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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90. 거꾸로 사는 재미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6. 20. 09:52

    이오덕

    머리말

    p6.
    내게 수필은 삶의 인식이요, 삶의 탐구였던 것 같다.

     

    제1부. 하늘과 비둘기

    포플러 (1971.1)

    p17. 
    그 야들야들한 잎들이 윤기가 뚝뚝 떨어질 듯 푸른 하늘 아래 연두빛으로 눈부시게 피어나는 못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언제나 답답하고 슬프고 외롭기만 하던 가슴에도 알 수 없는 즐거움이 솟아나는 것이다.

     

    흙 (1975, 봄)

    p23.
    흙이 그립다. 흙의 따스함과 흙의 향기가 그립다. 평화와 순박과 사랑이 충만한 흙의 정신이 아쉽다.

     

    p26.
    인간이 일에 시달릴수록 산은 멀리서 더욱 그리운 모습을 하고서 우리들을 부른다. 무릇 자연은 그 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서 멀리 떠나야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를 낳은 어머니, 우리를 업어 키워주고 지금도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위대한 어머니인 산.

     

    하늘 (1973)

    p41.
    만일 우리가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면 - 그것은 곧 노예의 삶이요,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꽃 (1973.7)

    p45.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이 세상 산과 들에 언제나 피고 지고 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산과 들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꽃밭이요, 정원이다.

     

    개구리 소리 벌레 소리 (1973.8)

    p50.
    땅을 기어다니며 땅의 슬픔과 기쁨을 노래하는 시인인 개구리와 벌레들, 저녁놀과 별들과 풀잎들의 다정한 동무인 그들은 인간들에게 가장 값지고 귀한 노래를 들려주면서 다른 새들과 짐승등과 함께 인간들에게 박해를 당하고 있다. 이제는 개구리의 장엄한 합창도 벌레들의 노래의 강물도 옛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한 마리, 두 마리씩 떨어져 외로이 울 뿐이다. 언젠가 그들이 아주 멸종되어 버린다고 할 때 인간은 그때 과연 어떤 상태로 땅 위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비둘기 (1979.6)

    p56.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한다. 정말 너무나 온유하여 벌레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떨어진 곡식 알이나 산속의 나무 열매만 먹고 싸움이란 것을 모른다. 인간이 본받아야 할 선(善)의 본보기다.

     

    고양이 (1977, 여름)

    p61.
    짐승들의 습성이란 주위의 환경과 그리고 어미로부터 받은 훈련에 의해 형성되는 것임을 새삼 알게 된다. 사람인들 어찌 다르랴. 환경과 교육에 따라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되는 것이 인간이다.
    p62.
    고양이의 수난 시대는 인간 문명의 막다른 시대일지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을 이토록 학대하는 사람들이 땅 위의 주인으로 언제까지 복받고 잘 살기를 어찌 바라겠는가.

     

    개 이야기 (1964.9)

    p67.
    그러나 어린 송아지의 머리에 무서운 도끼가 내리 찍히는 일이 있는 한, 이 지구는 영원히 아름다운 별일 수 없다.

     

    쥐 (1967.6)

    p73.
    나는 이제 좀 휴식이 필요하다. 무슨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 이 허위에 찬 직업을 떠나지 못하면 우선 자리라도 옮겨서 조금이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

     

    닭 기르기 (1970.3)

    p75.
    제가 자랄 때 하도 짓눌리고 쫓겨서 이번에는 제 뒤를 따라 크는 것들을 그 갚음으로 이렇게 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것을 보고 닭이라는 짐승이 더욱 싫어졌다.

     

    올챙이와 인간 (1975.2)

    p81.
    올챙이의 구원은 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지만 인간의 구원은 그 자신의 탈피에서만 가능하다. 올챙이의 비극은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인간의 멸망은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는 사람들 (1977.4)

    p84.
    세상에서 사람보다 더 잔인한 동물이 어디 있으랴.

     

    창 밖을 보며 (1969.6)

    p86.
    없다. 아무것도 없다 내가 던진 돌은 망망한 바닷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한 것이 있다면 황금의 무게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의 한 부속품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뿐. 연약한 생명을 함부로 짓밟고 목표도 없이 돌진하고 있는 기계의 한 톱니바퀴!

