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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8. 빈틈의 위로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6. 10. 10:00

    김지용, 강다솜, 서미란, 김태술

    * 아몬드


    개인적으로 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작품(소설, 영화 등)의 주인공들을 정신과적 측면에서 설명을 보기도 하는데, 물론 작가의 의도와 일치할 지 모르지만 소설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책의 시작은 나의 우울에서 기인했다. 정신과를 가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가기 싫었다. 간다는 것은 치료를 하겠다는 것이고, 치료를 하겠다는 것은 살겠다는 나의 의지가 있다는 것이라 믿었다. 소리소문없이 소멸하고 싶은 나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다시 이 아픔들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개인 생각 및 의견


     

    추천의 말

    옥상달빛 김윤주 (뮤지션)

    p5.
    상대방의 무거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도 모르게 못난 마음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내가 가진 마음의 무게는 별것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거나 무시해도 괜챃다는 생각.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이젠 매일매일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나도너와 비슷한 시간이 있엇다고,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현재를 살길 바란다고, 그리고 더 행복해지라고.

    이재규 (감독,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연출)

    p5.
    우리는 '빈틈'을 채우려 애쓰지만, 저자들은 '빈틈'을 만들려 애쓴다. 아침 햇살이 좋아서, 비 오는 소리가 좋아서, 길을 걸으며 땀을 흘릴 수 있어서, 이불 속에 누워 꼼짝도 안 할 수 있어서...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머리말.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한 당신에게

    p7.
    칼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삼십 대까지 그저 열심히만 살아온 사람에게 '이제는 진정한 자신이 되라'는 내며의 신호가 오고, 그로 인한 삶의 격변 과정에 우울증이 동반될 수 있다고 보았다. '지진'은 기존의 삶을 무너뜨리고 인생의 구조를 새로운 방식으로 쌓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결국 사회라는 것도 개개인으로 구성되는 것이니, 이 이론을 사회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열심히만 달려오던 우리나라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지진이 찾아온 것이라고, 그래서 우울증을 앓게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결국 개개인의들의 변화가 모여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고, 조금 더 살만해지는 세상으로 변하는 것 아닐까(p8)"라는 저자의 말이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1. 해야 하는 일에 짓눌린 당신에게 필요한 것 / 김지용

    p18.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고난에는 삶의 긍정적 변화를 위한 기회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내가 진료실에서 수없이 보고 배운 확실한 진리다. 부정적 생각에 압도되어 있는 환자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곁에 있는 나라도 잊지 않고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p24.
    ... 정신과를 찾는 이들 사이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균형이 깨진 삶은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는데,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삶의 균형이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절뚝이는 마음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균형이 무너진 사람은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뉘었다.

    (★) 저자가 말한 두 가지 그룹(p25)은 하나가 과속질주, 나머지는 출발선에 멈춘 사람들이다. 사실 나는 과거에는 과속질수, 이제는 출발선에 멈춘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저자 역시 이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만 한다는 마음"에서 나온다(p25)고 이야기 해준다. 우리는 너무 열심히만 하려 하는 건가...

    p32.
    긴 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자아(ego)가 마음속 이인조 중 하나인 '자기(self)'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곧 거센 반격을 맞닥뜨리게 된다. 평생 그의 마음 속 주인공인 양 의식과 자아를 지배해온 또 다른 이인조, '페르소나(persona)'의 반격 말이다.
    p38.
    페르소나는 자아의 가면, 겉껍질을 뜻한다. 이는 한 사람이 외부 세계에 내보이는 모습, 가장 외적인 인격으로 사회로부터 요구받는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페르소나는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p39.
    융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있을 때 성격의 다른 측면들이 발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략)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이후엔 더욱더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가면 될 텐데, 페르소나 외의 다른 목소리들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이후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p42.
    자아의 가면인 페르소나는 이렇게 그 기본 틀이 '가정'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익숙한 가면의 역할에 맞춰, 하던 대로 반복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내가 쓰는 내 가면인데, 외부의 요구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가 무엇일지 고민하기도 전부터 틀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있다. 이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데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것이다. 융 역시 누구나 인생의 전반기인 이삼십 대까지는 어쩔 수 없이 페르소나에 종속되고, 이후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기실현'이라고 말했다.

