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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9. 시절일기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1. 1. 13. 13:34

    김연수

     

    p7.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내게 혹은 이 세계에 일어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뭔가를 끄적이는 일이었다. 

     

    p9. 
    지난 십 년 동안 쓴 글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펴내는 지금, 어떤 글이 내가 쓴 글이고, 어떤 글이 저절로 쓰여진 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렇게 또 하나의 시절에 마침표를 찍는다. 

     

    p20.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번 더 살 수 있다. 

     

    p43.
    일단 스펙터클이 된 타인의 불행에 사로잡히면 찌꺼기처럼 어떤 감정이 우리에게 들러 붙는다. 목구멍 안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하지만 이물감 외에는 그다지 고통을 주지 않는 생선가시 같은 것. 고통이라기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운, 우리 내부의 타자.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슬퍼한 뒤에야 우리는 우리 안의 이 타자를 애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떤 슬픔으로도 그 타자를 애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타자에 대한 윤리의 기본은 근야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이다.

     

    p77.
    정약용은 왜 그토록 읽고 써야 했을까?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자신들의 집안은 폐족이 되었으니 이제 살 길은 오직 독서뿐이라고 했다. 그러니가 살기 위해서는 그는 읽고 쓴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살아남아야만 했던 이유는, 신유년에 일어난 일들의 진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p98.
    글쓰기에도 꿈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꿈을 꾸기 위해서 작가가 신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그 누구도 신이 될 필요는 없다. 단 한번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p139
    마흔살을 지날 때였다. 나는 이 세상이 몹시도 싫어졌다.

     

    p140
    하지만 마음은 죽었으되 몸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는 가끔씩 눈에 띈다. 그게 바로 '아직 끝나지 않은 종결 상태'. 가장 깊은 절망 상태다. 그때, 사람이라면 당연하게도 빨리 종결짓고 싶은 욕망을 느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생에는 자살이라는 파국이 온다.
    그러므로 자살은 몸을 향한 마음의 공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음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차마 그럴 수가 없다'는 이 마음은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언제나 눈물겹다.

     

    p170
    내게 문학은 여전히 경이롭다. 그러니 문학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임시적 존재로 되돌아갈수밖에.

     

    (사랑의 단상, 2014)

    p317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p327
    마찬가지로 어제는 당신의 뒷모습만 자꾸 떠오릅니다. 얼굴은 어떻게 생겼더라,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 뒷모습만, 그저 뒷모습만. 내가 당신의 뒷모습을 사랑한 게 아니었는데도 가을의 거리에서 돌아서 걸어가던 그 뒷모습, 여름의 밤에서 땀을 흘리며 잠들었던 당신의 뒷모습만 떠오릅니다.

     

    (★)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워지는 김연수님의 산문이다. (이상하게 에세이라는 말보다 산문이라는 말이 나는 더 정감이 든다.) 읽으면서 내가 겪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내가 겪었지만 무심했던 시절에 대한 되돌아보기를 하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특히 세월호 사건(2014)과 관련해서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가지는 작가의 죄책감이 느껴지면서 나 역시 현재도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무고한 생명의 희생의 문제를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치열해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겠지만, 너무 무심하고 또 무심하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