     

    나무와 교육 (1965.7)

    p81.
    처음엔 좀 이상하다 싶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교장 영감님의 용어가 꼭 그대로였던 것읻.
    그 일거일동이 바로 수십 명의 교원을 통해 수천 명 어린이의 피와 살이 되는 학교 교육의 책임자가 자기 나라 말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성의하다는 것은 단지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죄악을 범하는 결과가 된다.

     

    제2부. 나의 집 나의 이웃

    이발소 (1973.2)

    p99. 
    나는 돈을 내어주고 비로소 해방이 된 기분으로 이발소를 나오면서 또 한번 긴 한숨을 쉰다. 이제 한 달은 잊었다 하고.

     

    집 (1973)

    p101.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마음 편함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집 없이 살아가는 서러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p102. 
    집을 가진다는 것은 근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싶어한 집은 나를 편하게 쉬게 할 집이었지만, 내가 가지게 된 현실의 집은 나를 쉬게 하기는커녕 끝없이 괴롭히기만 했다. 집은 그 속에 편안히 들어가 쉬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며 살아야 하는 짐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 뼈저리게 겪은 셈이다. 집은 짐이요, 근심이었다. 내가 갖고 싶어한 집은 실상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있는 것은 걱정과 근심이요, 내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남의 것이다.
    p103.
    집이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이 어설픈 땅덩이 그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 한층 괴롭고 서글픈 일이다. 나는 괴로운 생활보다 슬픈 자유를 골라잡아야 한다. 허망한 소유보다 자연의 한 조각으로, 우주의 한 분신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취 (1974.4)

    p108.
    다만 먹을 것을 건강한 내 손으로 지어 먹음으로써 살아가는 기쁨을 한층 더 느끼게 하여준 신에게 나는 감사를 드린다.

     

    내가 사는 대곡 (1980.11)

    p113.
    아침저녁 나는 산을 쳐다보며 살아간다. 그 못생긴 산들이 그럴 수 없이 아름답다. 내 운명처럼 생긴 산들의 아름다움!

     

    북술이 (1975.5)

    p120.
    나는 북술이야말로 교회당 문 앞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죽어서 천당에 갈 것이라고 꼭 믿고 있다.

     

    변소 이야기 (1972.12)

    p125.
    흙담의 시골 변소는 내게 불필요한 몸 안의 폐물을 배설하기 위해 할 수 없이 가게 되는 고통스러운 곳이 아니라 차라리 언제나 잃어버리기 예사인 나 자신과 조용히 대면하는 즐겁고 귀중한 면회의 장소라고 생각해 본다.

     

    버스 이야기 (1975)

    p130.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좌석을 양보해 주는 것은 아름다운 덕이요, 예의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평등한 인간의 권리를 무시한 시대착오의 우둔한 돌머리들인 것이다.
    p136.
    빙그레 웃는 어린 것의 얼굴에서 나는 장차 역사와 사회를 움직여갈 일꾼인 운전수를 기대해 본다. 역사의 차를 탄 모든 사람들이 누구 하나 멀미를 하는 일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갈 수 있도록, 그런 운전수를 내 아이에게 기대해 보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고, 그것은 아직도 내 자유에 속해 있는 것이다.

     

    우리 말에 대하여 (1965.6)

    p141.
    얄팍한 내용을 남들이 잘 모르는 말로 나타내어 무게 있는 내용처럼 보이려 드는 것은 너무나 속이 빤히 들여다뵈는 짓이다.
    p142.
    말은 그 민족의 피라 한다. 그 피가 풍부한 영양소를 받아들여 순수한 빛깔로 돌아가고 있으면 그 민족은 건가아게 자라고 있는 증거요, 그와 반대로 온갖 불순한 요소로 인하여 흐리고 정체되고 있으면 그 민족은 병 들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인간에 대하여 (1970.2)

    p145.
    어떤 전쟁이든지 그것을 일으키는 것은 나이 많은 교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싸움터에 끌려가 죽음을 당할 염려가 없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키고, 그들이 흘린 피로 살찌고 오래 산다.

