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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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3. 24. 10:00
백수린* 창비 1부. 나의 작고 환한 밤장소의 기억, 기억의 장소p13.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행위가 관념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것들, 물질성이랄지 육체성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p14.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p21.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놓는다. 나의 이웃들p31.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많은 비밀들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통제하려 한들 삶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는 것을 안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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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반통의 물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7. 25. 14:49
나희덕 (시인)* 창비시인의 산문은 읽을 때마다 시를 읽는 기분이다.(★) 개인 생각 및 의견 P5.소가 자기도 모르게 내는 울음소리가 시라면, 산문은 삶이라는 뻣센 지푸라기를 씹고 도 씹는 되새김질 같은 거라고 생각해왔다.P7.그래서 이 책 속에는 ‘질문들’은 있지만 ‘대답들’은 없고 ‘순간들’은 있지만 ‘보루들’은 없다. 그 대신 나를 지나간, 또는 내가 지나온 ‘나무들’과 ‘사람들’이 있다. 고단한 삶 속에 혼자 내던져진 것 같았던 날들도 실은 그들이 베푸는 그늘 아래 있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그 나무들과 사람들에게 이 모자란 책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제 1부. 순간들일몰 무렵P14.죽음에 대한 의식이 없어도 죽음을 체험할 수 있고, 삶을 다 겪지 않고도 삶의 조건들에 대해 체득할 수 있다는 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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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2. 3. 08:16
정세랑* 창비할머니는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고 일을 할 수 있는 몸인 걸 자랑스러워했다. 뼈가 약한 다른 할머니들을 안쓰러워 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몸에 가지는 그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나는 할머니가 잘 때 종종 앓는 소리를 낸다는 걸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고통을 모른 척 했고, 가난을 모른 척 했다. 한 끗이 모자랐다. 다른 사람들의 평도 그랬고 나 자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도 기술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 한 끗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그 구멍에서 신경질이 솟구쳤다.그냥 신경질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신경질을 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제대로 신경질을 내본 적이. (중략) 내가 먼저 구기고 숨기고 모른척 했던 신경질이었다. 화를 낸 적은 있었어도 신경질을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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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옥상에서 만나요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26. 14:52
정세랑* 창비여자는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바퀴벌레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일부러 야근을 했고, 일찍 퇴근한 날은 까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중략) 큰 돈을 들인 집에 들어가기 싫다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났다. 바퀴벌레를 나몰라라 하는 남자에게도 화가 났다. 그런 상태에서 자잘한 결혼 준비를 혼자서 맡아 하다가, 결혼식 이틀 전에 터지고 말았다. "지난 한달 같은 날들이 이어지느니 여기서 멈추는 게 낫겠어"남자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고 썩은 싱크대를 맨손으로 뜯어내며 사과했다. 여자는 잠을 깊게 자지 못해 상한 얼굴로 드레스를 입었다. (★)여러 에피소드 중 위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던 것은 나와 동일한 상황이라기 보다는 남편의 대처 방식이 그 즈음에 매우 비슷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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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이만큼 가까이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19. 11:03
정세랑* 창비 p14.사람들은 커다란 카메라를 보면 잠시 긴장하지만, 대충 내려놓고 괴어 놓으면 이내 잊어버린다. 동영상을 찍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자연스럽게 웃고 이야기 한다. p26."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수미한테 그렇게 말한 건 민웅이었다. 마치 "그 가수 앨범의 모든 트랙을 들을 필요는 없어, 좋아하는 노래만 들어" 정도의 말을 하듯 가볍게 말했다. 민웅이가 아니면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 말을, 사람을 구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민웅이었다. p91.그렇구나,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란 거 아주 쉽게 비루해지는구나. 아니, 웬만해서는 비루함을 피할 수 없구나. p93.인정하면 많은 것들이 편안해진다고 하던데, 정말이다.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