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 H 마트에서 울다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10. 21. 10:00
미셸 자우너
H 마트에서 울다
p9.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p10.
말하자면 나도 훌륭한 음식 앞에서 경건해지고, 먹는 행위에서 정서적 의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p14.
이따금씩, 출입문도 없는 방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엄마가 돌아가셨단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단단한 벽에라도 부딪힌 듯한 심정이 된다. 출구도 없고 단단하기만 한 벽면에서 쿵쿵 머리를 찧으면서, 앞으로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하리라는 절대 불변의 현실만 자꾸자꾸 떠올리는 것이다.p21.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울긴 왜 울어
p34.
엄마의 사랑은 엄한 사랑 그 이상이었다.무자비하고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약함이 설 자리는 털끝만큼도 내주지 않는 강철 같은 사랑이었다. 제 아이한테 가장 좋은 게 뭔지 열 발짝 앞서서 보는 사랑, 그 과정에서 아이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해도 개의치 않는 사랑이었다.p43.
우리 가족은 내 용기를 칭찬했고, 나 역시 스스로가 자못 자랑스러웠다. 그 순간의 무언가가 나를 새로운 길로 들여놓았다. 빌록 착한 아이가 되는 일은 그리 순탄치 않았지만, 용감한 아이가 되는 것만은 제법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44.
부모님은 맛있는 음식을 사랑했고, 그걸 만들고 찾아다니고 함꼐 즐겼으며, 나는 그들의 식탁에 초대 받은 특별 손님이었다.쌍꺼풀
p60.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뉴욕 스타일
p70.
나는 엄마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딱 그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거친 현실 속에서 살아남으려 버둥거리는, 불우한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었다.와인이 어딨지?
p116.
내가 지키려 했떤 비밀은 모두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기만 했다.암흑물질
p121.
카우보이 부츠는 부모님이 멕시코로 휴가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와 음식과 함께 내게 부쳐준 것이었다. 그걸 신어보는데 웬일인지 가죽이 이미 부드럽게 길들여져 있엇다. 알고 보니 엄마가 그걸 일주일 동안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는 거다. 엄마는 양말을 두 겹 신은 발로 그걸 신고 매일 한 시간찍 걸어다니면서 뻣뻣한 신발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만들어놓고, 잦기 발바닥으로 평평한 밑창까지 모양을 잡아놓았다. 행여 내가 처음 그걸 신을 때 불편할까봐 말이다.p125.
아빠는 돈을 벌어오는 가장 역할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저 우리 삶에 아빠가 계속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버지가 자신의 성장 배경을 뛰어넘고 온갖 중독을 극복했다는 증거였고, 그건 충분히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p134.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여기에 있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내 자유의지로 돌아온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어둠 속으로 무작정 달아날 궁리를 하는 대신, 부디 어둠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약
p150.
하지만 내가 할 수 잇는 거라곤 고작 가까이에 누워 있는 것밖에 없었다. 엄마의 지원군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규칙적으로 느리게 울리는 기계 신호음과 나지막이 쌔근거리는 엄마 숨소리를 들으면서.p153.
하지만 엄마의 병은 아빠가 빠져나갈 묘책을 찾아내거나 초과근무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빠는 무기력한 기분에 시달리자 도망치기 시작했다.언니
p185.
내가 어느 편에 설지, 누구에게 동조할지 결정하는 일은 번번이 남의 손에 맡겨졌지 내 스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다. 노상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나보다 그 세계의 지분이 더 많은 누군가가, 온전하고 완전한 누군가가 자기 멋대로 날 쫓아낼까봐 전전긍긍하면서.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p203.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살아가기와 죽어가기
p217.
우리는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한국 여행을 감행하는 위태위태한 줄다리기를 선택했다. 우리는 쟁취할 가치가 잇는 무언가를 시도했지만 날이 갈수록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죽어가기 대신 살아가기를 택했지만 그 선택은 결국 끔찍한 실수로 판명되었다.당신이란 사람에게 황겁할 정도로 도저하지 않은 점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 도저하다 : 학식이나 생각, 기술 따위가 아주 깊다. 행동이나 몸가짐이 빗나가지 않고 곧아서 훌륭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p243.
우리 결혼이 좀더 이상적인 환경에서 시작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내 앞에 놓인 미래를 용감하게 걸어나가는 데 오직 이 남자 하나뿐이면 된다는 확신을 준 게 바로 이 시련이었다.법과 질서
(★) 왜 계씨 아주머니가 떠난 거지? 내가 빠뜨린 게 있는 건가?
묵직한 손
p258.
나는 엄마의 언어로, 모국어로 절규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뱉은 단어를.사랑스러운
p268.
'사랑스럽다'는 말은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용사였다.p277.
이 모든 일을 하면서 부엌을 왔다갔다하는 동안, 날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분주하게 준비하던 엄마가 계속 떠올랐다.내 사랑은 계속될 거예요
p286.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부터는 우리집이 꼭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 것처럼 보였다. 엄마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편안했던 공간이 이제는 우리 모두의 실패를 상징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p287.
세상에는 암과 싸워 승리를 쟁취한 다른 가족들도 있지만 우리는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갖가지 감정이 밀려와 우리 가슴을 찢어놓았지만 그런 패배감 또한 이상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잣죽
p313.
미래의 내 아이를 위해 엄마가 보관해둔 물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이상하게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작은 도끼
p334.
막상 엄마처럼 대해주는 이모를 만나고 나니 그간의 이런저런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p344.
피터와 내가 여행 다닌 장소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고 싶어한 곳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망치 여사와 나
p360.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김치 냉장고
p368.
카메라 렌즈 뒤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를, 나의 단순한 즐거움을, 내 안의 세계를 포착해 보존하려던 엄마가.p371.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커피 한잔
p388.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서 내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게 틀림없다.(★)
시공간이 다르겠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읽는 내내 눈물을 계속 닦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