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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 그녀 이름은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5. 15:51

    조남주

    p20
    같은 과장에게 성희롱 당하다 퇴사했다는 직원은 소진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때 자신이 조용히 덮고 넘어가지 않았다면 소진도 같은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라고 자책했다. 물론 소진은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덮고 넘어간 두번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세번재, 네번째, 다섯번째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p90
    결혼이라는게 어떤 걸까. 할 만한 걸까. 나는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의외로 여러 장면들이 기억났다. 오랜 상의 끝에 선택한 식탁 위 액자. 같은 영화를 보고 나누었던 너무 다른 의견들, 밤 산책 중 사먹은 삼각김밥과 컵라면, 내 승진 축하 파티. 나는 동생에게 결혼하라고 말했다.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지 말고 너로 살아"
    p95
    "눈치 없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언니 말이 맞아. 눈치가 없다는 것은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p118
    학교 행정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고 여전히 학부모들의 무료 봉사를 필요로 한다. 회사는 업무량이 너무 많고 어린아이 키우는 직원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남편은 당연히 육아가 아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는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극성'이라고 매도한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직장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서로 도우며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p153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는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어차피 질 싸움을 하느라 젊은 시절을 날려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다. 내 복직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긴 시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승객의 안전을 비용과 효율로 계산하지 않고, 여성의 일을 임시와 보조 업무로 제한하지 않으려는 싸움. 나는 여전히 젊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p273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단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태도와 가치관에 따라 얼굴이 변해기 때문인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는 내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기만 하지 않는다. 내 삶과 태도와 가치관이 주변의 사람들을, 조직을 더 넓게는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 
    몇년 전 사서 읽었던 책이지만, 친정에 있는 나의 책장을 정리하면서 한번 더 읽어보게 된 책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하면 될까?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이 책에서 나는 "성차별'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주제보다는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설을 여성의 시점에서, 여성의 경험에서 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에 나온 여성을 주제로 쓰여진 책들의 일부가 무조건 페미니즘 소설로 간주되어 작품을 읽어볼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 너무나 아깝다.
    첫번째 성희롱 주제의 단편도 나는 힘있는 남자 상사와 힘없는 여자 부하 사이의 성희롱 보다는 내부 고발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성별에 상관없이 조직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기득권의 눈총을 받으며, 조용히 피해 없고자 하는 다른 조직원들에게 원망을 듣는다. 모두 그것이 문제라고 인지하지는 않지만 (당사자들은 옳다고 생각하니),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환영 받지 못하는 슬픈 현실.
    눈치에 대한 대목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왜이리 눈치가 없는지 라고 툴툴거리게 만드는 사람들은 정말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 일을 한다. 눈치가 없이 태어났거나, 눈치를 봐야할 상황에 놓여져 본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그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삶이 가끔은 부러워졌다.
    워킹맘/워킹대디를 배려하는 직장 문화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시각이 있다. 물론, 배려는 좋은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역차별의 이슈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작가의 수필에서 가족의 날에 일찍 귀가하는 1인 가구에게 마치 너는 가족이 없는데 왜 일찍 가냐는 듯 (궁금해서인지 눈치주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물어보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의 스케줄과 일하는 부모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생기는 상황에서 조금 배려가 아니라, 배려가 필요하지 않는 유연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배려가 나쁜 것이 아니라, 배려하고 배려 받는 눈치 보는 관계를 만들지 않도록 인력 백업이나 위급사항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사전에 마련되어야 한다. 누구는 미안해 하고 누구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말이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마흔이 되었고,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요즘의 나의 상황에 나는 자꾸 넘어지고 있고, 누군가 일으켜 준다고 손을 내밀어도 귀찮아서 잡지도 않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건데 하는 생각. 후회되지 않은 40대를 보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