     

    고마움에 대하여 (1982.9)

    p149.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서 받은 은혜가 너무 넓고 크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편지에 대하여 (1982.9)

    p153.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이 끈이 아주 끊어지지 않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p155.
    편지를 자주 쓰는 사람은 외롭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편지를 잘 안쓰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인정도 덜한 사람일 게다. 또 세상일에 너무 바빠서도 못 쓴다.
    p156.
    인간은 외로워야 한다. 외롭지 않은 것은 세상의 속된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잃고 세상일에 매여 있는 것은 좋지 않다. 편지를 못 쓰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다. 인생을 얘기하고 세상을 논하는 편지를 쓰지 못하게 된 나는 친구와 인생을 다 잃어버린 것이니 불행하다 아니할 수 없다.

     

    상처 (1979.10)

    p158.
    발등과 손가락과 얼굴의 차례로 입은 내 상처는 일과 장난과 놀이로 자란 어린시절의 표적이다. 나는 이런 상처를 입음으로써 지금의 나로 성장한 것이 틀림없다.
    p159.
    요즘 아이들은 상처가 없이 고이 자라나는 듯 보인다. (중략) 콘크리트 안에 갇혀 시험 점수만 따기 위해 서로 악착같이 다투어야 하는 이 아이들은 손가락에도 발가락에도 상처 하나 없이 고이 자라나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깊고 커다란 상처가 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좀처럼 낫지 않을 것이며 평생을 병신으로 만드는 무서운 상처일지도 모른다.

     

    사람 닮는 개 (1980.5)

    p161.
    어쩌면 살인을 한 개가 사람들에게 "너희들 스스로 어린이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라"는 경고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어느 사진을 보고 (1972)

    p164.
    그러나 이렇듯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세상이다. 아무래도 이 사진의 풍경은 달리 더 아름답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 같다.

     

    열려 있는 이유 (1982.2)

    p167.
    나는 세상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눠보는 버릇이 있다. 하나는 자기 중심으로 제 욕심만 채우며 사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남을 돕는 사람, 모두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이다. 앞의 사람은 고립되고 단절된 사람이지만 뒤의 사람은 열려 있는 사람,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 놓이더라도 세상은 결코 불행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제3부. 가난하게 사는 지혜

    가난하게 사는 지혜 (1979.10)

    p172.
    돈이 해결되는 세상에는 돈을 벌기에 수단을 안가리게 된다.
    p173.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가난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p174.
    가난만이 우리 인간의 참 살길이다. 물론 모두 같이 인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가난 말이다.

     

    거꾸로 사는 재미 (1979.7)

    p177.
    거꾸로 살기를 즐기는 사람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어느 틈에 거대한 기계 속에 휘말려 들어가 비참한 꼴이 되는 세상이다.

     

    속을 보는 눈 (1978.5)

    p181.
    사물의 현상을 겉으로만 보는 눈은 대상에 파고들지 못하며, 그것은 보는 사람의 자기 중심으로 된 안이한 기분일 뿐이다. 그러나 사물을 내면에서 보는 눈은 그 사물의 생명을 붙잡는다.

     

    선물 (1980.4)

    p185.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줄 선물, 우리가 고향과 이웃에 나눠 가질 가장 값진 선물은 일하는 데 쓰일 편리한 도구이며, 땀 흘려 가꾸고 거둔 한 알의 열매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랑스러운 국민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1981.8)

    (★) 농촌 봉사 이야기

     

    과자를 먹는 아이들 (1982.11)

     

     

    길게 바라본다는 것 (1980)

     

     

    사라진 농촌 문화 (1982.8)

     

     

    이원수 선생 (1981.1.27)

    p204.
    선생님. 부디 이 땅에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 속에서 빛나게 길이길이 살아주십시오.

     

    어른들이 부른 동요 (1978.4)

    p209.
    전국의 아동작가들 수가 2백도 넘을 것 같은데, 아이들이 즐겨 읽을 동화나 동시가 한 해에 몇 편쯤 나올까? 꿈도 노래도 없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진정 그 옛날이 그립다.

     

    인간의 길 (1982.3.24)

    p213.
    우리가 인간 소외 현상을 극복하려면 자기의 전문 분야에만 갇혀 있지 말고 전체를 내다봐야 한다. 인간사회의 참모습을 파악해야 한다. 역사와 사회를 외면할 때 결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철학이 없이 동시고 동화를 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전체를 보는 시점을 확보하고 전체를 통찰하는 현명한 정신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비인간화의 울안에 갇혀 버린다. 인간을 키워가고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일에 관여하는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아웃사이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웃사이더'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닌가.

