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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1. 제철행복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2. 4. 10:00
김신지
* 인플루엔셜
들어가며. 당신만의 연례 행사가 생기기를
p4.
늘 고단했으므로 어디든 무엇이든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낯서 도시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건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뿐이었다.p5.
눈아프이 계절을 바라보고 있으면 후회하느라 과거에, 걱정하느라 미래에 가 있는 마음을 계속 현재로 데려올 수 있었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p7.
절기(節氣)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것'이라는 기본 뜻 아래 또 다른 뜻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p11. (요약)
24절기
- 지구의 공전이 지구에 있는 관측자에겐 태양이 이동하는 듯 보임.
- 황도(천구상에서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 한바퀴 1360˚/15˚=24절기
- 계절 별 각각 여섯 절기, 한 절기당 15일, 한달에 두번.
1월 소한, 대한 2월 입춘, 우수 3월 경칩, 춘분 4월 청명, 곡우 5월 입하, 소만 6월 망종, 하지 7월 소서, 대서 8월 입추, 처서 9월 백로, 추분 10월 한로, 상강 11월 입동, 소설 12월 대설, 동지
- 하루가 아닌 보름 남짓 (달력 표시일은 시작일)
- 우리 현실에 맞춘 계절력 (중국에서 전해진 24절기를 세종이 <칠정산>에서 한양의 위치와 기후에 맞게 수정)1부. 봄, 봄비에 깨어나는 계절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춘 (立 설 입 春 봄 춘) : 2월 4일 무렵, 봄이 일어서기 시작하는 한 해의 첫 번째 절기
꼬박 꼬박 봄이 오듯이, 희망할 것 - 입춘엔 깨끗한 희망이 제철
p24.
내게 입절기는 늘 '배움'과 '마중'의 시간이다.p30.
스스로 몸을 움직여 만드렁낸 훈기가 그 밤 추위로부터 그를 지켰듯이, 마음에 품은 온기가 사는 내내 그 자신을 지켜줄 테니.p31.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앞두었던 옛 사람들의 마음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는 사실이 못내 좋다. 요행을 바라기보다 삶에 성의를 다하며 좋은 기분을 챙기고, 겨우내 언 마음을 스스로 녹이려 했던 사람들. 더 좋은 일이 생기기를,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기쁜 일이 찾아오기를...... 그 바람을 행동으로 옮기며 오지 않은 시간에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보는 마음, 우리는 오랜 세월 미신이 아니라 그 마음을 물려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우수 (雨 비 우 水 물 수) : 2월 19일 무렵,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때
언제나 봄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 우수엔 이른 봄나물이 제철
p40.
절기는 공부해서 익히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며 내 곁의 계절을 감각하는 일이다.경칩 (驚 놀랄 경 蟄 겨울잠 잘 칩) : 3월 5일 무렵, 천둥소리에 놀라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봄
일어났어? 자연이 묻는 말에 답할 시간 - 경칩엔 봄맞이 기지개가 제철
p52.
절기가 관찰과 기록의 결과물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벽에 걸어둘 시계도 달력도 없던 시절, 옛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계절의 흐름을 가늠했다는 게 잊혀가는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춘분 (春 봄 춘 分 나눌 분) : 3월 20일 무렵,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봄날
덤불 속에, 가지 끝에 숨겨둔 봄의 쪽지 - 춘분엔 '봄을 찾기' 산책이 제철
p62.
말하자면 춘분 - 하지 - 추분 - 동지는 해의 운행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의 사계절'이고, 이로부터 한 달 반 뒤 해의 영향이 땅에 이르러 계절이 시작되는 입춘 - 입하 - 입추 - 입동은 '땅의 사계절'이다.* <뉘앙스>, 성동혁
p74.
빈손으로 돌아온다 생각했는데 내가 펼쳐본 쪽지에 적혀 있던 건 모두 나를 위한 답이었다.청명 (淸 맑을 청 明 밝을 명) : 4월 5일 무렵, 산과 들에 꽃이 피어나는 맑고 밝은 봄날
지금은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 - 청명엔 꽃달임이 제격
p80.
벚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덩달아 부풀어 오른다. 그런 해가 갈수록 귀해지는 감정이어서 또 봄을 기다리게 되고. 올해도 내 마음이 잘 부풀어 오르나 지켜본다. (중략) 그게 마치 마음이 살아 있다는 확인이라도 되는 것처럼.p85.
꽃은 내년에도 다시 필 테지만 올해는 올해 뿐이니까, 올해의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만개한 꽃 아래 우리의 즐거움도 만개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p85.
'이게 사는 건가'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곡우 (穀 곡식 곡 雨 비 우) : 4월 20일 무렵, 곡식을 기르는 봄비가 내리는 때
봄 산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 곡우엔 봄 산과 돌미나리전이 제철
p93.
