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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 아주 편안한 죽음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1. 3. 10:02

    시몬 드 보부아르 

    * 을유문화사 / 강초롱 옮김

    p12.
    불쌍한 엄마! 내가 모스크바에서 돌아와 같이 점심 식사를 한 게 5주 전이었다. 그때도 엄마의 안색은 여느 때처럼 형편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기분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 누구도 엄마 나이에 대해 오해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무척이나 쇠약해져 버린 일흔일곱 살 먹은 여자로 보였으니 말이다.
    p19.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p23.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는 놀랄 만큼 용기 있는 모습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남편의 죽음에 무척 슬퍼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 속에 매몰된 채 있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자유로워진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재정비했다.
    p41.
    이날밤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모두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슬픔에 잠겨 있을 때조차도 정신을 차린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절망감만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울고 잇는 듯 했다.
    p53.
    내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이 말은 사실 엄마에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엄마의 욕망이 그 자체로는 인정받지 못해 왔다는 걸 보여주는 말인 셈이다.
    p78.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자 최근 며칠간 느낀 모든 슬픔과 두려움이 어깨 위로 내려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암에 걸렸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던 듯 싶다. "수술을 받게 하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나는 엄마의 수술을 막지 못했다.
    p98.
    너 말이다, 나는 네가 무섭단다.
    엄마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한 이 말에는 그동안 그녀가 내게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p106.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 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p116.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오. 나를 죽여 달란 말이오.
    p119.
    엄마가 질책하듯 말했다. 
    오늘 하루를 살지 못했구나.
    며칠을 버리게 된 셈이잖니.
    엄마에게 매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p127.
    "의사들 말로는 촛불이 꺼지듯 돌아가셨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동생은 흐느끼며 말했다. 간병인이 답했다.
    "하지만 보호자분, 제가 보증하건대 어머니께서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p133.
    종교는 나나 어머니 모두에게 죽고 나서 거둘 성공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없었다. 천국에서든 지상에서든 영원불멸하길 꿈꾸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p138.
    엄마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운이 좋은 자의 죽음이었다.
    p152.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죠."
    이 말은 노인들을 슬프게 하고, 또 그들을 유배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몰아 넣는다. 그런데 자기가 죽을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p153.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해설. 타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 자기 자신과 화해하기

    - 강초롱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1. 보부아르에 대한 오해

    * <제 2의 성>

    p156.
    보부아르가 평생에 걸쳐 발전시켜 온 실존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지닌 독창성을 무시한 채, 그녀의 사상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단순히 요약 또는 반복한 결과물 그 이상의 것으로 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최근까지 대세를 이루어 왔기 때문이다.

    2. 윤리적 실존주의자

    (1) 작가로서의 형성 과정

    (★) 작가는 독서를 통한 가치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키우고, 경험의 긍정적 승화를 통해서 작가로 성장했다고 한다. 독서의 긍정적 효과와 어쩌면 올바른 방식을 실천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실제로 철학교수가 되기 위한 자격 시험을 준비했다고 하니, 그래서 존재에 대한 견해 묘사가 깊은 것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사르트르의 연인으로만 알고 있었고, 선정적(?) 소설의 작가로만 인지하게 된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2) 실존의 윤리에 대한 천착

    * 천착 (穿鑿) : 구멍을 뚫음, 어떤 원인이나 내용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 억지로 이치에 닿지 아니한 말을 함. >> 여기서는 두 번째 의미.

    p160.
    이렇게 인간 실존이 지닌 '비결정적인' 측면을 보부아르는 바로 애매하다고 표현했다. 
    타인의 존재는 주체로 존재하던 나를 객체로 전락시켜 나의 실존을 애매한 상태에 빠뜨리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자, 나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주된 방해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 <존재와 무> (1943) / 사르트르

    p160.
    즉 실존의 존재론적 원리를 규명하는 것에 기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는 달리,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는 인간이 윤리적 실존을 영위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하는 철학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실존주의적 윤리'라고 규정될 수 있다.
    p162.
    첫째, 타인과의 공존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실존 조건하에서 개별적인 실존 주체로서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둘째, 하지만 타인과의 공존이 서로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상생'의 수준으로 발전했을 때 개개인이 구현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는 확장될 수 있다. 셋째, 따라서 자유로운 주체로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그가 기울이는 모든 '존재론적' 노력들은 타인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식을 착기 위한 '윤리적' 노력들과 사실상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 이 작품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도하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소설 내에 묘사된 내용이 낯설지 않아 내 마음도 울렁거리는 것 같다.

    3. <아주 편안한 죽음> : 애도의 글쓰기가 지닌 윤리적 잠재력

    (1) 타자의 가시화

    p145.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 <불확실한 삶 :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 (Precarious Life :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 / 버틀러

    (2) 죽음의 가시화

    p168.
    반대로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항상 대비하고 계획해야 된다는 생각이며, 세계를 합리적이고 의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현대성이다.

    (3) 자기 기원과의 화해

    p174.
    반면 보부아르에게 중요한 것은 치료 그 자체가 아니라 어머니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4. 마치며

    p182.
    죽음은 그것을 경험하는 자에게 극단적인 공포와 고독감을 안겨 준다. 그러나 그 순간에 누군가 곁을 지키면서 이마에 손을 얹어 주고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 애쓸 때, 죽어 가는 이가 느낄 공포와 고독감, 고통은 조금이나마 완화될 것이다.

     

    (★)
    책을 읽다보니 엄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어느 한 의사가 했던 이야기도 생각난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입원을 하는 순간 급 상태가 나빠지면서 돌아가시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좁은 병실에서 운동량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음식 섭취도 줄어드는 악순환의 구조 때문이라고 말이다. 병원에 입원 치료를 하는 날 엄마는 온전히 침대에 누워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통증이 있어도 병원 복도를 약제를 꽂은 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그런 엄마가 더이상 치료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자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 그것 역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에서는 나이 드신 분에게 수술을 권하는 것도 너무 놀라웠고, 무책임(?)한 의사의 모습이 참... 할말이 많지만 접어두련다. 요즘에는 일흔 넘는 분들은 건강검진도 만류한다고 하는데... 수술을 하는 저 용기는... 마치 내가 어릴 때 수술실에 들어가서 결국 다시 덮고 나왔던 우리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더 들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지만, 사실 해설 부분을 읽는 것이 더 재밌었다. 역자가 해설을 써 놓은 부분을 보면서 내용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실존주의에 대해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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