     

    문학·예술 단체의 문제점 (1982.4.9)

     

     

    웅변에 대하여 (1982.6.11)

    p222.
    빈 말고 빈 글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글도 쓰지 않는 것이 옳을 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이 잘못 자라나고 있는 것만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다. 이것만은 서투른 말이라도 더듬더듬 이렇게 지껄여야 될 것 같다.

     

    학생들과 농촌 봉사 (1982.7.27)

    p226.
    학생들이 농촌에 가서 농민들과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그런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봉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귀중한 학습이요, 실습이다.

     

    출판기념회 이래도 좋은가 (1982..8.19)

    p230.
    모든 사람들의 삶이 제각기 다른 양상으로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시대 사황이다. 그리하여 온갖 행동을 규제하는 말들이 귀를 아프게 하지만, 진정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는 말은 없다. 이런 때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어느새 저도 몰래 오염되어 혼탁한 무리들 속에서 자신을 잃고 하루살이의 춤을 추게 된다. 정말 서로 타이르고 일깨워야 할 일 아닌가?

     

    말과 글의 어지러움 (1982.8.9)

    p232.
    남의 나라 말글을 정신없이 좋아하는 태도는 한편 제 나라 말글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p234.
    말과 글이 어지럽게 되었다. 말의 혼란은 의식의 혼란이고 의식의 혼란은 삶의 혼란이다. 말과 글을 틀리지 않게 써야 하고, 흉내를 내지 말아야 하고, 장난삼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획일적으로, 강압적으로 써서도 안된다. 
    실체가 없는 말, 감동이 따르지 않는 말, 삶에서 유래된 쭉정이 같은 말이 허공에 난무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말을 순화하기에 힘써야 하겠다. 말의 순화는 삶의 순화다.

     

    교육자의 열등감 (1979.6)

    p238.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육자로서의 신념과 긍지를 지니는 일이다. 그리고 입신출세식 관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제4부 꼴찌를 기르는 교육

    우리는 왜 사랑을 잃었는가 (1980.9)

    p244.
    탁류를 몸으로 막아내는 역사의 둑 역할을 하지 않고는 교육자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꼴찌를 기르는 교육 (1980.11)

    p248.
    일등보다 꼴찌가 되어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

     

    아이들이 미워지는 까닭 (1980.12)

    p251.
    교사의 길은 두 갈래입니다. 그 하나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창조적인 삶을 도와주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의 완벽함과 획일적인 질서와 외면의 아름다움을 교육이라 믿고 그런 것의 실현을 위해 애쓰는 길입니다. 앞의 길은 희생이 따르지만 영광의 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을 따라 뒤의 길을 선택했을 때, 그 교사는 아이들로부터 떠나게 되고, 비참한 월급쟁이로 전락하고 맙니다.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키는 방파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교육자라 할 수 없습니다. 
    p252.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미움도 생깁니다. 너무 욕심을 내지 마세요. 성급한 기대를 하지 마세요.

     

    6만대 1의 영광 (1981.3)

    p257.
    그 순수한 마음은 모든 사람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진 사람 (1981.4)

    p260.
    그러나 교육이란 어린이를 비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든 힘과 끊임없이 맞서서 어린이의 생명을 지켜주는 노력이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중략) 교직자는 동심에 빠져 꿈같이 살아가는 직업의 사람이 아니라 그 동심을 지키는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기를 살리는 교육 (1981.5)

    p266.
    아이들의 기를 살리는 일이 민족을 살리는 일이다. 기를 살리는 것이 교육이라면, 기를 죽이는 것은 무서운 민족적 범죄 행위라 할 수밖에 없다.

     

    몰입자와 국외자 (1981.6)

    p270.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가 갇혀 있는 그 보이지 않는 벽 속에서 나오는 일이다. 자기의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세계를 가지되 항상 한 발자국쯤 나와 자기를 살피고 그리고 남들과 함께 전체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직한 교육 (1981.4)

    p275.
    정직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알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심성이다.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이 침해되지 않도록, 짓밟히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이 교육이다.

     

    교사와 수업 (1981.7)

     

     

    수업의 비결 (1981.8)

    p284.
    교사들의 교육 정신의 각성은 오직 양심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겠고, 교사들을 잡무에서 해방시키고, 물질적이 ㄴ대우를 충분히 해주는 길밖에 결단코 없을 것이다.

