포기해 버렸다.그러다 이제는 자기 힘을 돌려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결국 각자 자리가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 왕이 되길 원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생각만해도 골치 아프다.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고모 말대로 내 나이가 그런 친구를 사귀기 좋은 나이인지는 몰라도 내게 그런 친구가 생긴 건 분명했다. 비밀스럽고 특별한 친구, 독고솜. 그렇게 생각하자 그런 친구를 둔 나 자신도 비밀스럽고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왠지 용기가 났다. 비밀스럽고 특별한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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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발해고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30. 12:51
유득공유득공과 발해고p18.그는 역사가라기보다는 시민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의 역사 인식은 문학론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북학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훌륭한 시를 짓기 위해서는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문학 작품들을 섭협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런 가운데 우리 역사와 관련된 사료에도 주목하게 되었다.p21.그가 북방의 역사에 주목하게 된 것은 나약해져 버린 조선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도 무관하지 않다.p28.그가 사학사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문에 나타난 혁신적인 발해관 때문이다. 성해응의 서문p36.공께서 정력을 쏟아 고증하고 연구하던 이 책을 지은 것은, 본디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자 한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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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N.P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26. 20:40
요시모토 바나나p52.모르겠다. 이런 때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무언가가 오기를, 무슨 일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p109.묘한 기분이다.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사별도 하고,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가노라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엇비슷하게 여겨진다. 좋고 나쁘고 하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다만, 나쁜 기억이 늘어나는게 겁날 뿐이다.p133.밤은 스이를 닮았다. 낮에 생각하면 어렴풋하고, 대단할 것 없이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밤이 찾아오면, 그 어둠의 피부 감촉이란,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순수다.p142."타인의 문장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더듬어 가는 셈이잖아.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자기 자신이 집필하듯이. 그러면 어느 틈엔가 타인의 사고 회로에 동조하게 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