    (★) 저자는 융이 페르소나가 해당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요하나 개인의 삶의 수단일 뿐, 지나치게 동일시되어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소개(p49)했다.

    p54.
    자존감은 세 발 탁자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 효능감, 자기 안전감, 자기 조절감이라는 세 축 중 하나만 무너져도 온전히 유지되기 힘들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무너진 축을 수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미 튼튼한 축을 더 두껍게만 하는 것이다.
    p54-55. (요약)
    * 자기 효능감 :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 자기 안전감 : 내 인생이 안전하게 유지된다고 느끼는 감각
    * 자기 조절감 :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p58.막
    '페르소나'와 '자기 효능감'만을 강조하는 이 사회 속에서 '자기 조절감'을 박탈당한, '자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만난다. 
    p60.
    그저 일상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슬쩍 끼워 넣어주길 바랄 뿐이다. (중략) 작더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삶에 끼워 넣은 분들에게 나타나는 변화를 나는 끊임없이 목격한다. 일상에 '사소한' 변화를 주었을 뿐인데, 정신건강에는 놀랄 정도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을 정말 많이 보았기에 증언할 수밖에 없다. 

     

    2. 마음의 염증을 흘려보내는 법 / 강다솜

    p72.
    마음을 할퀴는 말들도 버티기 힘들었지만 해주는 조언들이 서로 상충될 때는 더 힘들었다. (중략) ...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식으로 툭툭 던지는 말들이었지만 나에겐 참 버거웠다. 사람들이 조언을 던진 이유가 관심과 애정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모든 말들이 힘들었다.

    (★) 사람들은 정작 자기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남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자기를 돌보는 게 먼저인데, 왜 남을 먼저 돌보려 하는지...

    p87.
    역시 사람은 한계에 다다르면 뭐라도 하게 되나 보다. 이성이 막아서면 무의식이 움직여서라도.
    p91.
    퇴근 후에도, 휴일에도 언제 어떤 연락이 올지 몰라 항상 긴장 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화가 많아졌다. 화를 품고 바라보는 세상은 절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위하는 말도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작은 것에도 화가 났다. 가장 최악인 부분은 '이렇게 힘든데 받아줄 수 있는 것 아냐?'하고 화내는 나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장 소중한 사람들, 편한 사람들에게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많이도 보여줬다. 
    p96.
    김지용 : 말하신 그대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감정을 감추고 가면을 쓰고 살아야겠지만, 이 페르소나라는 가면이 지나치게 커지면 우울증을 겪을 위험이 올라가요. 그 가면 속에 감춰진 진짜 나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 그렇죠. 
    p101.
    '쓸모없어도 된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나에게 선물해주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나도 나만의 꽃밭에서 마음 속에 묵은 찌꺼기를 내보내 꽃밭의 거름으로 주면서 오롯이 내 소유의 정원을 가꾸고 싶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p106.
    인터넷 검색으로 영화의 내용을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책과 같았다. 책도 줄거리를 훑는 것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공들여 읽는 것이 전혀 다른 경험을 안겨주는 것처럼,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책은 작가가 이야기를 건넨다면, 영화는 감독과 배우가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좋은 대화를 나눴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p108.
    김지용 : ... 압도적으로 힘들 때는 앞으로의 삶도 절망적일 것이라 느껴지지만, 그 느낌대로만 삶이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열화나 드라마가 계속 알려줘요. 다솜 아나운서도 영화 속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작품 속에 숨겨진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계속 전달받지 않았을까요?
    p129.
    여행지에서 나는 회사에 부적응 중인 아나운서도,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애쓰는 딸도 아닌 그저 여행자였다. 여행자에겐 의무가 없다. 내 마음대로 할 일을 정할 수 있고, 언제든 일정을 바꿔도 상관없으며, 그 모든 것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대도 다 여행의 묘미라고 여길 수 있다. (중략) 여행은 그동안 끊임없이 해오던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멈추고, 남들의 평가에서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시설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부족한 많은 것들이 쉽게 용인되기도 한다. 거기서 오는 안도감도 있다. 말을 모르고 글을 못 읽어도, 길을 헤매도 그저 그럴 수 있는 외국인이다. 어설픈 현지어 한마디에 칭찬까지 듣기도 한다. 돈 씀씀이도 평소보다 조금 더 유연해진다. (중략) ... 자신에게 쓰는 인심이 조금 넉넉해진다.

