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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9. 어떻게 죽을 것인가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5. 10:00

    아툴 가완디

    p44. 
    독립적인 자아에 대한 숭배가 삶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이라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온다는 현실 말이다. 언젠가는 심각한 질병이나 노환이 덮쳐오게 될 것이다. 해가 지는 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이라면,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p55.
    나이가 든다는 것, 즉 노화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각 부품이 노쇠해진다는 의미다.
    p71.
    블루다우 과장은 나중에 내게 어떤 의사든 환자가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질병의 폐해로부터 가능한 자유로울 수 있게 하고, 세상에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질병만 치료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p73.
    몸의 쇠락은 넝쿨이 자라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루하루 지내면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대로 적응해 가며 산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p75.
    노화는 우리의 운명이고,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몸 속의 마지막 예비 장치마저 모두 고장날 때가지 어떤 의학적 도움을 받느냐에 따라 그 과정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가파르게 곤두박질 치는 길이 될 수도 있고,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을 좀 더 오래 보존하면서 사는 완만한 경사길이 될 수도 있다.
    p94.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p121.
    문제는 그녀가 원하는 삶이 단순히 안전하다는 것 이상이라는 데 있었다. "전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집이 아니라 병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실 이는 거의 모든 요양원이 안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이다. 요양원의 우선순위는 거주민의 욕창 방지와 체중유지 같은 데 있다. 물론 모두 중요한 의학적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
    p172.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토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 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빈 삶이다.
    p199.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모두 단순한 기쁨이 주는 안락함을 찾게 된다. 동료애와 우정, 규칙적인 일상, 맛있는 음식, 얼굴에 와닿는 햇살의 온기 같은 것 말이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고 축적하는 것보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서 얻는 행복감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야망이 점점 줄어드는 걸 느끼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남기고 갈 것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다는 것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느끼도록 해주는 목적을 우리 밖에서 찾고자 하는 깊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p227.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 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p302.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할 때 사실에 근거한 분석적 사고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라는 것들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p327.
    그러나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가 끊임없이 밀어 닥치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을 하나하고 돌아서자마자 또 다른 선택을 하나하고 돌아서자마자 또 다른 선택을 해야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p355.
    용기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다.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중략)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
    저자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힌두교 신자이다. 글을 읽는 내내 색다른 시각이나 종교적 색채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약력을 읽으니 이해가 되었다. 미국 사회 내에서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 조건이라 생각되며, 종교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
    읽다보니 또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가족이 겪었던 간병의 어려움 등의 문제들도 경험을 해서인지 낯설거나 생소한 문제가 아니기도 해서인지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안락사. 고통이 너무 큰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은 그 고통이 진통제로도 참기 어려운 수준이 되면서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안락사를 허용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마저 안락사에 의존하게 될 위험도가 너무 높아서 문제가 생길 소지들이 있다는 것이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 옳을 지 누가 판단해야 할까?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읽었던 어느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