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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4. 08:39
서윤후
p6.
절박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거절없는 삶에 단련되어 있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고 여기면서, 일이 내게 주는 이로움이나 해로움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했다. 그러다보니, 삶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원하지 않는 것들로 채워졌다.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며, 조금씩 비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p20.
오래된 문장마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야기가 맺혀있다. 그런 것을 보면 신기하게도 아무런 다짐없이 잘 살고 싶어진다.p32.
생활은 나를 돌보는 자리가 분명했지만, 동시에 내게서 사라져가거나 무너지는 것도 공평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했다.p36.
책은 좋은 혼돈을 야기한다. (중략) 책 덕분에 살림이 좀 더 단정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p42.
견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기 시작한 것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생활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p51.
기분이 어딘가에 부딪혀 닳아 없어질 지경이 되면, 언제나 새로운 옷을 입혀주곤 했다. 마치 부끄러운 곳을 새것으로 가려주듯이, 그 옷이 질리면 또 새로운 옷으로 고쳐 입고, 또 새로운 옷을 기워 입으면서 헐벗은 나의 구석을 가볍고 쉽게 만회했다. 만회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큼 버려지는 것이 더 많았고, 외면했던 것을 단숨에 다시 마주해야 하는 시간도 찾아왔다.p80.
그럼에도 내가 견디는 일이나 버티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것은, 꽉 쥐고 있던 어떤 손을 자국이나 이빨 자국이 오래도록 몸에 남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영혼에. 그 안간힘이 좋은 힘줄이 되기도 하지만, 붙들고 있는 것만이 다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배우기도 했으니까. 홀연히 떠나는 타이밍이, 놓아주는 느슨함이 더 큰 기다림을 버틸수도 있게 하니까.p101.
선생님, 저는 좀 지친 것 같아요. 상호작용을 하는 것도, 누군가에 의해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도, 조금 지쳤어요. 스스로가 빛나면서 하게 되는 일들에 대한 기대감도 누그러들었고, 살고 싶다는 간절함보다는 살아 있다는 안도감으로 삶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p112.
빵은 미래의 음식이다. 지금 당장의 허기짐으로 사놓고 나중에 먹는 것.p137.
밤중을 서성이는 나는 아픈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밤엔 아픈 줄도 모르고 쓴 것들을 다음 날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침이 있는 삶을 살게 되면서 시에 고칠 것이 보인다든지, 내가 무엇에 다치고 부러졌는지를 정면으로 볼 수 잇게 되었다. 그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아침 뿐이었다. 저녁에 지어 놓은 문장이 아침에서야 다 식어 형편없이 보이게 되는 일이 조금 우스웠지만 그 수치스러운 기쁨을 아침에만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 후로는 급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아침에 글을 쓰거나 고치고 있다.p143.
마음이 가난해질 때면 나는 나의 적이 되기도 한다.p161.
사람들마다 고집을 부리며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p164.
그때의 반짝임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은, 깨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환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책의 기록에도 내가 언급했지만, 시인들의 산문은 뭐랄까, 철학적이다. 이 책은 우울하기도 하지만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두껍지 않기도 하고,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어려움이 오늘을 버티고 사는 우리들에게도 생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