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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청기와 주유소 씨름 기담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2. 3. 08:16
정세랑
할머니는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고 일을 할 수 있는 몸인 걸 자랑스러워했다. 뼈가 약한 다른 할머니들을 안쓰러워 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몸에 가지는 그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 나는 할머니가 잘 때 종종 앓는 소리를 낸다는 걸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고통을 모른 척 했고, 가난을 모른 척 했다.
한 끗이 모자랐다. 다른 사람들의 평도 그랬고 나 자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도 기술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 한 끗은 대체 뭐였을까?
그리고 그 구멍에서 신경질이 솟구쳤다.
그냥 신경질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신경질을 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제대로 신경질을 내본 적이. (중략) 내가 먼저 구기고 숨기고 모른척 했던 신경질이었다. 화를 낸 적은 있었어도 신경질을 낸 적은 없었다.(★)
구전과 현대 소설이 얽혀다고 할까? 그림과 함께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 소설이 되는 것, 이 것이 작가의 힘인 것 같다. 정세랑 님의 모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능력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