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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 친애하고, 친애하는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12. 10:37

    백수린

    p23.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스스로 되뇌긴 했지만 그 무렵 나는 내 자신이 실패자이자, 낯선 곳을 표류하는 낙오자가 되었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해진 일상이 있는 사람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들을 반복해 만날 때마다 누구나 속해 있는 현재라는 국가의 불법 체류자가 된 것 같은 과장된 감정에 사로 잡혔다.
    p26.
    하지만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이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무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걸까?
    p35.
    "불안한 사람은 뭐든 확실한 것이 필요하잖아. 그게 미신이든, 음모론이든, 돈이든."
    p63.
    그 무렵 할머니는 하루에 한끼를 겨우 먹었고 미각을 거의 잃어 간을 잘 보지 못했다.
    p90.
    그리고 애써 눈물을 참기 위해 새파랗고 투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다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무언가, 삶의 무자비함이라든가, 가혹함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할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그럴 때마다 할머니에게 충분히 다정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쓸데없는 부분에서만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신에 대한 적의 같은 것들로 견딜 수가 없는 심정이 되었다.
    p118.
    우리는 타인이 하는 모든 말의 의도를 어떤 식으로든 알아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많은 경우 세상의 그 누구도 어떤 말의 - 심지어 자신이 한 말조차도 - 의도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p120.
    지금도 나는 강이 그 말을 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뜨거워지는데 그것은 그가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 그에게만 어렵게 드러냈던 나의 연약한 부분을 너무도 무심한 방식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일을 기억할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이다. 정상적인 형태의 행복이라는 관념이 허상일뿐인 것처럼. 물론 타인의 상처를 대하는 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의 말

    p147.
    이렇듯 기본적으로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3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만 읽히길 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짧은 소설이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삶과 죽음, 상처와 용서, 궁극적으로는 다정하고 연약한 인간들을 끝내 살게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

     

    (★)
    이 책을 선택한 건 제목과 깔끔한 표지 때문이다. 책을 이런 것으로도 선택하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가끔 책의 내용과 상관 없이 책 표지, 제목, 서체 등으로 책을 골라 읽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타자기로 친 것 같은 혹은 길쭉한 서체의 책을 좋아하지만 대다수는 책의 기본서체가 정해진 것처럼 모두 같은 글씨체인 것 같은 비슷비슷한 서체이기도 하지만...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생각났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아팠을 때 나는 엄마와 함께 병원을 자주 갔었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우리 집에서 며칠 함께 지냈던 그 시간이 가끔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보고싶다. 정말로...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