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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2. 이토록 평범한 미래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6. 20. 10:00

    김연수

    * 문학동네


    작가의 작가. 그런데, 다른 산문집을 봤으면서도 정작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읽다보니 이는 소설이 아닌, 누군가의 삶을 예시로 든 철학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을 때, 단순히 상황만 이해하는 단편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에는 소설 속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나라면 어떤 식으로 행동을 했을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줄거리로 축약해서 말해버리면 그냥 그런 일상의 이야기들이겠지만, 읽고 난 그 감정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

    (★) 개인 생각 및 의견


     

    이토록 평범한 미래

    p17.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 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p25.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에요.
    p33.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p40.
    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53.
    그다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정도 삶은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래서 그때는 네가 하는 말들이 다 부담스럽게 들렸나봐. 그때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었거든. 내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그 너머의 삶 같은 건 꿈꿔본 적도 없어.

    (★) 아이의 죽음...

    p54.
    그렇게 찾아간 곳 중 하나가 완도였다. 그 너머는 바다라 더이상 갈곳이 없었다. 그 바다 앞에서 울고 또 울고 난 뒤에야 그녀는 새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말했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수많은 밤들과 몇번의 계절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그녀는 혼자가 됐고, 이십대 초반에 세운 그녀의 인생 계획은 최종적으로 폐기됐다.

     

    진주의 결말

    p69.
    나는 인간에게 숨겨진 진심이 따로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70.
    나는 인간을 연민한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자명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인간들은 쉬지 않고 헛된 이야기를 만든다. 그 임시방편의 이야기에 진심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p95.
    정미가 죽은 뒤로 마음의 가장자리는 매 순간 조금씩 시간에 쓸려 과거로 떨어지고 있었다.

    * <바다의 일꾼들>, 빅토르 위고

    p100.
    이 미래의, 두렵지만 우리를 매혹시키는 아름다움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건 우리에게 밤이 찾아와 피로해진 우리 육체가 잠들 때다. 과거라는 이름의 유령들은 잠든 우리 곁을 지키지만, 이제 우리는 거기에 없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깨어난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바람이 필요하다. 새로운 바람은 새로운 감각을 불러온다. 그 감각을 통해 우리의 몸과 세계는 동시에 새로 태어난다. 

    (★)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야기"인 것일까?

    p112.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p118.
    지구상에 존재했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 그랬듯 그들의 인생에도 시간의 폭풍이 불어닥쳤고, 그렇게 그들은 겹겹이 쌓인 깊은 시간의 지층 속으로 파묻히고 있었다.

     

    엄마 없는 아이들

    p129.
    모든 것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정밀한 움직임이 명준을 안심시켰다. 완벽하다. 여기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명준 자신을 포함해서.
    p130.
    ... 우리의 얼굴은 유동한다. 흐르는 물처럼 시간에 따라 조금씩 과거의 얼굴에서 미래의 얼굴로 바뀌어 간다. 그렇게 우리의 얼굴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거기 희망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게 예술이 하는 일이라고도 배우는 표정으로 그 시간적 간극을 압축해 조명 아래에서 드러내 보인다. 현재의 얼굴에 과거를, 또 미래를 담고서. 얼굴의 유동적 가능성을 믿지 않으면 연기는 불가능하다.
    p135.
    누구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인생에 있는 법이다.
    p143.
    ... 상실이란 잃어버림을 얻는 일이었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p158.
    ... 한때는 간절한 마음이 전부였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건만 이제는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처럼, 서로의 서로에 대한 기억들만이 원망의 목소리도, 흐느낌도, 한숨 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이 순수한 묵음으로 남아 있을 뿐이니.

    (★)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또는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주고 나로 인해 힘을 낸다면...좋은 일이겠지.

    * <사랑의 단상> (2014)

    p170.
    애써.
    사전에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쓴다'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무엇도 이룰 것이 없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하지 않는 사이.
    p180.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마랗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p192.
    꽃이 지는 건 꽃철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 끝나는 건, 이제 두 사람 중 누구도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p192.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하다고 해도 그중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 한 명 뿐이라고,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의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p194.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 그리고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 바르바라 : 이교도인 왕의 딸, 아버지 여행 간 사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됨. 하지만 결국 참수

    p203.
    또한 고립은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난 것으로 타인을 멸시하기에 비극을 초래한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p205.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 우주를 인식하기에 육신의 삶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서로 협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나갈 시간을 단축해야만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백 퍼센트 동의했다.

