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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8. 이만큼 가까이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19. 11:03

    정세랑
     

    p14.
    사람들은 커다란 카메라를 보면 잠시 긴장하지만, 대충 내려놓고 괴어 놓으면 이내 잊어버린다. 동영상을 찍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자연스럽게 웃고 이야기 한다.

     

    p26.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
    수미한테 그렇게 말한 건 민웅이었다. 마치 "그 가수 앨범의 모든 트랙을 들을 필요는 없어, 좋아하는 노래만 들어" 정도의 말을 하듯 가볍게 말했다. 민웅이가 아니면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 말을, 사람을 구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민웅이었다.

     

    p91.
    그렇구나,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란 거 아주 쉽게 비루해지는구나. 아니, 웬만해서는 비루함을 피할 수 없구나.

     

    p93.
    인정하면 많은 것들이 편안해진다고 하던데, 정말이다.

     

    p108.
    그러나 사실 불운은 늘 기분 나쁘게 도사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잊으면 말도 안되게 끔찍한 짓을 저질러 우리를 환기 시킨다. 아주 가까이에 있어. 이만큼 널 흔들어놓을 수 있어. 쉽게 죽일 수도 있어. 그런 식으로 난데없이 공격 받으며 살아가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런 불운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기도 하다. 

     

    p170.
    하지만 현실에서 어떤 지독한 사건이 실제로는 끝나지 않았는데 법제적인 차원에서 끝나버린다면 그건 어떤 불일치감으로 남는다. 분노나 억울함 같은 게 아니라 불일치 감이 잘 낫지 않는 습진처럼 남았다.

     

    p249.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간 사람, 있다가 없어진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사람, 업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사람, 없느니만도 못한 사람, 있을 땐 있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엇떤 사람,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 아무데도 없었던 사람, 있는 동시에 없는 사람, 오로지 있는 사람, 도무지 없는 사람,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람, 없다는 걸 확인 시켜주지 않는 사람, 있어야 할 데 없는 사람, 없어야 할 데 있는 사람...... 우리는 언제고 그중 하나, 혹은 둘에 해당되었다.

     
    (★)
    항상 상상력 가득한 소설을 쓰는 그녀가 쓰는 일상적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이 생겼다. 읽다보면 머릿 속으로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이 펼쳐진다. 나는 중요한 고비마다 이사나 학교를 멀리 다녀 동네 친구 개념이 없다. 그나마 최근까지 연락하는 건 고등학교 친구 일부와 대학교 친구 일부. 원래도 사람들이랑 북적북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다가 (내가 쾌활하다고 아는 사람들은 내가 에너지를 소비해가며 만들어가는 나의 거짓된 모습),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척 하는 연기는 나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을 만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기운이 없다. 집에서 이런 내 모습을 보는 건 나의 가족과 이제는 남편뿐. 어디선간 정신과 및 심리학 전문가들이 말을 하던데 나와 같은 사람은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라서 집순이 타입이라고 했던 거 같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소설 속 주인공이 부러운 건, 시절을 공유할 누군가들이 있다는 것.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끈끈해진 동지애 같은 느낌을 나는 어쩌면 남편과 그리고 아직까지 내 주변에 남아 있는 내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지 모른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