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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1.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7. 3. 11:07

    김승희

    자서, 거울에서 유리창 사이의 이야기

    p5. 
    삶은 '나로 꽉 차 있어서는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삶에서 성숙을 얻는다는 것은 나와의 피투성이 싸움이 필요하겠지만 사실은 거울의 뒷면에 발라진 수은, 즉 은분을 지우고 거울을 유리창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거울 속에서는 나밖에 안 보이지만 거울을 유리창으로 만들어 가면 바깥과의 대화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세계의 희로애락들이 있고 타인들의 말과 땀과 꿈과 눈물이 펼쳐지는 바깥의 세계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 바깥의 타인들이 관통하도록 열린 유리창과 같은 투명한 매개가 뚫려야 세계 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삶은 거울 앞의 몽유-독백일 수 있습니다. 몽유-독백도 아름답지만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이 늘 내면에서 조화롭게 대화하여 새로운 하나의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벼랑의 노래 (1984)

    야시장

    p28.
    홍수가 지나가면 다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듯이 그렇게 한바탕의 통곡을 하고 나면 마음은 깨끗한 힘을 얻는다. 그것이 바로 내 통곡 요법의 효험이다.

     

    행복의 탕진

    p33.
    죽음도 아니고 삶도 아닌 '정신적 불임의 땅'에 마치 질병처럼 머물러 있으면서 나는 내가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가를 점차 알아간다. 나는 '삶'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속이 비고 영혼이 없는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편한 인간이 되어 안이한 불행의 악습에 젖어 있었다. 왜냐하면 불행이란 고통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고통이란 불행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의 에너지이고 갈등의 힘이다. 그러기에 고통 속에는 기쁨이 작열할 수 있다. 고통은 힘찬 돛이 될 수도 있다.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해방자, 혹은 신의 총애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것은 머무르지 않으려는 강렬한 에너지, 준엄한 비상의 힘이 될 수 있다.

     

    성냥 한 개피의 사랑 (1986)

    불멸

    p49.
    제발 예술가들이여, 좀 어리석어지자. 세속의 지평선만 좌우로 살펴보며 지상의대가 받지 못함에 상투적으로 외로워하고 고뇌하지 말고 진정한 독창성과 진정한 개성 없음에 좀더 외로워하고 고뇌해야 한다.

     

    위협 속에서

    p58.
    나의 위험을 지키기 위하여 나는 게걸스레 쓴다. 사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더 많기를 나 자신에게 요구하면서도 쓴다는 자체가 또한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절망은 이중이 된다. 그래도 자꾸 쓰는 것은 - 위험으로 위험을 막아 보려는 유치한 오기에서 -.

     

    전라도

    p61.
    준엄한 현실과 신명에 찬 흥취 사이 - 전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이 당을 달관하고 있는 거야.

     

    넝마로 만든 푸른 꽃 (1990)

    그럼에도 불구하고

    p66.
    그렇다. 나에게도 온정의 피를 나눠주고 희망의 문을 열어주고 절망의 신발털개를 집어던지고 눈부시게 일어서게 했던 말이 있었다. 그 말은 마치 열쇠고리처럼 내 삶의 여러 열쇠들을 가지런히 묶어주고, 흩어지려는 사랑의 의지들을 목걸이 끈처럼 연결시켜 주었으며, 절망의 관절과 희망의 관절들 사이에서 그것들을 이어주는 놀라운 힘을 가진 말이었다. 그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한낱 작은 부사어였으나, 그 말이 간직한 힘은 너무나 컸다.

     

    어느 마리아를 위한 만가

    p71.
    그래. 넌 졸업한 후 결코 한 번도 네 자리를 갖지 못했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가정의 막내이기에 취직을 할 절실한 필요가 없었다 치더라도 그래도 최소한 너의 허우적거리는 두 팔을 잡아줄 아주 기초적인 끈이 필요했는데 넌 그걸 한 버도 만져 보지조차 못했지.