    (★) 물론 사는 것 만큼 힘든 여행도 있다. 도둑을 맞거나 재해가 있거나 등등... 그런데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자신에게 조금 넉넉해지는 마음을 가지는 것. 이방인이기 떄문에 관대함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정도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객과 이민자... 생활이 되면 무엇이든 다 녹록치 않은 것인가? 유럽 거리를 걷던 내 30대가 그립다. 혼자서 위험한 줄도 모르고 거리를 무작정 걸어다녔던 그 햇살 좋은 미국의 광활한 지평선과 수평선.

    p134.
    카메라를 통하면 렌즈에 따라 같은 사물과 공간도 다르게 보였다. 뷰파인더에 눈을 대면 다른 세계에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무언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을 나만의 시선으로 포착해낼 때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p136.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큰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소소하게 선택을 이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돌보는 일에 시간을 쓰기로 선택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야 주어진 하루를 잘 꾸려갈 수 있다는 어쩌면 뻔한 진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p137.
    시선을 멀리 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일상과 전혀 상관없는 '딴짓'을 제대로 했을 때, 그래서 일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에 생긴 염증들과 묵은 감정들을 흘려보냈을 때, 완전히 흘려보내지 못했다면 적어도 잠시 내 마음의 방 저쪽 한 구석으로 밀어 넣고 잊을 때, 마음은 힘을 낼 수 있다. 그렇게 낸 '마음의 힘'이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오래 걸려서야 알았다.
    p145.
    김지용의 생각
    ...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해도 그들이 처한 환경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니 바뀌지 않는 것들 외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중략) 여전히 우리의 삶은 힘들겠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꽃밭을 가꾸는 순간이, 겨우 트인 숨구멍과 빈틈이 우리를 구한다.

     

    3. 불안이 필요 이상으로 덩치를 키우지 않도록 / 서미란

    p171.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쉬운 일이 자신에게만 유독 어려워서, 스스로의 부족함과 허술함을 감추느라 애쓰며 이삼십 대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처럼. 그런데 애써 감추려 하는 바로 그 부분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결정적인 힌트를 주는 것일 확률이 높다. 내 경우에 그건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능력이었다. 한 번도 당연하게 해낸 적이 없기 때문에 '능력'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p176.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야 했다.

    (★) 살면서 사회생활을 한다. 가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보며 도와주는 경우도 있지만, 외면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길 물어보는 건 잘 가르쳐주는 편인데, 사이비 종교 사람들 때문에 그마저도 걱정하면서 남을 도와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쨌든, 우리는 내가 남의 도움을 받게 되는 상황을 늘 염두해두며 사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걷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남을 좀 돕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p190.
    지금은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알고 있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내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으면서까지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은 그런 마음뿐이었다. 그떄를 돌아보면 여러 마음이 든다. 안쓰럽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데, 한편으론 안심이 된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는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무작정 열심히 믿었던 그 마음이 안쓰럽고, 그렇게 해도 잘 되지 않았던 일들과 갈 길을 모랄ㅆ던 나를 떠올리면 괴롭고, 하지만 그렇게 보낸 시간 덕분에 내게 맞는 방식을 찾아낼 수 있었음에 마음이 놓인다. 덕분에 좋아하는 일을 오래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다.

