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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 이완의 자세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16. 18:31

    김유담

    p43.
    이제와서 엄마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엄마는 지금의 내 또래에 불과했고,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따금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 때수건으로 세게 민 것처럼 마음이 따끔따끔해지곤 한다.
    p49.
    양말을 제때 꿰매주지 않아 때때로 내가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니는 것도 모르는 엄마의 무신경함에 신경질을 내고 싶다가도, 졸린 눈을 부비면서 내 무용복 한복 저고리 동정만은 매번 손바느질로 새로 달아주던 엄마를 보면 맥이 풀렸다.
    p84. 
    나는 그때서야 여탕이 온갖 사람들이 구별없이 드나드는 옷처럼 개방되어 있어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멀쩡한, 너무도 멀쩡한 몸을 가진 사람들만 자신있게 벌거벗은 채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이란 게 눈에 보였다. 목욕탕에서는 체력 소모가 컸다. 대중탕은 그것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오갈 수 있었다.
    p95.
    무용을 통해 인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곡선과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지 배우기 이전에 그저 몸은 몸일뿐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 채버렸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끊임없이 씻겨주어야 하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자라면서 몸이 여자의 꼴을 갖춰갈수록 내 안에서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커져갔고, 내 춤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p106.
    목욕탕은 계급장을 떼고 사람과 사람이 알몸으로 만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엄연히 서여로가 위계가 존재했다.
    p107.
    '불구하고'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불과하다'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때밀이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엄마를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때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모녀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p165.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 인생은 지겹도록 기니까.

     

    (★)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계급은 나눠져 있다. 대기업과 대기업이 아닌 곳에 다닌다던가, 고학력과 고학력이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차이. 개인적으로는 세신사는 모두가 공평하게 벌거벗은 곳에서도 끊임없이 노동을 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우리가 일단 몸을 맡기면 잘 해달라고 속으로 빌어야 하는 위치가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시대라서 나는 내 시간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사고 있다. 내가 요리하는 것보다 남이 시간을 투자해 만든 음식이 더 맛있고, 내가 수리하는 것보다 남이 시간을 투자해 고쳐주는 것이 더 완벽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벌어야 했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어머니는 누구의 시간을 사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썼을까? 아마도 딸의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던 것 아닐까?
    사실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표지가 이뻐서였고, 목욕탕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는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끝을 맺는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