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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4. 보통날의 식탁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6. 4. 18:30

    한솔

    p46.
    자연을 곁에 두고 산다는 건 꽤 감동적인 일이다. 숲 산책을 하는 동안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동화속 세상을 거닐었다. 복잡하던 머리까지 덩달아 맑아졌다. 게다가 꽃을 보며 요리를 상상하고, 식탁 위에 봄 풍경을 온전히 담아내는 행복도 맛보았다. 이 청아한 계절은 들판에 핀 풀 하나로 진한 기쁨을 선사해주는구나.
    p89.
    할아버지가 수확한 감자에 엄마의 사랑까지 듬뿍 들어간 샐러드, 아무 걱정 없이 작은 것에도 그저 행복했던 어린 시절. 추억과 사랑이 섞인 감자 샐러드의 맛을 나혼자 내기엔 역부족인가보다.
    p123.
    계절마다 반드시 먹어줘야 할 것만 같은 음식이 있다. 여름에는 단연 짜박된장을 곁들인 호박잎쌈이다. 여름방학, 외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는 호박잎쌈이 자주 올라왔다. 자작하게 끓인 강된장을 할머니는 '짜막된장'이라고 불렀다. 호박잎에 밥 한 숟가락 얹고 짜막된장을 한가득 올려 싸서 배불리 먹고 나면, 저녁 놀이 질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놀 수 있다.
    p132.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듯해도 계절은 끊임없이 변한다.
    p146.
    계절의 흐름과 함께 오가는 것들은 강렬하지 않지만 내 얼굴에 조용한 미소를 드리운다. 올 가을에도 들깨꽃처럼 연하지만 분명한 고소함이 있는 행복을 차근차근 수집하고 싶다.
    p169.
    가을은 색깔뿐 아니라 소리로도 느껴진다. 가까운 언덕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한 줄기가 논 한가운데를 가르며 빠르게 지나가면,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던 벼가 일렁인다. 파동이 옆으로 번져가고 이내 노란 들판 전체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사사삭 - 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듣기 좋다. 가을 소리가 들리는 길을 걸으면 시야 곳곳이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풍요로운 황금 들판이다.
    p205.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마을 풍경은 쓸쓸해진다. 도시는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색을 더하고 있다는데, 이곳은 마른 단풍잎들로 간신히 색을 붙잡고 있다. 반짝이는 조명과 두근거림이 있는 도시의 겨울과 달리 시골의 겨울 풍경은 황량하기만하다.
    p226.
    노동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면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바닥난 체력으로 요리를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눈을 치우거나 요리가 짐이 되는 날을 대비해서 만들어두는 음식이 있다. 양배추롤이다. 만두처럼 소를 만들어서 양배추로 감싼 다음 크림소스나 토마토소스, 혹은 맛국물을 넣어 끓여내는 요리다. 날 잡아서 한 냄비 가득 만들어두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그때그때 꺼내 먹기 좋다.

     

    (★)
    참 재밌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 한적한 시골의 어느 집에 내가 밥을 해먹는 것이 상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작가님의 실감나는 표현도 표현이겠지만, 어쩌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동경의 생활을 남의 경험을 기반으로 꿈꾸는 것이기에 가능한 것도 같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말 부지런해야 할 것 같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