    (★) 매번 틀리는 ~로서(지위, 자격), ~로써(수단, 도구)

    p206.
    과거의 우리를 생각할 수 있는데, 왜 미래의 우리는 생각할 수 없을까?

    * <교우론>, 마테오 리치

    (★) 인간에게는 육체의 삶같이 정신의 삶이 있다는 말이 참 좋다

    p216.
    그럼에도 우리 정신의 삶이 백 년을 넘기지 못하고 비관으로 빠져드는 까닭은 인간의 인식은 그 인식만은 대상으로 삼지 못해 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지. 눈이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p217.
    존재의 크기는 그가 인식하는 세계의 크기와 같아.

    (★) 존재 확장의 방법은 이질적인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결혼"이 생각난다.

    p223.
    생각이란 육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걱정과 슬픔,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그 생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정신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 정신의 삶은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서로 겹쳐지며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을.

     

    해설. 바람이 불어온다는 말 / 박혜진 (문학평론가)

    1.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나요?

    p229.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다른 세계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
    p229.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기억하지 못해 슬퍼진다는 것. 그러므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슬픔은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세번의 삶을 살게 된다.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첫번째 삶, 과거를 기억하며 거꾸로 진행되는 두번째 삶, 그리고 두번째 삶이 끝나고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세번째 삶. 그런데 이 세번째 삶은 첫번째 삶과 다르다. 그 안에 미래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p230.
    깊은 시간의 눈속에는 나에게 들어온 타인이 있고 나를 품은 타인이 있다. 나와 타인이 섞이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인생의 행과 불행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시간이다.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세 번째 삶을 살아간다는 건

    p231.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식론적인 세계관보다는 내 안에 없는 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스스로를 변형시켜가는 실천적인 세계관으로 살아야 한다고 여긴 푸코에게 '영성(spritualite)'은 철학과 대등한 지적 체계였다. 이때의 영성은 나를 변형시키는 정신의 삶을 위해 필요한 '자기와의 관계 맺기'와 '자기 돌보기'의 핵심을 의미한다.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는 자신을 아는 것보다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아는 것은 딜레마에 빠지게 하지만 선택하는 것은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알게 한다. 하지만 이해는 행동하게 한다.
    p233.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개인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세번째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면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는 보다 광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번째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p234.
    이들에게 세번째 삶이란 유한한 인간이 영원을 실천하고 낙관을 확신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이다. 미래가 기준이 되어서 현재를 결정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제를 변형시켜나가는 정신의 삶을 살 수 있다.
    p235.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는 건 기억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억이 흐르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지만 기억의 흐름을 만듦으로써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살 수 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짧은 시간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목도하는 우리는 세상을 낙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기억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p236.
    '나'만이 지켜낼 수 있는 세계가 있을 때 우리는 절망을 모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절망을 모르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억하는 미래는 우리 삶을 바로 그 미래로 데리고 간다.

     

    4. 그때 불어오는 새 바람

    p239.
    세컨드 윈드, 버티고 버티다 넘어졌을 때 가만히 누워 있으면 그 위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
    p241.
    새 바람은 공기가 전해주는 희망의 움직임이다. 공기가 뒤섞일 때 우리는 타인과 뒤섞이고, 그 뒤섞임 속에서 또 다른 삶을 계속해서 살아간다. 다른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5. 이유의 세계에서 이해의 세계로

    p242.
    유진주는 달의 방향만을 생각했다. 도착지가 아니라 방향만을 방향은 선택하는 것, 방향은 변형이 시작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유진주는 자기 삶을 변형시킨다. 더이상 대답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작가의 말

    p247.
    세상은 품에 안을 때 경이롭다는 말은 경이로움이 내게 달린 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p247.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만족스럽지 않고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품에 안아야 한다. 그게 바로 첫번째 화산을 뽑는 일이다.
    p248.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 찬 이몸'을 만든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언젠가 우리으 삶이 될 것이다.

     

     

    함꼐 보기 >> 김연수의 <시절일기>

     

    129. 시절일기

    김연수* 레제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워지는 김연수님의 산문이다. (이상하게 에세이라는 말보다 산문이라는 말이 나는 더 정감이 든다.) 읽으면서 내가 겪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내가 겪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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