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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위로가필요해글쓰기방/일상 2019. 4. 11. 08:05
폭풍 같은 미국 출장이 끝나고 출근. 부모님 댁에 맡겨둔 문서를 찾기 위해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교통사고가 있었다.
영화 <이프 온리>를 떠올렸다. 영화 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나온 교통사고 장면. 그 수준만큼 처참한 것은 아니지만, 달리는 택시를 달리는 버스가 들이 받았다. 그것도 뒤에서 정면이 아닌, 내가 앉은 자리 근처에 말이다. 다행히 모두가 과속이 아니었지만, 그리고 내가 안전벨트를 해서 외상이 없었다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고는 사고였다. 이틀 동안 몸살에 걸린 것 같이 이유 없이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택시 기사와 회사의 상투적인 응대. 교통사고 접수를 하게 되면 가해자 분별해서 복잡하니 너만 참고 넘어가자는 식. 아니, 내가 강호동님이나 마동석님의 외모였다면, 아니 그냥 내가 남자였다면 과연 이런 이야기를 쉽게 내 뱉었을까? 화가 난 나는 남편에게 대신 전화해서 사고접수번호를 달라고 해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와 통화가 끝나자마자 택시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앞에서 말한 상투적인 이야기를 나에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담당자의 말을 끊고 이야기 했다. "논리적으로 말씀하신다고 하는데, 논리적으로 이야기 하면 사고 난 지 48시간 만에 저에게 전화하는 것은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일인가요?" 기사가 어제 늦게 보고를 했다는 이유를 댄다. "기사님이 사고 나자마자 회사와 통화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직접 들었는데요, 승객 입장을 헤아리신다면 적어도 어제 저녁에는 저에게 이런 전화를 하셨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사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을 크게 느낄 일은 없었다. 집에서 자매로 컸고, 부모님이 아들이 아닌 것으로 우리를 구박한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도 남자가 아니라고 배척 받은 일이 없었다. 오히려 맡은 일을 똑부러지게 한다고 다양한 기회를 얻었을 뿐. 대학에 와서도 나는 여자라서 보호 받거나 예외가 적용되지 않았다. 나도 똑같이 밤을 세우고 과제를 못하면 성적이 낮았고, "여자여서"의 불이익도 이익도 없었다. 회사에 와서도 남성이 아니라고 뭐라고 하는 상사는 없었다. 기회는 항상 똑같이 주어졌고, 그저 내가 잘하고 못하고에 의해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를 나 또한 수긍하며 받아들였다.
그런데, 신기하게 나이를 먹으니 나의 젊은(?) 날과 다르게 부조리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경우 내가 피해를 보는 순간에 더 억웉한 일들이 생겼다. 내가 피해자인데, 나를 배제하고 이야기하거나 피해자인 나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가해자"를 위한 절차와 방어막이 생긴다. 물론 여성이라서 더 크게 느끼는 일도 있지만, "인간"으로써도 상실감과 분노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내가 옆에서 보는 관찰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말도 안되는 억지스러운 일들. 일찍이 이런 일들을 겪었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나이도 많은 택시 회사 담당자에게 훈계 아니 훈계를 뒀다. 사고는 났고, 피해자는 나인데 어째서 사고를 일으킨 두 당사자의 편의만을 생각하느냐고. 적어도 그런 편의를 위해서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으면 나를 먼저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설득력이 있지 않겠냐고. 하지만 나 역시도 모자른 사람이다. 나의 시간을 구하기 위해서 지리멸멸한 싸움을 피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강하게 믿는 "인생은 제로섬". 지금은 당장 회피하고 얻는 것이 많을 지라도 결국 다 뱉어내야 하는 것. 아마 그들은 다음 번에 나보다 더 강한 강적을 만나서 더 호되게 혼날 것이라는 것.
결과를 떠나서 이런 날에는 반려견이 주는 따뜻함이 그립다. 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믿는 우리 금이. 내가 아파서 누워 있는 날에 항상 옆에서 웅크리고 자던 그 아이가 주던 그 위로가 간절했다. 참 힘들게 시작하는 4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