     

    천사의 별

    p79.
    여자들이여 - 자신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라면 절대로 여필종부하지 말라! 도가 지나치면 여필종부는 미덕이 아니라 자기파멸이 된다.

     

    넝마로 만든 푸른 꽃

    p83.
    우리는 모두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상의 왕국과 현실의 왕국, 선의 환한 색채와 악의 검은 심연, 위대해지고자 하는 마음과 게으르고 억압된 육체 사이에, 우리의 근본적인 숙명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감금을 위하여

    p94.
    피해자인 척하는 가면으로 자신의 무기력과 비겁함을 은폐하고 위장하는 것은 무서운 일. 용기의 결여. 사이비 환자. 그리고 난 자기의 상처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데 있어서 사이비 의사보다도 사이비 환자가 더 용렬하고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아 가고 있었다. 정신이 빈곤한 시대일수록 사이비 의사와 마찬가지로 사이비 환자가 늘어나는 불안한 상황. 그들은 모두 자신이 무슨 속죄양이나 운명의 피해자인양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과장으로 합리화한다. 도대체 자신의 불행에 자기는 책임이 전혀 없다는 태도이다.
    p97.
    사실 우리는 누구나 감옥에 갇힌 생활을 한다. 때로는 넓은 감옥에서 때로는 십여평의 서민용 감옥에서 떄로는 한두 평의 질식할 듯한 감옥에서 하루의 시간을 버리고 다시 내일의 시간을 줍는다. 열려 있는 생은 멀고 갇힌 방은 점점 더 위압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조여 온다. 결박된 사람들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수선공 (1993)

    사랑이라는 이름의 수선공

    p104.
    그렇다. 사랑이란 '깁는다'와 같은 말이고 '수선하다'와 같은 말이다. 모든 종류의 고독과 불행으로 아파서 홀로 죽어가는 약한 사람을 고독 속에서 홀로 죽어가도록 놀아 주지 않고 따스한 가슴으로 '이어주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와 무지개

    p105.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시고 보니 그야말로 '인생은 무상하다'는 오래된 옛말 외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런 말조차 진부하고 무의미하고, 인간의 모든 행위는 흰 구름 한 번 솟구쳤다 스러지는 것처럼 순간의 무상이요 언어 또한 물거품 속의 꿈만 같아서 그저 침묵 속에 박제된 백설 공주 (백설 아줌마?)처럼 그렇게 차갑게 누워 있고만 산다.

     

    내 마음 색동옷 입혀

    p111.
    인간이란 끝끝내 날개를 포기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을 색동의 꿈을 꾸면서 다시 나 자신에게 확인시켜 주고 싶다. 

     

    4분의 1의 나와 4분의 3의 당신

    p116.
    우리는 이제 그런 상상적 관계 속의 나르시시즘적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 안의 사회적 나로 살아가야만 하는 위치에 처하게 된다. 즉, 우리는 '내가 꿈꾸는 나', '4분의 3의 당신들이 바라보아 주던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헐벗은 나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세상과 타인과의 상상적 관계는 끝나고 이제 사회적, 상징적 관계 속의 내가 되어야 한다.

     

    사랑에서 너를 빼도 남는 것이 있다

    p124.
    산다는 것은 결국 빼기다. 나날이 나이가 들어가서 그것은 더하기인 것 같지만 나이 말고 인생에 더하기가 어디 있는가? 하상 자기의 운명 창고에서 무언가를 빼서 써먹고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운명 창고의 꿈이 거덜 날 때, 더이상 꿈에서 빼기를 해올 것이 없을 때, 생명에서 건강에서 희망에서 뺄셈을 할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쓰러지고 만다. 잔고가 남지 않은 통장처럼 폐기 처분되고 만다. 이것이 현실의 계산법이다.
    그러나 사랑은 이런 계산법으로 계산이 안된다. 사랑에서 너를 빼도 내 사랑은 남는다. 사랑에서 너를 빼고 내 슬픔은 남는다. 사랑에서 네 얼굴 네 눈동자 네 목소리를 빼버려도 나의 추억은 남는다. 남는다. 남는다. 나의 그리움은 남는 것이다. 나의 눈물은 남는 것이다.