     

    제비집과 학교 (1981.8)

     

     

    기념사진 (1981.9)

    p292.
    우리가 옛날부터 해오던 것으로 으레 그렇게 하고 있고 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잘 살펴 새로운 눈으로 보면 마따히 고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직, 그 보수와 지위 (1982)

     

     

    어린이 마음 (1982.4)

    p298.
    동심을 해치고 병 들게 하는 교육은 어떤 형태, 어떤 구실로서도 허용될 수 없다. 어린이가 어떤 목적에 이용되고 수단이 되는 교육은 사이비 교육이다.

     

    이런 사람 이런 교육 (1982.6)

    p305.
    세상일을 깊이 살피고 알지 않으면 저도 몰래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선이란 이름으로 죄를 짓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다.

     

    독서교육 긴급동의 (1982.7)

    p308.
    책이란 천천히 그 내용을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

     

    이 땅의 풀 한포기라도 (1982.9)

     

     

    그림을 싫어하던 아이 (1982.12)

     

     

    교사의 책임과 영광 (1983.2)

    p322.
    국민학교의 교육의 중요성은 그 대부분이 어머니의 품에서 처음으로 떨어져 나온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최초의 학교라는 점과, 또 하나 6년이란 가장 긴 수학 기간이 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죄인의 말 (1982.11)

    p330.
    교사의 참된 깨달음에서 출발하지 않는 교육은 어떤 것이라도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
    산문들을 읽는 동안 자연에 내가 놓여진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물론, <비둘기> 산문을 읽으면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없잖아 있고, 한편으로는 그 시대에는 어쩌면 긍정의 의미의 새가 이렇게나 도시의 민폐새로 전락했을까 싶다.물론 인간의 이기심이 시작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오덕 선생님께는 죄송하게도 읽기 전에 나는 선생님이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표지를 자세히 보면 남성인데 언뜻 보면 여성으로 보여서였을까? 그래서 2부의 <이발소>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남자들도 이발소에서 느끼는 감정이 여자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재미있고.
    3부의 <과자를 먹는 아이들>을 읽으면서 인간은 가장 열악한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길게 바라본다는 것>에서 저자의 말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역시 가치가 큰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4부에서는 교육자의 역할이 뭘까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미워지는 까닭>은 일종의 아이들에게 배신당한 선생님 편지에 대한 회신인데, 꼭 아이들이 아니라도 애정이 너무 크거가 기대가 커지면 실망도 커지는 것 같다. <6만대 1의 영광>은 국민학교 교사가 되고 싶어하는 류군에게, <우리는 십자가를 진 사람>은 교직을 떠나려는 사람에게 쓴 편지인데... 사실 요즘의 초등학교 교사들이 겪었던 일종의 문제들이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또한 <교사와 수업>에서는 비판 문화의 상실을 언급하시는데, 사실 요즘이나 과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로 수업에 대한 장단점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떤 경우는 부끄러워서, 혹은 자만심이 가득해서 자신의 단점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비판과 비난이 혼재되는 요즘의 경우에는 더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제비집과 학교>에서는 성실한 교장 선생님의 제비집 퇴출(철거) 이야기가 나오는데, 왠지 인간의 잔인함과 추악함을 보는 기분이면서 동시에 내가 봤던 제주도 유명 미술과 담벼락에 집을 짓던 새들은 잘 있을 지 궁금하기도 했다. <교직, 그 보수와 지위>에서는 교직원의 낮은 지위와 처우를 언급하는데, 우리는 가끔 좋은 인력에게는 낮은 혜택을, 일을 잘 하는 것처럼 꾸미는 (결국 일은 좋은 인력이 다하지만...) 사람에게 높은 처우를 해주는 것 같다. 적정한 처우가 인재를 모은다는 것을 여러 조직에서 꼭 인지해줬으면 좋겠다. <이 땅의 풀 한포기라도>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통해 학생들에게 자연의 이해를 높이고 자긍심도 고취할 교육법에 대한 고찰이지만, 현재의 입시 위주의 환경에서는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림을 싫어하던 아이>에서는 창조성을 길러준다는 미술 지도 중 잘못된 형태의 문제를 꼬집기도 하는데...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