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1월 28일, 조력자살 :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4. 2. 20:40
미야시타 요이치
p27.
머지않아 몸도 못 움직이고 천장만 바라보는 삶이 기다리는 인간의 고뇌는 당사자가 아니면 가히 짐작도 할 수 없으리라.p38.
안락사를 선택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립심이 강한 학구파였다.p162.
그녀는 삶을 포기했기에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온갖 고통을 안고서도 삶과 마주했지만, 그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p249.
이걸로 모든 것이 끝났다. 끝없이 고통받던 세월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결국 염원하던 안락사를 이루고, 고지마 미나는 51년간 이어온 삶의 막을 내렸다.p274.
육체적인 고통을 겪지 않아도 정신적인 고통을 안고 죽어가는 것을 이상적인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도 정신적인 기쁨을 지니고 자연스럽게 잠 드는 게 이상적인 죽음일까.p300.
죽는 방법에 대해 나는 그다지 고집하는 바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각자의 삶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을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사람이 슬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은 확실히 말해두고 싶었다.p345.
안락사가 '좋은 죽음'인지 아닌지는 저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내가 허무함을 느낀다는 건 아직 안락사를 긍정할 수 없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나는 병에 걸리게 되면 조력자살부터 찾아볼 생각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항암치료로 시간을 보내던 엄마의 모습이 인간적인 기본권이 모두 박탈된 채 가족들의 희망과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는 것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항암치료를 통해 일상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를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한 본인 자신의 의지로 가족들과 더 오래 있고 싶어 치료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이 역시도 아니다. 아직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고통스러워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어 했던 엄마를 떠올리면,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을 계속해서 반복할만큼의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최소한에 '중단'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으면 한다는 것.
아마 이 안락사나 조력자살은 계속적으로 윤리적 문제의 중요 쟁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화는 아직 늦출 수 없으면서 환경 오염 등으로 알 수 없는 질병이 계속 생기고 치료가 어려워 고통스러운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현재의 진행 과정 속에서 예측해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