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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딸에 대하여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5. 16:01
김혜진
p10
탁자 아래서 딸애의 두발이 까닥거린다.
운동화의 뒤축이 비스듬하게 닳아 있었다.
올이 풀어진 청바지 밑단도 지저분하긴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인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얘는 정말 모르는 걸까. 곤궁한 처지, 게으른 성격, 무신경하고 둔한 품성 같은, 남들이 알 피룡가 없는 너무나 사적인 것들을 왜 이토록 쉽게 드러내 보이는 걸까. 왜 남들이 자신을 오해하도록 내버려두는 걸까. 고상함과 단정함. 말끔함과 청결함. 누구나 최고로 치는 그런 가치들을 왜 깡그리 무시하기만 하는 걸까. 나는 간신히 하고 싶은 말을 참는다.p36
딸애는 내 삶 속에서 생겨났다. 내 삶 속에서 태어나서 한동안은 조건없는 호의와 보살핌 속에서 자라난 존재. 그러나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매일 본다.p68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 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 뿐이다.(★)
어머니는 예민하고 세심하다. 딸은 무던한 듯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졌다. 딸의 여자친구(애인)은 엄마와 딸의 속성의 중간쯤이다. 딸은 엄마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외로운 삶 속에 한 때는 화려한 유명인이었지만, 이제는 기억도 없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사람의 간병인.
나는 연고도 없는 그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임종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무언가를 하겠다는 마음은 세상을 바꿔본다고 위험한 상황에 내몰린 딸 못지 않게 어머니 역시 가지고 있었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