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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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바깥은 여름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 09:07
김애란* 문학동네 입동p11.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 했다. 명의만 내 것일 뿐 여전히 내 집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십여 년간 셋방을 보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는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한 자부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아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닌 피곤도 겹쳐 있었다.p18.아내와 나는 복분자액이 터진 날의 일을 따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음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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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달려라, 아비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2. 7. 11:08
김애란 p15. 바람이 불면 오랫동안 빨지 않은 녹색 커튼이 펄럭 거려다. 나는 커튼 안에 고개를 파묻으며 깊은 숨을 쉬웠다. 먼지 냄새가 주는 그 오래되고 아늑한 느낌이 좋아서였다. 먼지 냄새는 뭐랄까,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번은 살았던 것도 같은,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는 세상 말이다. p45.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리기는 강한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를 떠난 사람이, 나를 떠난 곳에서 오래 달리고 있는 이유를, 그 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p95. 나는 입을 열지 않고 중얼거린다. 이것 모두 꿈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오기 위해 북태평양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바람처럼, 어쩐지 나는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