     

    샤포 디프에서 보물을 꿈꾸었던 마음

    p129.
    나는 시인이 되었고, 그것으로 나는 나의 고독과 허무를 견디어 왔다. 견디어 왔다는 것, 생을 죽음을 견디어 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시에 감사하고 언어에 감사한다. 인생이여, 나는 너에게 원금은 못 갚았어도 이자는 꼬박꼬박 내지 않았느냐고, 그것이 내 시라고. 그것들을 다 합치면 나만의 보물지도가 될 것인가?

     

    토끼야 입상하자

    (★) 90년대 군상의 모습을 토끼에 비유했으나 긍정적인 것 같지 않음

     

    통속의 눈 문화의 눈

    p137.
    편히 살 수 있고 편히 누릴 수 있으나 만약 그것이 진실의 길이 아니라면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 -  그것이 바로 고통의 길일지라도 그에 합류할 수 없고 고통을 자기 몫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그나마도 완전히 망하는 것에서 비켜설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를 만나고 싶다 (2000)

    자전거를 타고서

    p141.
    모든 여행에는 조금쯤은 귀양의 요소가 숨어 있다. 귀양이 아닌 타자, 즉 현실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큰 타자의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타의적인 것이라면 여행은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자의적인 귀양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고나 할까.

     

    '나쁜 여자'를 넘어서

    p155.
    타인의 자유를 부인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도 누릴 가치가 없다고.
    p165.
    상대주의 문화가 있을 때 인간은 한 규범의 절대성 안에서 질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 차이를 인정하는 부드러운 관용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p167.
    자유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서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하늘 아래로 자주 왕래하고 타자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한 번 바라보는 것이 자기 고질을 고칠 수 있는, 자기 개방화를 통해 자유를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본다.

     

    새롭게 눈뜨는 아침

    p170.
    그렇게 움직일 수 없는 우리 삶에서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몇 개의 모멘트가 우리의 삶에는 또한 놓여 있기도 하다. 지루한 시간의 권태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되풀이의 지속을 구원해주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갑자기 자신이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로 태어나는 것 같은 희열의 순간. 그런 순간들을 징검다리 삼아 우리는 가끔은 지루한 시간의 길들을 나풀대며 뛰어갈 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발은 여분이다.

    p174.
    나부터도 그렇다. 언제나 시간 타령이고 언제나 운 타령이다. 지금 내가 핑계를 대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여분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감추어 준다. 그러므로 실패나 좌절이란 사실은 나와 그 여분의 것들과의 공모이다. 내가 하기 싫기 때문에, 실패가 두렵기 때문에, 게으르기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일들을 언제나 그 여분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게으르게 불평이나 하고 마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갖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언제나 핑곗거리는 남아돌기 때문이다.

     

    여성이야기 (2003)

    엄마와 딸, 그 치명적 사랑

    p198.
    딸과 어머니의 말은 서로 문맥이 다르다. (중략) 어쨌든 어머니는 낳으려고 애썼고 딸은 어서 빨리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다 칼로, 고통과 초현실의 환상

    p208.
    나는 시를 쓰기 위해서도 힘을 필요로 하지만 살기 위햇도 힘을 필요로 한다.

     

    문학의 마음

    p216.
    시야말로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고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주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생각의 대열에서 벗어나 자기를 반성해보고 남들이 내버린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다운 가슴을 지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 몇 발자욱

    p219.
    타지에 나가 살면 누구나 그렇게 되듯이 나도 그 때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이며 꿈이란, 욕망이란, 욕망과 꿈의 차이란 또 무엇인가... 등의 투명한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확실히 타지에서의 삶은 아주 유용한 데가 있다.

