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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옥상에서 만나요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26. 14:52
정세랑
여자는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바퀴벌레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일부러 야근을 했고, 일찍 퇴근한 날은 까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중략) 큰 돈을 들인 집에 들어가기 싫다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났다. 바퀴벌레를 나몰라라 하는 남자에게도 화가 났다. 그런 상태에서 자잘한 결혼 준비를 혼자서 맡아 하다가, 결혼식 이틀 전에 터지고 말았다.
"지난 한달 같은 날들이 이어지느니 여기서 멈추는 게 낫겠어"
남자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고 썩은 싱크대를 맨손으로 뜯어내며 사과했다. 여자는 잠을 깊게 자지 못해 상한 얼굴로 드레스를 입었다.(★)
여러 에피소드 중 위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던 것은 나와 동일한 상황이라기 보다는 남편의 대처 방식이 그 즈음에 매우 비슷했던 적이 있어서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돌려 말하면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남편의 모습에 결국은 내가 극도의 감정 표현을 해야만 (화가 되든 슬픔이 되든) 이해를 하는 모습이 사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결국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또 나 역시 잠시 잊게 된다. 소설 책을 읽으면서 삶의 모습에 이렇게 깊은 공감을 하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