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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손때 묻은 나의 부엌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9. 19:48
히라마쓰 요코
p11
오늘날은 꼭 쌀이 아니더라도 파스타와 빵처럼 주식으로 삼을 음식이 많지만, 아무리 그래도 쌀통 바닥이 보이면 마음 한 편이 적적해진다. 안그래도 바람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양철인데, 쌀이 줄면 더욱 처량해보여서 그걸 보는 나 또한 맥이 풀린다. 바로 이럴 때다. 쌀통 안에 든 쌀알 한톨한톨이 내 살림을 지탱해주는 구나, 깨닫는 때가.p30
'물건 욕심'은 아무리 눌러도 고개를 벌떡 쳐들고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와 같다. 취향 뚜렷한 사람한테는 천성이나 마찬가지다. 갖고 싶어, 갖고 싶어. 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갖고 싶어. 한 번 이런 상념에 사로잡히면 돌이킬 수 없다.p73
한 손가락의 의도를 재빨리 젓가락 끝에 전달하는데에는 프로고 아마추어고 없는 거구나.p100
찌개를 끓일 때에는 한국의 옹기 '뚝배기'로 해야 한다. 은은한 흙냄새가 나는 이 냄비로 해야 투박한 옛날 맛을 그대로 낼 수 있다.p113
르쿠르제란 프랑스어로 도가니라는 의미다. 공장 안으로 발을 한 걸음만 들여 놓아도 그 이름의 유래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p129
절물풍광불상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것이 자연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순간도 있다는 뜻이다. 만물의 은혜에는 바로 '지금'이라는 결실의 시기가 있고, 우리는 그걸 놓쳐서는 안된다는 의미다.p149
일본인에게 젓가락은 신과의 교제를 위한 도구이다. 원래 젓가락은 온갖 신에 가까운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진귀한 산해진미를 소중히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젓가락이 만물에 깃든 신과 사람을 매개해주는 것이다.p183
단정하고 작은 밥 공기에 갓지어 향이 좋은 밥을 수북하게 담는다. 어른 밥공기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오히려 이 한공기를 천천히 꼭꼭 씹어 먹겠다는 마음이 든다. 참 신기하게도, 다 먹어갈 즈음에는 감사하다는 기분까지 샘 솟는다.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우울하고 비참한 마음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다는 점이 어른을 위한 이 작은 밥 공기의 미덕이다.p237
신중히 고른 언어를 글로 쓴다는 행위는 지금 이 순간을 결산하는 일이다.p252
아, 기왕 수선을 한다면, 기왕 고쳐야 한다면 이전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싶다. 아, 고치지 말 걸. 깨진 그대로 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까봐 너무나도 두렵다.(★)
살림이 쉽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살림 전문가들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무엇이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꾸준하게 하는 것 자체를 나는 잘 못하는 것 같아서 항상 걱정인데, 살림 역시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나도 나의 아끼는 무언가를 위한 책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추신1. 나무 도마를 쓴다면 은행 나무 도마로 바꿀 것.
추신2. 삼나무 도시락통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