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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4. 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3. 17:06

    페터 비에리

    서문 - 삶의 형태로서의 존엄성

    p11.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중요한 여러 경험에 이해 가능한 빛을 비추려는 시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철학이다.
    p12.
    이 책에서 내가 말하는 존엄이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이다. 그것은 사고와 경험, 행위의 틀이다. 이러한 존엄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틀의 개념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생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다.
    p12.
    존엄한 삶의 형태를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내가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중략)
    두번째 차원은 내가 관계 맺고 있는 타인들에 관한 것인데, 이번에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즉 내가 타인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중략)
    세 번째 차원에서의 접근 역시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다.
    p13.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이 세 가지 물음, 세 가지 경험의 종류, 세 가지 분석의 차원은 모두 존엄성이라는 개념으로 흘러 모인다.
    p14.
    우리가 살아갈 만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무언가 부족한 인생이다. 이 상실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저 참아내는 삶으로서 우리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1장.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

    p23.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믿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판단하는지, 어떤 것을 정당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지의 기준 또는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를 가르는 경계가 한 사람의 세계관이다.
    p25.
    그러므로 주체로서의 인간은 내적 검열을 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자신의 행위와 사고, 희망, 공상을 금지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 능력의 원천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능력이다. 주체적 인간은 내적 갈등을 안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의 행위와 경험을 존중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자문할 줄 알아야 한다.
    주체적 인간의 특징은 무엇에 끌려가는 것처럼 그저 앞만 보고 터덜터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자문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주체적 인간은 의심의 여지를 가지고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계획을 갖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영향을 미쳐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p36.
    존엄이란 각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존엄은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개개인에 관한 문제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한층 더 광대하고 객관적인 것으로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즉, 삶의 전반적 형태라는 특성을 띤다.
    p36.
    존엄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상황도 기준이 된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절박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록 존엄성에 대한 판단 기준은 관대해진다.
    p37.
    타인으로부터 우리가 주체라는 사실을 무시당하거나 수단으로 악용 당할 때 우리는 굴욕을 느낀다. 굴욕은 우리에게서 존엄성을 앗아가는 행위이다. 이 행위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무력감이란 대체 무엇인가? 힘이 없는 것이다. (중략) 무력감은 특정한 힘을 갖지 못하는 것, 즉 소망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p42.
    권리는 무력감으로부터 나를 막아주는 방화벽이다. 그것은 내가 내 뜻을 밀고 나갈 수 있도록 권력을 준다. 그러므로 권리는 굴욕으로부터의 보호책도 된다.
    p63.
    부탁한다는 것은 소망을 말로 표현하며 누군가에게 그 소망의 성취를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탁은 도움을 받는 상황을 낳는다. 그것은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남에게 의지하고 의존한다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이 스스로의 힘을 벗어나 타인의 힘에 달려 있다.
    p69.
    부탁이 위험한 이유는, 부탁을 하는 이유를 밝힐 때 자동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고 따라서 약점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p83.
    나는 내 의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그 의지는 끊어야겠다는 좋은 의지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중독자의 생각은 공회전으로 끝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하는 바퀴와 똑같다.
    p99.
    사람의 존엄성은, 내면의 독립성이라는 것이 모래성처럼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이해심으로부터 인간 사이의 연대감이라는 값진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p100. 
    일자리를 잃으면 그와 함께 존엄성도 휘청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p101.
    노동은 물리적 자립이라는 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준다.
    p102.
    노동이 존엄에 기여하는 건 자립과 타인의 인정을 가져다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각자가 가진 능력을 펼치고 한 인간으로서 전반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p103.
    내 능력에 훨씬 못미치는 노동은 나를 소외시키고 내게서도 소외된다. 그런 노동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내게 맞는 일이 왔을 때 그것을 감지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가 사라진다. 하지만 일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이 곧바로 존엄의 상실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p105.
    돈이 없다는 것은 독립성의 상실을 뜻한다. 그리고 무능과 의존을 뜻한다. 이러한 결여는 굴욕을 당할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돈은 외적인 독립성을 뜻한다.
    p108.
    돈이 남의 관심이나 동정심, 애정을 대신하는 대체물 역할을 하게 될 경우에도 존엄성을 위협한다.

     

    2장. 만남으로서의 존엄성

    p114.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비로소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 반대다. 먼저 만날 수 있어야 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서로의 생각이 교차되는 경험이 없다면 진정한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p119.
    거리감을 둠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파괴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력감의 노출을 동반한다. 따라서 굴욕의 시초가 된다.
    p167.
    그러나 내면이 많은 변화를 거치다 보면 잠시 멈추고 나 자신과의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때가 있다. 빗나가거나 길을 잘못들어 이상하게 굳어진 자아상은 자신을 너무 대단하거나 하찮은 인물로 비치게 할 수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잘못된 개념과 가치관의 횡포가 지배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또다시 들어서게 될 수도 없다.
    p173.
    타인의 동정은 사람을 왜소하게 만든다. 그래서 무시받는 것처럼 느낄 수가 있다. 상대방이 자기는 강하고 너는 약하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면 만남의 대칭성이 기우둥해지고 존엄성은 위협받는다. 이에 비해 상대방의 처지와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는 약자와 강자, 크고 작은 자, 역할의 구분 없이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자립의 능력을 잃어버린 자가 동정을 받을 때는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즉, 질병이나 가난, 파산 등으로 인해 혼자 설 능력을 잃었을 때다. 그럴 때 동정 섞인 말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는 '당신은 더이상 독립된 사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다.
    p175.
    도망치지 말아야 하는 대상에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갈등이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커져오던 갈등을 어느 순간 딱 눈앞에 맞닥뜨려 정체를 명확히 밝히고 해결해야만 할 순간이 온다. 회피하거나 미화하거나 침묵하면 갈등과 긴장이 점점 커져가고 결국은 자신의 존엄마저도 해치는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