     

    젓가락과 사랑

    p224.
    그녀의 말처럼 젓가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두 개가 한 쌍이고 그것이 평형을 이루어서 음식을 집을 때 우리는 그 음식을 입 안으로 넣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또 두 개가 평형을 이루지 않으면 입속으로는 아무것도 넣을 수가 없다. 인생이란 것도 젓가락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일찍이 불가에서 말한 것처럼 생은 사와 더불어 이루어져 있고 희망은 절망과 더불어서, 기쁨은 슬픔과 더불어서, 성공은 실패와 더불어서, 늙음은 젊음과 더불어서 있는 것이다.

     

    위험한 가을 담담한 모자

    p226.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투명하지 않다. 내 속에 나도 모르는 불투명한 '소용돌이 모양의 바람'의 악마, 욕망의 구렁이가 살고 있는 것을 누구나 느낀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인생은 가끔 접촉 사고를, 몇 중 추돌사고를 일으키게도 된다. 그것 때문에 인생은 언제나 숨이 차고 초조하고 쫓기며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오락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2007)

    우리 마음속의 '델마와 루이스'

    (★) 우리가 분노를 참다가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는 말에 심히 공감하는 바이다.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

    p236.
    '할머니'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담대한 자유의 감정을 주었으며 무엇인가, 이제 가부장제의 틀을 한 번 '뛰어넘은' 것 같은 해방된 기분을 주었다. 할머니, 그 이름은 '소녀'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 바깥에 존재하는 순수하고 용감한 여신들의 성채라고 할 만 하였다.

     

    무지개 너머 어느 곳

    (★) 나도 무지개 저편으로 넘어가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엄마의 밥상에선 슈퍼 배추가 피어나네

    p240.
    딸에게 친정은 항상 어머니의 집이다.

     

    굽이굽이 펼치는 여자의 옷

    p245.
    한국 여인들은 모두 다 그러헤 남몰래 지니고 있는 못다한 꿈을 자기 주검 옷에 펼쳐 보이는 고유한 '수의 디자이너'인지도 모른다. 한평생 가슴속에 서리서리 묻었다가 죽음의 자리에서 굽이굽이 펼쳐 보이는 찬란한 자기만의 이야기. 오그라들었던 삶에 대한 보상 심리요 극락에 부치는 아름다운 기도 같은 것?

     

    능동적 섹슈얼리티와 매니큐어

    p248.
    대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뜨거운 무엇이 문제가 되는 이러한 자생적이고도 독립적인 에로틱. 이러한 뜨거운 에로틱의 힘은 남녀 간의 사랑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서 타인에 의존하지 않는, 자생적으로 일어서는 이글이글한 실존의 힘이 될 것이다.

     

    세 여자, 혹은 봄날 오후 세 시 반

    p251.
    고통으로 눈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마음을 다하여 손을 잡아주는 어떤 힘. 고통의 횡포에 맞서 작은 위로를 건네는 캄캄한 영원 속의 한 방울 작은 스냅 사진.

     

    나는 나의 잡초를 사랑해야 한다.

    p254.
    붉은 반점이 없는 조지아나가 아니듯 잡초가 없는 정원이나 잡초가 없는 인생은 없는데 생의 잡초를 뽑으려고 너무 강박적으로 인생을 살균소독하면 조지아나의 비극처럼 된다는 것을 인간은 아예 모르거나 혹은 너무 늦게 깨닫는다. 우리 모두는 대부분 에일머다.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잡초를 뽑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재스민 화분 옆에 잡초 화분을 올려놓고 다시 그것들을 본다. 서로 어울려 있으니 서로서로 더욱 아름답다.

     

    뿌리와 모이의 거리

    p256.
    신자유주의의 휘몰아치는 명령 아래 오늘날 우리는 시야에 모이밖에 안 보이는 닭의 생활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은 볼 겨를이 없고 다른 것은 안 보인다. 아니 다른 것을 보면 큰일 난다. 지금 이 시대는 가치의 세계가 아니고 욕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