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
382.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3. 24. 10:00
백수린* 창비 1부. 나의 작고 환한 밤장소의 기억, 기억의 장소p13.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행위가 관념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것들, 물질성이랄지 육체성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p14.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p21.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놓는다. 나의 이웃들p31.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많은 비밀들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통제하려 한들 삶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는 것을 안다. 그 ..
-
215. 여름의 빌라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30. 13:30
백수린 시간의 궤적나는 서울에서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경험해볼 생각이었고, 더이상은 후회로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눈에 언니는 주저함이 없고, 용감하고, 언제나 반짝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용감한 게 아니야. 단지 그러는 척 하는 거지. 척을 하다보면 그래지기도 하니까.""우리는 전부를 걸고 낯선 나라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 만큼 용기를 내본 적 있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걸 찾을 줄 아는 사람이야."창 밖을 다시 바라봤다. 이제 바깥은 먹색으로 가득했고, 어둠 속에서 흰 거품만이 주기적으로 부서져 내렸다. 완벽히 새로운 삶이라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나자 나는 완벽한 유배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자각이 들었고, 그러자 알 수 없는 패배감이 가슴..
-
188. 친애하고, 친애하는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12. 10:37
백수린 p23.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스스로 되뇌긴 했지만 그 무렵 나는 내 자신이 실패자이자, 낯선 곳을 표류하는 낙오자가 되었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해진 일상이 있는 사람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들을 반복해 만날 때마다 누구나 속해 있는 현재라는 국가의 불법 체류자가 된 것 같은 과장된 감정에 사로 잡혔다. p26. 하지만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이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무리가 타인을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