     

    3장.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

    p188.
    결함은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것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결함은 가치가 개입된 것으로, 부정적이고 거부적인 판결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결함은 약이다. 그러므로 결함은 있으면 안 되고 보여서도 안 된다.
    p224.
    결국 존엄성을 상실하는 사람은 엿보는 자들이다. 이들은 타인의 생에서 흘러나온 비밀스러운 사건을 재미로 소비하며 상품으로 판매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존엄성을 박탈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엄성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책에서 여러번 지켜본 바 있다.
    p239.
    우리는 그저 개방되어 있고 관심이 많을 뿐이다. 사람은 자신을 개방하고 여러 사람들과 개인적 경험을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특히 지극히 사적인 경험일수록 그렇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관점의 지평선을 넓히고 지식을 얻으며 인간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추구할 수 있겠는가? 벽을 쌓아 자기를 가둔다면 이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p245.
    "그렇다면 존엄성은 무엇인가?"
    "사적인 것에 대해서 말을 아낌으로써 타임과의 사이에서 유지되는 간격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간격이 필요한 이유는, 침묵의 경도를 조금 무르게 함으로써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략)"

     

    4장 진정성으로서의 존엄성

    p255.
    삶의 기만은 타인에게 거짓말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그럴 경우 왜곡되는 것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자아상이다. 자신을 사실대로 보지 않고 또 사실대로가 아닌 자신을 평가한다.
    p260.
    정직함과 진실함을 토대로 한 존엄성은 모든 결속된 관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이것은 설사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해준다. 관계에서 뭔가가 항상 빠져 있었다는 것. 그래서 상상하던 그런 관계였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존엄성은 용기와 뗄 수 없다.
    p262.
    가까운 사이란 자신이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범위를 조금씩 줄여가는 사이다.
    p272.
    어떤 말이 일단 입 밖으로 나와버리면 더 이상 미화나 부정의 여지가 없어진다. 불행이 불행이 아닌 것처럼 가장할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 이런 말들에는 분명 어감이라는 것이 있어서 듣는 사람은 실상보다 더 끔찍하게 받아들이기가 쉽다.
    p273.
    우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시선 아래 살아간다. 그래서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내보이며 특정한 얼굴로 그들을 대한다. 이 얼굴은 사회적인 표면, 가시적인 정체성, 그 뒤에 숨을 수 있는 가면이다.

     

    5장. 자아 존중으로서의 존엄성

    p309.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서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자기의 건강과 능력을 돌보는 것, 내적 강박에서 벗어나서 더 큰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 자신의 삶이 가진 논리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 그리고 그 삶에 의미와 방향을 찾아주는 것 등이 있다. 실패를 한다고 해도 자아 존중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위의 것들이 가진 중요성을 더 이상 인지하지 않을 때, 그리고 결국 손을 완전히 놓아버릴 때 비로소 위협이 된다.
    p310.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포함한다. 신념, 감정, 의지, 살아가는 총체적 방법 등이 이에 들어간다. 이것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능력과 용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 다른 면에서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강함을 뜻한다. 여기서 자기 존중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6장. 도덕적 진실성으로서의 존엄성

    p318.
    타인을 위해 자기 소망의 성취를 포기하는 것, 이것은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p319.
    자기 주도적 결정권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만 존재한다. 내면의 압박에 굴복하느냐 하지 않는냐 결정하는 것,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감수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면의 예속화의 경험이다.
    p350.
    가해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가해자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피해자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양측에 관해서 해야 하는 이야기는 서로 아주 다른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돌봐야 하는 방식은 매우 다릅니다. 존엄성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 두 가지를 서로 대립 관계에 놓는 것은 불합리한 것입니다. 사석에서 흔히 떠들 수 있는 일일지는 몰라도 불합리한 논리입니다. 
    p357.
    사람의 존엄성은 공공의 이익에 견주어지는 게 아니오. 고통과도 함께 다루어질 수 없소. 존엄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오. 그러니까 손댈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니겠소.

     

    7장.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

    p371.
    인생을 살다 보면 다른 것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은 인간 존엄성의 한 면을 이룬다.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는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일에 시간과 힘을 바치는 것은 자기가 누군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그것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이 형성되기도 한다. 중요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겉으로 보기에는 심각해보이지만 곧 지나갈 중요성을 지닌 것의 차이를 인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즉, 균형과 조화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 또한 인간 존엄성을 표현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8장.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

    p416.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이젠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없어.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잃어간다고 해도 여전히 나 자신으로 남아 있는 거야.
    p421.
    질명으로 아픈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숨겨서는 안 된다. 임종을 앞둔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무슨 병인지,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더 남아 있는지, 어떤 고통을 겪을 것인지, 그것을 경감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을 해주어야 한다. 왜일까? 외적 행위나 내적 생각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숨기고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지막지한 간섭이다. 그런 행위는 인생을 마감할 기회를 강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p424.
    내 생명이고 내 죽음이죠. 어떻게 죽을지는 나 혼자 결정할 일입니다. (중략) 의사의 윤리는 환자의 자유 결정권 앞에서 그 한계에 다다르기 때문이죠. 환자 스스로가 죽는 것이 더 좋겠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p431.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충분히 살았다, 더 오래 끌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꼭 불행하거나 부족함이 많았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법은 없다. (중략) 그에게는 다른 동기가 있다. 미래가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
    이 책을 두번째 읽고 있다.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한번이라도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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