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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희랍어 시간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16. 18:43
한강
p15.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 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p40.
동기가 어떻든,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얼마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걸음걸이와 말의 속력이 대체로 느리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마 나도 그들 중 한사람일 테지요.) 오래전에 죽은 말, 구어로 소통할 수 없는 말이라서일까요. 침묵과 수줍은 망설임, 덤덤하게 반응하는 웃음으로 강의실의 공기는 서서히 덥혀지고, 서서히 식어갑니다.p55.
그에 비하면 언어는 수십배 육체적인 접촉이었다. 폐와 목구멍과 혀의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간다. 혀가 마르고 침이 튀고 입술이 갈라진다.p87.
그녀는 그 단어들을 알지만, 동시에 알지 못한다. 구역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 단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것들을 쓸 수 있지만, 쓸 수 없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다. 조심스럽게 숨을 내쉰다. 들이마시고 싶지 않다. 깊게 들이마신다.p151.
사춘기 때, 저에게도 가장 어려웠던 게 미소였어요 쾌활하고 자신있는 태도를 연기해야 한다는 게, 언제든 웃고 인사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저에게는 힘들었어요. 때로는 웃고 인사하는 일이 무슨 노동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흑백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가슴이 너무 답답하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