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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1. 7. 10:00
무라카미 하루키
* 현대문학 / 양윤옥 옮김
제 1회.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
p12.
그처럼 어떤 일이든 전문이 아닌 쪽에 손을 대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단 달가운 얼굴은 하지 않습니다. 백혈구가 체내의 이물질을 배제하려고 하듯이 접근을 거부하려고 듭니다. (중략) 적어도 처음에는 상당히 반발이 심합니다. '그 분야'가 좁을수록, 전문적일수록, 그리고 권위적일수록, 사람들의 자부심이나 배타성도 강하고 거기서 날아오는 저항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p15.
소설이라는 건 누가 뭐라고 하든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 폭넓음이야말로 소설이 가진 소박하고도 위대한 에너지의 원천의 주용한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건 내가 보기에는 소설에게는 비방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입니다.제 2회. 소설가가 된 무렵
p35.
사회 전체에 아직 '틈새(niche)' 같은 게 꽤 많았던 시절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빈틈을 잘 찾아내면 그걸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p38.
그래도 만일 지금 당신이 뭔가 곤경에 처했고 그걸로 상당히 힘겨운 마음이 든다면 나로서는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그게 결실을 맺는 일이 될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위로가 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힘껏 전진해주십시오.p40.
말에는 확실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공정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됩니다. 말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제멋대로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p43.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 사는 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아고타 그리스토프, 헝가리
p52.
나에게 일본어는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는 도구입니다.p53.
소설을 쓸 때 '문장을 쓴다'기보다는 오히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습니다. 나는 그 감각을 지금도 소중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p58.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제 3회. 문학상에 대해서
p63.
하긴 똑같은 말이라도 예전에는 '문단에서 상대도 안해준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문단을 멀리한다'고 해주니까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p73.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경우, 구체적인 형태에 의한 게 아니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진실입니다. 문학작품의 질은 어디까지나 무형의 것이지만, 상이든 메달이든 그런 것이 주어지면 거기에 구체적인 형태가 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형태'에 눈길을 던질 수 있습니다.p77.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p84.
그처럼 문학상의 가치는 사람 사람마다 각각 달라집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입장이 있고 개인의 사정이 있고 개인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제 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 <화성의 인류학자>, 올리버색스
p97.
오리지낼리티는 그것이 실제로 살아 움직일 때는 좀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입니다.제 5회. 자, 뭘 써야 할까?
p137.
인간의 삶이란 얼핏 보기에는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실은 그런 흥미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줄줄이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키포인트입니다.제 6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 - 장편소설 쓰기
p150.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p162.
아무튼 고쳐 쓰는 데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화가 나든 말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참고하며 고쳐나갑니다. 조언은 중요합니다.제 7회.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業
p176.
하지만 어떤 장소가 됐든 인간이 소설을 쓰려고 하는 곳은 모두 다 밀실이고 이동식 서재입니다.제 8회. 학교에 대해서
p212.
언어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간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 살아 있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라서 거기에는 반드시 유연성(flexibility)이 있어야 합니다.p219.
얘기가 약간 거창해졌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일본의 교육 시스템의 모순은 그대로 사회 시스템의 모순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혹은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요. 어쩄든 이제 그런 모순을 더 이상 방치해둘 만한 여유가 없는 지점까지 와버렸습니다.제 9회.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
* <악령>, 도스도옙스키
p256.
새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항상 가슴이 두근두근 설랩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인물들을 만날까, 하고.제 10회. 누구를 위해 쓰는가?
제 11회. 해외에 나간다. 새로운 프런티어
p314.
나는 아직 발전 도상의 작가고, 나의 여지라고 할까 '발전 가능성'은 아직 (거의) 무한하게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제 12회. 이야기가 있는 곳 /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의 추억
p320.
소설가에게는 자신이 자신을 분석하기 시작하는 것만큼 부적절한 일도 없으니까요.p327.
이런 말을 하면 좀 문제가 될 것 같기는 한데, 나는 지금까지 그것에 필적할만한 확실한 격려의 감촉을 문학계에서는 한 본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나로서는 적잖이 유감스러운 일이고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물론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후기
p333.
다만 한 가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는 기본적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서건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는 그런 날들이 더 많아졌음 하는 생각이 든다. 꾸준히 무언가 한다는 건... 물론, 그 일이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도 나는 충분히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여러번 읽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처음에는 소설가라는 직업의 시작을, 이후에는 어떻게 보면 변명 아닌 변명을 읽는 듯 하여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장강명 씨의 비슷한 제목의 책을 빌려서 읽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공통된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아서 그 부분 역시 흥미로웠다.
주변에서는 글을 써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런 인고의 고통을 감내할 정도의 끈기를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내 머리에는 다양한 생각이나 공상의 거리들이 있지만, 이를 글로 표현할 자신감은 없다. 나는 누군가의 비평을, 달고 단 호평조차도 받아들일 마음의 힘이 충분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서 어쩌면 익명 또는 필명의 힘을 빌어, 가면을 쓰고 더 자신있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가면 뒤에 숨어서 또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라면...
책을 읽다가 생각의 흐름은 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