'철들다'라는 말은 바로 이 절기, 제철을 알고 사는 것을 뜻했다. '철부지'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지 못하니 (不知) 어리석다는 의미. 때를 알아야 하는 건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p95.
제철 행복을 미리 심어두는 건, 시간이 나면 행복해지려 햇던 과거의 나와 작벼라고 생긴 습관이다. 그때 나는 '나중'을 믿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바쁜 오늘과 바쁜 내일밖에 살 수 없었다. (중략) 무얼 하든 무엇을 '하는 데'에는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중략) 내가 원하는 시간의 자리를 마련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당연히 행복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어렵게 찾은 방법은 두 가지. 오늘의 일과와 의무 사이에서 '틈틈이' 행복해지기, 그리고 앞날에 행복해지기, 그리고 앞날에 행복해질 시간을 '미리' 비워두기.p102.
어쩌면 좋은 계절의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을 줄여서 우정이라 부르는 건지도.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2부. 여름, 햇볕에 자라나는 계절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하 (立 설 입 夏 여름 하) : 5월 5일 무렵 싱그러운 여름에 들어서는 출발선
5월에 내리는 이토록 하얀 눈 - 입하엔 '입하얀꽃'이 제철
p118.
입하에는 그런 사람과 걷고 싶다. 절기가 뭐 어쨌다고, 하는 대신 하얀 꽃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오래 걸을 수 있는 사람과.소만 (小 작을 소 滿 가득찰 만) : 5월 20일 무렵 작은 것들이 점점 자라서 대지에 가득 차는 때
먼저 건네면 무조건 좋은 것 - 소만엔 싱거운 안부가 제철
p127.
생각해보면 안부가 원래 그런 일이다. 생각나서 연락하는 일.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p129.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본다.p131.
제대로 한 게 아니면 아예 안 할 거라 마음먹는 것보다야 가볍게라도 하는 게 낫다. (중략) 갈림길에서 헤어진 우리 삶이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당신을 떠올리고 있다는 말. 내 삶에 네 자리가 있다고 얘기해주는 일.망종 (芒 까끄라기 망 種 씨앗 종) : 6월 5일 무렵 까끄라기 곡식인 보리를 베고 모를 심는 시기
장마가 오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 - 망종엔 무얼 하든 바깥이 제철
p141.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기쁘게 몰두하는 일을 어쩌면 '마음을 쏟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일까. 무사히 잘 담아온 마음을 한군데다 와르르 쏟아붓는 시간 같다.* 무주산골 영화제 >> 한번 가보고 싶다.
p145.
내게 알맞은 행복을 찾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귀담아 듣는 데서부터 시작하니까. '이런 걸 보니 좋네, 여기 있으니 마음이 편하네, 이걸 먹으니 행복하네' 내가 언제 그렇게 느끼는지를 알아채고, '이런 걸 보고 싶다, 이런 데 가고 싶다, 이런 걸 먹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알아줄 때. 그 목록만으로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한 위로가 없기 때문이다.하지 (夏 여름 하 至 이를 지) : 6월 21일 무렵 여름에 이르러 낮이 가장 길어지는 날
해가 지지 않고 우리는 지치지 않고 - 하지엔 햇감자에 맥주가 제철
p153.
하지는 감자의 환갑날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하지가 지나면 감자알이 더 이상 굵어 지지 않고 줄기가 시들며 보리 또한 마른다 해서 선조들은 이를 두고 '감자 환갑' '보리 환갑'이라 불렀다.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을 지나는 셈이니 때를 넘기지 말고 수확해야 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소서 (小 작을 소 暑 더울 서) : 7월 7일 무렵 작은 더위 속에 장마가 찾아오는 때
비가 오면 달려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 소선엔 '비멍'이 제철
* <궁궐 걷는 법>, 이시우
p170.
창 밖으로 희우, 기쁜 비가 온다.대서 (大 큰 대 暑 더울 서) : 7월 22일 무렵 큰 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날
무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 - 대서엔 휴식의 자세가 제철
p179.
무리하면 지치는 법이니 지금 지쳐 있다면 그건 필시 무리했다는 뜻이리라.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한낮에 기어코 뙤약볕으로 나가듯 살았던 시간이 그땐 그게 내 삶을 위한 최선의 열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좋아하지도, 나를 좋아하지도, 삶을 좋아하지도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일상에 적색등이 켜진 것 같았다. 그럴 때 해야 하는 일은 하나였다. 신호를 무시하지 말고 멈추는 것. 무리한 몸과 마음이 회복될만큼 충분히 쉬어가는 것. 성실히 일했다면 그만큼 성실히 쉬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책을 읽는 내내 지나간 시절을 되돌아본다. 좋았던 기억도 있었지만 요 몇년 사이 각 절기마다의 즐거운 추억보다 고립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서 씁쓸해졌다. 한적한 동네에 살면서 장바구니 들고 장을 보러 다니고, 창을 열고 환기하면서 계절의 향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좋은 사람들과 풍경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지만 그냥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에 조금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