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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4. 단순한 진심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1. 5. 17. 20:44

    조해진

     

    p8.
    탯줄은 있었을까. 가끔 그런 의문이 들 때면 반사적으로 두 손을 배에 얹고 가만히 배꼽 근처를 더듬어 보곤 한다. 그러나 내 배꼽은 생모의 흔적일 뿐, 그녀의 손 끝 하나 재현할 수 없다. 무력한 증거, 고유성 없는 기호, 닫힌 통로...

     

    p17.
    이름은 집이니까요.

     

    p32. 
    40년만에 드디어 엄마를 찾았는데 보러가지 않았어요. 내가 찾던 사람은 생물학적인 엄마가 아니라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감정적인 차원의 엄마였나봐요.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이상의 엄마를 만나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아이를 버린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엄마 말이에요.

     

    p115. 
    몽펠리에로 오라는 리사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내게는 한량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었다.

     

    p126. 
    살아있다는 너의 신호, 세계를 향한 노크, 내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네는 작은 몸의 언어.
    첫 태동이었다.

     

    p213.
    먼 미래의 어느 날, 아마도 여느 때보다 깊은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 내 외로움은 노파의 오래된 하루를 빌려 그렇게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 것인지 노파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저쪽으로 전가되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전가되는 실타래 같은 외로움이. 인생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 밑바닥에 정제되어 남은 건 외롭고 쓰라린 것...
    미안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인생이야, 나의 아가

     

    (짧은 기록)
    읽다보면 소설이 아니라 산문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내가 주인공과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지 않아서 이 소설에서 다루는 감정의 선이 너무나도 정확하다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읽으면서 만약 나였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담담함이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노파와의 인연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태어나서 가지게 된 주인공의 여러 이름. 그녀의 말처럼 이름이 집이라면, 이사를 한번도 안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름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소설과 마찬가지로 내 주위에도 좋은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독서생활자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