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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홍콩에 대한 추억글쓰기방/먹고 마시고 2019. 5. 23. 22:02
홍콩에 대한 추억
외부 미팅을 하다가 인스타그램에서 테스트하려고 보니, 일년 전 오늘 동료들과 홍콩에서 교육을 받았던 추억이 나타났다. 해당 교육을 같이 받았던 동료들 중 일부는 싱가폴에 가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 일년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 외노자의 기억...
홍콩은 특이하다, 적어도 나에게. 짧은 9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홍콩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홍콩회사이지만, 한국에 파견나온 형태로. 나에게는 외국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여러모로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비자였다.
회사가 스폰서하여 비자를 만든다고 해서, 나는 당연히 취업 전에 뭔가 다 해결이 될 줄 알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직접 가야 했던 것이었다. 사실, 회사 입사 첫 시작을 홍콩에서 한 이유가 비자와 급여통장 만들기 때문이었다고 하면... 좀 황당할 수 있겠지만, 그랬었다. 나의 출장 첫날의 일정은 온종일 비자와 급여통장을 위해서 받쳐졌다. 그리고 나서 하루 정도 업무 때문에 (사실 업무라기보다는 기기와 HR 미팅 등) 머무른 것 빼고, 나는 나를 고용한 홍콩 회사에 자주 갈 일이 없었다. 나는 주재원 같은 입장이었으니까...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 방문한 곳에서 나는 당황했다. 내 눈에는 어려보이는 (그 때에는 필리핀 사람들로 짐작했는데...) 여러 여자 친구들이 한 층에서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의자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나는 사실 그 때 줄이 길어서 내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부 안내 담당자에게 문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취업 비자라고 하더라도, 나를 보증해주는 회사는 홍콩에서 유명한 대기업이어서 별도의 줄 없이 단 몇십분(사진이랑 서류 검토 등) 안에 모든 절차가 마치는 곳이었고, 그들은 나에게는 낯선 "보모" 역할을 위한 취업비자를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은행의 기억은 정말 "힘들다"였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꽤 운이 좋았다. 내 월급 통장은 별도의 수수료 등이 부여되지 않았고, 나는 단 몇 시간에 (나는 힘들었지만...) 급여 통장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 시스템을 적어도 한번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홍콩의 은행 시스템은 답답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홍콩에 대한 나의 첫 기억
몇년 전, 대학원을 다닐 때 학회 참석 차 같은 연구실 동생들과 홍콩을 갔었는데 휴일이 포함된 어느 날, 우리는 밥 먹으러 나가다가 진풍경을 목격했다. 어는 역과 역 사이를 걸어가는데, 피부가 어두운 색의 여성분들 다수가 박스를 깔고 앉아서 포장해온 음식을 먹으며 서로 수다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떄 그걸 몰랐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유로 홍콩에 왔었는지. 우리는 일종의 시위대(한국에서, 특히 서울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장기 투쟁의 시위대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과격한 문구는 없었지만...) 혹은 난민 정도로 간주했었는데, 나중에 홍콩과 싱가폴에서 장기 거주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보모"라는 문화와 그들의 휴일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그 때 그 곳에서 원정 촬영을 나온 한국 연예인들 (러닝맨이었나?)을 유명한 관광지에서 목격했고, 바쁜 학회 일정을 소화했다.
언니와의 첫 해외 여행, 홍콩
나는 혼자라도 해외를 나가려고 했지만, 우리 언니는 의외로 해외와의 연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언니의 해외 첫 여행은 나였고, 두번재 여행은 파리로의 신혼여행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결혼하고서 형부와 몇번 해외를 다녀온 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 이 여행은 자매간의 첫번째 여행이라서 나에게도 신기한 여행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부모님과 많은 곳을 다녔다. 물론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의 기억은 없다. 아버지는 한창 국내외 출장으로 바쁘셨지만, 틈틈히 시간을 내어 국내 곳곳을 다녔으니, 큰 불만은 없고 오히려 감사하다. 어쩄든 언니와 나는 아름다운 야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나에게는 사실 처음이 아닌 이 야경이지만, 자매라는 이름으로 보는 것은 더 특별했을 지도...
다시, 현실로...
멀리서 보이는 AIA에 대해서 가슴은 아직 뛰었다고 할까. 짧지만 나에게 강한 기억이 되는 그 곳. (물론 내 부서가 있는 곳은 저 곳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 교육을 같이 했던 동료들과는 참 좋은 기억만 가득하니까. 또 힘들게 만든 급여 통장을 정리해서 남아 있던 한화 몇십만원을 찾아 동료들에게 맥주를 사면서 홀가분했던 기억도 있다.
마치며...
앞으로 내가 홍콩을 얼마나 갈 기회가 주어질까? 사실 이전 홍콩 회사를 나오면서 다시는 홍콩 회사에 취업해서 일하지 않는다고 공증 받아 그 동안 납부 했던 연금을 찾았는데, 관광이든 일이든 내가 이 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들긴 한다. 하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과 이 곳을 방문한다면 좋은 추억은 쌓을 수 있겠지만, 몇년 동안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를 나는 업무가 아닌 이상 또 방문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마치 추억에 연연하는 나이든 사람처럼 보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