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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 눈으로 만든 사람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12. 30. 10:00

    최은미

    * 문학동네

    보내는 이 

    p14. 
    나는 다만 진아씨 맞은편에 앉아서, 저렇게 여분의 소화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의 어떤 순간에 아주 나쁜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p26.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진아씨가 어떤 얘기를 해도 서운했고 어떤 얘기를 하지 않아도 서운했다. 겉으로는 티내지 않았다.
    p47.
    기약만 있다면 더 오래도 기다릴 수 있다고, 겨울이 다가온 창밖을 보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여기 우리 마주

    p51.
    수미는 자신의 재난지원금을 나에게 와서 썼다. 
    그리고 나는 지금 수미를 만날 수 없다.
    p70.
    나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마음 붙일 곳 없는 낮에 대해서. 눈을 붙여도 잠들 수 없는 밤에 대해서. 남편과 노동을 나누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에너지를 뺏긴 채로 '행복한 아이를 키워내는 다른 여자들'과 '편하게 사는 다른 여자들'을 가위눌리듯 떠올리던 것에 대해서.
    우리가 서로를 욕심 내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떻게 다시 고립되어갔는지, 그 외로웠던 봄에 대한 얘기를.

     

    눈으로 만든 사람

     

     

    나와 내담자

    p136.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
    기다리기로 한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자 속 집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담자를, 상담자는 기다린다.
    p145.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고 사는 것. 강수영이 그걸 얼마나 원하는지 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강수영에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한 번도 만지지 못하던 것들을 자신의 상자 안으로 가져오는 일이 얼마나 대담한 일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운내

    p186.
    지금 이곳엔 열다섯 칸의 밤이 있고 나는 그중 하나를 항상 비워둔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낮이든 밤이든, 나는 그 방에 불을 켜둔다.

     

    美山

    p204.
    매 순간, 나는 기도한다. 그리고 여전히 떠올린다.

     

    내게 내가 나일 그때

    p248.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타인으로부터도 자신으로부터도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p256.
    저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저는 이제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저는 제 비명을 저 혼자 듣고 있었을 뿐입니다.
    혼자 지르고 혼자 들고 잇었던 겁니다.

     

    11월행

    p292.
    "그애가 아무데도 없어. 내 결혼식 사진에만 있다."
    p300.
    은형은 멍한 표정으로 하은을 쳐다봤다. 아무리 되짚어보려고 해도,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은형은 기억나지 않았다.

     

    점등

    p327.
    민의 번호도 이미 다른 사람이 쓰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경에게는 민이 쓰던 번호가 민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처럼 느껴졌다.

     

    해설. 파열하며 새겨지는 사랑의 탄성 / 강지희 (문학평론가)

    1. 굴레를 넘어

    p340.
    그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불안과 허무가 아니라, 충만한 사랑이다. 환상적인 황홀경과 축축함은 동반하던 최은미의 파토스는 이제 누군가를 난폭하게 죽음으로 밀어넣는 대신, 자유로운 해방의 기운을 뿜어내며 삶을 구원하는 길을 찾아낸다.

    2. 짧고 외로운 낮잠 그리고 빛

    p342.
    이 상실의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두 시간성이 팽팽하게 병렬되는 방식이다. 한 축에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되찾은 시간'이 있다. 두 시간은 투쟁중이다.

    3. 허공을 가르는 길

    p350.
    하지만 폭력 생존기 3부작에서는 언어는 역으로 고통을 확장하고 안정된 정체성을 무너뜨린다. 고통이 언어 속으로 들어와 파묻히는 대신 언어를 타고 오르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나고, 일상에서 배당된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은 파열에 이른다.

    4. 만난적 없는 새로운 사랑의 얼굴

    p365.
    다른 여성 역시 견뎌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상대와 동일시하며 그에게 몰입해 들어감으로써 삶을 다시 날 선 감각으로 들여다보고, 자기 분열 끝에 파열되는 지점에 이르러야 끝나는 욕망이 여기에 있다.이 파열은 특정한 방식의 삶을 강요하는 세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며, 자신의 신체와 감정을 더이상 기존의 관점에 맞추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표명이다. 파열 끝에서 찾아온 고요 속에서 돌연 자신만이 선명해지는 그 충만한 슬픔이 바로 최은미가 새로 발견하고 있는 사랑의 정체다.

     

    작가의 말

    p369.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게 아닌 것들을 알고 있다.

     

    (★)
    최근에 많은 여성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읽다보면 같은 작가인가 싶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 글도 이전에 읽었던 여성 작가의 글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단편들이 우리의 일상을 너무 적나라게 드러냄으로써 나는 마치 한 사람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번째 작품 <보내는 이>를 처음에 읽을 때는 정말로 소심한 여자가 스토커 기질이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내용을 따라가다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등의 복잡한 유추를 했다. 하지만 진아가 아닌 지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나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관계에 집착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나도 예민한 편이긴 해서 가끔은 내가 말실수를 했나 곱씹거나 과한 공격을 받게 되면 다른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혹은 다수가 "네가 잘못한 것 아니야"라는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내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것은 없는지 곱씹는 편이긴 하다. 가끔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일 것인데....
    <여기 우리 마주>외 다른 소설에서는 마치 누군가 나를 관찰하고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발췌한 문구들은 지금의 나의 모습, 그리고 누군가 혹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 절망적인 상태의 나의 현상황 등을 그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말 읽기 힘들었던 <눈으로 만든 사람>은 읽는 내내 내가 괴로울 정도였는데... 정말인지 근친성폭력, 그저 손가락 이야기에 그 대상이 내 앞에 있었다면 나도 모르게 멱살을 잡고 뺨을 여러번 내려쳤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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