    * <헤아려 본 슬픔>, C.S. 루이스

    p198.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때의 내가 결국 찾아든 것이 책이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좋았다. 여러 번 곱씹어 정제된,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 말을 내가 필요한 만큼, 내게 가능한 속도로 꺼내어 들을 수 있었다. 채과 대화를 나눌 때는 더 솔직할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한 문단만 읽고 책을 덮은 뒤 화내고 슬퍼하는 것을 반복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책은 나를 기다려줬다. 그렇게 한 권 읽어보니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책은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딱 그 정도의 힘만 남아 있었던 것 같다.그렇게 다음 책을 읽고, 또 다음 책을 읽었다.

    * <악>, 테리 이글턴

    *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찰스 부코스키

    *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p199.
    지금껏 많은 책들이 독서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정작 그 출발점은 분명히 슬픔과 분노였다. 책은 감당할 수 없던 내 슬픔을 헤아려주고, 갈 곳 없는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려주었다. 완전히 고립된 기분이 들 때도 창문 밖 너머의 세상을 천천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로 알려주었다.
    p210.
    어떤 불안은 그 자체로 넓고 깊은 뿌리를 가졌고, 어떤 불안은 또 다른 불안과 손을 잡고 어깨를 걸어 덩치를 키웠다. 그러는 동안 오랫동안 모른척하며 살아온 낯선 나를 만났다. (중략) 나의 불안을 이해하려 하다 보니 누군가의 '불안하다'는 말도 이제는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혹시 그 말 아래에 존재할 지 모르는 오랜 고통을 짐작하게 된다.
    p214.
    어른이 되는 건 자랑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비교와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자라며 내 자랑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반대로 누군가의 자라엥 불편함도 느끼면서 좋은 일을 너무 티내지는 않는 '어른'이 되어간다.

     

    4. 내 안의 이인조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 김태술

    (★) 재밌게도 이 책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김태술 선수의 결혼식 및 직장변동(?) 기사를 읽게 됐다. 그냥 지나치던 게 또 알게 된다고 기사를 한 번 더 읽게 되는 상황에 관심이란 것도 어쩌면 내가 아는 딱 그만큼만 가지게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p226.
    하지만 지금 돌이켜볼 때 내 고통을 더 키운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누구보다 내가 강력한 송곳으로 나를 찌르고 있었다. 
    p245.
    글로 내 안의 마음들을 적어내려 가면서 크게 놀랐다. 내 안에 이렇게 나 서로 다른 마음들이 있었구나. 나는 한 명인데 어떻게 둘, 아닌 셋이 되어버렸지?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내가 또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p249.
    결핍이 만들어낸 성공, 그 이후 다시 겪게 된 결핍, 그 과정을 오롯이 견디며 열심히 살아온 삶이 후회되는가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생각해보면 난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결국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살았을 것 같다.그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것들이 내게 많은 것을 안겨준 것은 분명하다.
    p254.
    10년 전 나를 집어삼킨 슬럼프는 내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마냥 잃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5. 무엇보다 나를 더 아껴보고 싶어서 / 김지용

    p293.
    생각을 끊어주는 도구는 여럿일수록 좋다. 닻이 여러 개인 배가 덜 흔들리고 방파제가 여러 겹 쌓인 항구가 더 잔잔할 테니 말이다. 여러 도구 중에서도 과학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확실하게 입증된 것은 '운동'과 명상'이다. 그래서 진료실에서도 이 두 가지의 조합을 자주 권유하는 편이고, 나 역시 마음챙김 명상 기법을 내게 적용한다. 
    p302.
    마침 오늘 읽은 책에서 최재천 교수님이 "독서는 일이다, 빡세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빡세게 읽어 내 머리를 채워야 한다. 
    p302.
    이 세상의 수많은 말들이 우리를 가두려고 한다. 평생에 걸쳐 지속될 그 공격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왜 나를 세상의 틀에 가두려 하느냐고 아무리 원망하고 소리쳐도 이 새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중략)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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