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21. 18:15
알베르 카뮈, 르네 샤르
p12.
글쓰기는 '저절로' 되지 않고 (글쓰기는 폭력이고 뽑아내기다.), 르네 샤르가 '투명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시적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시작되기로 한다. (중략) 시의 출현과 시와의 만남은 자발적이면서 동시에 감내하는 유배 동안 이뤄진다.p13.
카뮈의 경우도 글쓰기의 시작은 어머니의 침묵(연민과 사랑,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질책은 없지만 무관심한 침묵),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고향을 벗어난 유배와 이어져 있다. 샤르가 하안(河岸)의 인간이라면 카뮈는 해안(海岸)의 인간이다. 한 사람은 소르그 강가와 들판에서 '참나무처럼 강하고 새처럼 예민한'사람들 사이에서 고통과 자유, 공포의 기쁨의 공간을 되찾는다. 다른 한 사람은 티파사의 오솔길이나 제밀라의 바람 부는 메마른 사막에서 해안 공간을 누빈다.p31. 샤르 -> 카뮈 (1947.10.4, 릴)
<시지프 신화>는 제게 푸른 바위를 내밉니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이 문장은 숨을 쉬게 해주고, 붙들 것을 내줍니다. 이건 활동적인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베개입니다. 모든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와 한번도 실현된 적 없는 희망으로 현재를 채우는 겁니다.p86. 카뮈 -> 샤르 (1950.10.23, 파리)
친애하는 르네, 말씀하신 그 '공백'과 침묵을 용서하세요. 올해가 내게는 힘든, 대단히 힘든 한해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아마 이미 말씀드린 것 같지만, 나는 내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몇 안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당신이 속해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 주세요. 당신의 우정, 그리고 그 우정이 상정하는 희망 말입니다. 당신을 만난 건 큰 행운입니다.
곧 만나야지요. 당신이 여름의 시들을 가지고 오리라 상상해봅니다. 그 시들도 기다립니다.p104. 카뮈 -> 샤르 (1951.10.26, 파리)
그러나 당신에게는 세상을 발칵 뒤집을 무엇이 있습니다. 다만... 당신은 찾고 있지요. 우리는 기댈 지지대를 찾는 거지요. 적어도 당신은 이 탐색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건 압니다. 아마도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건,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 없이는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삶이 제 의미를, 그리고 제 피를 잃는 걸 지켜보길 한 번도 체념하고 받아들인 적 없는 나를 생각하고 하는 말입니다.p189. 카뮈 -> 샤르 (1957.9.17)
늙을수록 나는 우리가 오직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사람들과, 품을만큼 가볍고, 느낄 만큼 강한 애정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의 삶은 너무 혹독하고 씁쓸하고 소모적이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새로운 구속들까지 감내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말 그대로 슬퍼서 죽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기쁨을 정당화하는 말을, 격정을, 성찰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는 당신의 친구이고, 당신의 행복을, 당신의 자유를, 한마디로 당신의 모험을 사랑하며, 당신에게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동료이고 싶습니다.<옮긴이의 말>
p282.
옛날의 사랑과 우정은 편지를 남겼다. 무수한 편지들이 사랑과 우정을 고백하고 증언했다. 일인칭으로 오직 한 사람을 향해 쓴 편지글을 읽는 건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서는 일이다. 어느 시점에 글쓴이를 사로잡은 어떤 감정과 생각을 좇으며 편지를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내밀한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특히 둘의 관계가 속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사이라면 편지는 내면의 풍경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그 내밀한 풍경이 때론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진 문학 그 작품보다 더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p283.
1946년 3월에 쓴 첫 편지부터 1959년 12월의 마지막 편지까지 두 거장이 주고 받은 184통의 편지는 이들의 우정이 생겨나고 깊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문학적 거장들은 사석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호기심에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나 역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 해야 하고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게 됐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