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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아날로그 살림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1. 5. 17. 20:11
이세미
살림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저녁에 뭐 먹지?'는 주부들 사이에선 인사 같은 단골 고민이고 누군가가 나를 '밥하고,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너무 서럽고 화가 날 것 같다. 살림은 왜 우리에게 이런 이미지가 되었을까?
'살림'은 살리다라는 단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해도 티도 안나는, 게다가 월급도 없는 그런 일이지만 살은 나와 가족을 보살피고, 살리는 중차대한 일임이 틀림없다. 살림이 지긋지긋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은 나의 시간과 돈과 감정이 끊임없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살림이 재미없게 느껴지니 나의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살림살이들로 채워 나가는 것이다. 어떤 일이나 그렇듯 살림에 있어서도 중요한 건 마음이다. 살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고 살림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을 되찾으면 낭비는 저절로 줄어들게 된다.나의 방법은 '3일의 규칙'이다. 어떤 물건이든 생필품이 아니라면 구매 전에 3일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모든 유혹들을 끊어버릴 수 없으니, 규칙을 세워 내 무의식이 활개 치며 실수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는 디자인도 아니고, 인테리어도 아니다. '절제'를 통해 행복과 만족을 찾는 생활방식이다. 진짜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싶다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절제'를 심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것' '이기적'의 정의이다. 이기적 살림환경이란 말 그대로 살림이 나에게 딱 맞게, 나를 위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림은 장비빨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림은 애착 장비빨이다. 잘 길들인 살림들은 사뭇 오래된 친구와도 같다. 존재만으로도 내가 익숙한 곳에 있구나 하는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무엇을 할 때나 늘 함께하는 느낌이 든다. 낯선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어 친구가 되듯, 나와 시간을 함께하며 내 손길에 길들고 애착이 붙은 살림들이 늘어나면 살림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의 것에도 욕심이 났다.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 남들도 인정해 주는 그런 일, 그냥 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그런 일 말이다. '살림'은 나에게 그런 일이 아니었다. 그저 결혼을 하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위 어른들의 "그래 살림이나 하면서 좀 쉬어"라는 위로에 나도 그래야겠다 수긍했으니 말이다.
같은 돈을 사용함에 있어 아껴야 할 곳에 아끼고,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쓰는 것. 생활비를 잘 유용해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일종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돈 잘 쓰는 재미이다.
비싸고 유명한 전시나 공연이 아니어도 좋다. 나의 취향과 생각을 알아가고, 그 시간만은 나를 위해 온전히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무엇을 적용시킨다는 것은 자전거에 익숙해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시도해볼 크고 작은 장애물들이 있을 것이고 '나는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 하고 싶지만 시작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먹고 시도했다가도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모르고 갈팡질팡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조금 익숙해져 잘 해나가는 듯해도 작은 장애물에 겁을 먹어 멈춰설 수도 있고, 그렇게 멈춰선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 다시 시도해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가 세차게 내린 후 무지개를 보듯 그런 과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지속해가면 어느 새 실수가 줄고,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살림은 생활입니다. 살림의 작은 부분부터 바뀌어 나가 생활 전체가 변하는 기쁨을 맛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
온라인에는 야무지게 살림하는 살림 고수들이 많다. 전업주부에서 겸업주부까지. 그리고 요즘에는 살림을 잘한다는 것이 단순히 청소나 집의 정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친화적인 부분도 포함하는 것 같다. 이전에는 살림 관련 신상품이 나오면 써보고 싶은 마음에 잔뜩 주문하고는 했는데, 요즘에는 물건을 다 쓰기 직전에 하나씩 장만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있다. 가끔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시에는 먹고 마실 비상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농담(다, 좀비 영화 탓이다)을 하지만, 수납장 한켠이 비어져 있으면 그게 또 그렇게나 뿌듯하다.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살림꾼이 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