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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7. 여섯 밤의 애도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6. 6. 10:00

    고선규

    * 한겨례출판

     


    자살이란 단어를 열심히 검색해보는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엿보고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의미가 없어진 삶을 살아내기가 벅차서 검색을 하였다. 다양한 방법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 보였다. 그래서인가 우연찮게 이 책이 나에게 추천 알고리즘으로 뜨게 되었고, 읽어봐야 하겠단 생각이 들어서 책을 펼쳤다. 

    사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인의 죽음의 형태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만, 금기시 되어 있거나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죽음에 따라 다르다는 걸 간과한 나의 생각이었지만,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엄마를 병환으로 떠나보내고 난 뒤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애도 모임의 한 참석자가 되어 책을 읽었다.

    삶이 버거운 사람들에게 감히 읽으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다. 남는 사람을 생각애서 삶을 선택하라는 폭력적 강요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족을 떠나 보낸 사람들에게는 추천해주고 싶다. 죽음의 모습이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가르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가 죽음의 순간을 예상하겠는가...

    (★) 개인 생각 및 의견


     

    프롤로그. 계속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해

    p10.
    숫자로 제시하는 죽음은, 그 죽음에 다다르기까지 겪었던 한 개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하므로 사람들은 무감하다.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라는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이 책에서 메리골드의 의미가 더 와닿는 걸 보니... 메리골드는 '꼭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고, 영화 <코코>에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에 뿌려진 꽃잎(p13)이라는 설명.

     

    1장. 우리는 모두 처음이었다 - 첫 번째 애도의 밤

    * 자살 생존자 권리 장전(Suicide Survivors' Bill of rights)

    p45.
    미국의 유가족 활동가가 만든 이 권리장전은 자살 사별자들이 애도 과정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을 하나씩 짚으며, 그런 생각과 느낌이 드는 것은 유가족의 당연한 권리라고 명시해두고 있다.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로 시작해서 새로운 시작을 할 권리가 있다고 마무리하는 이 권리장전의 내용을 읽다 보면 권리라고 이름 붙였지만 자살 사별자들이 애도 과정에서 겪어내야 할 과업으로 느껴진다.
    p60.
    시신을 보는 것은 사별자가 '눈앞의 죽음'을 보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물리적인 사건으로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애도는 물리적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함으로써 시작한다. 사별자들은 시신이 된 그 모습만 영원히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을까 두려워하지만 고인의 마지막을 봤던 사별자들은 오히려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고 말씀하셨다.
    p70.
    장례식은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음을 생각하는 자리이자 어떤 존재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자리이면서 남은 사람을 위로하는 사회적 만남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떠다는 것을 잘 배웅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살 사별자들이 기억하는 장례식은 산 사람의 잔칫집 같은 장례식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도 아니다. 낯설고 불편하며 혼란스러운 장례식이다. 그래서 고인을 잘 배웅하지 못했던 장례식이다. (중략) 시간이 지났어도 괜찮다. 허겁지겁 장례식을 해치워버린 자살 사별자라면 누군가와 함꼐 마음의 장례식을 꼭 치뤘으면 좋겠다.
    p79.
    자살 경고신호(Warning sign)란 자살 사망자가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나 자살을 할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를 말한다. 경고신호의 종류는 크게 언어적, 행동적, 정서적 범주로 구분한다. 
    p82.
    자살하려는 사람의 세계는 살아 있는 사람의 논리로 해독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은 때로 주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어떤 난공불락의 막에 휩싸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그 세계로 들어가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자신의 결심을 지지하는 증거로 삼아 자살을 결행하게끔 만드는 동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

     

    p87.
    "우리는 그냥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나날이었잖아요. 평상시와 비슷하거나 다르거나, 정말 소소한 일상을 살다가 준비하지 않은 채 갑자기 맞이한 일이었어요. 갑자기 떨어진 이상한 날 같은 그런 날이었어요."
    "이렇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제 평생에 또 있을까,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을까? 죽음은 진짜 돌이킬 수 없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2장 애도,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구나' 깨닫는 시간 - 두 번째 애도의 밤

    p98.
    다른 죽음에 비해 자살은 법적, 행정적 처리가 조금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고인의 자살 사망 후 법적, 행정적 처리가 복잡한 유가족의 경우 '자살 유족 원스톱 서비스 센터'를 통해 고인의 사망으로 발생하는 법률 관련 상속, 상속포기, 상속한정승인 지원 및 노무사 상담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p102.
    나 혼자 나를 위해서 내 배를 채우기 위해서 뭔가를 사 먹고 해먹는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냥, 사는 게 의미 없다, 부질 없다,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진짜 어디 동굴 같은 게 있으면 숨어서 안 나오고 싶었는데 돈은 벌어야 하니까 회사에 꼬박꼬박 나가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게 조금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p106.
    적응과 회복의 축만 작동하는 사별자는 고인의 죽음이 사별자에게 남긴 감정을 보고 그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상실의 아픔에 싸여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으려는 사별자에게는 회복과 적응의 축이 작동되어야 한다. 애도는 이 두 축이 맞물려 함께 돌아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삐걱댈 것이다. 애도 상담은 삐걱대는 곳에 기름을 칠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 <이블린(Evelyn)> (2019)

    p121.
    가족 구성원의 죽음으로 완전히 정지해버린 것 같은 가족들의 역사는 다시 흘러가야 한다. 그리고 고인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도 가족의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
    p127.
    중국 속담에 '당신의 슬픔의 새가 머리 위로 날아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고인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별자의 머리 위에 고통의 둥지를 짓는 첫 가지를 올려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p132.
    위로를 받고 싶지 않거나 오히려 사별자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타인이라면, 사별자 스스로 미리미리 심리적 안전막(psychological safety shield)에 넣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3장. 그 사람의 이름을 조금 더 편안하게 부르는 연습 - 세 번째 애도의 밤

    p145.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죽음 직전 며칠, 몇 주의 모습에 몰두하다 보면 그 사람의 삶에 있었던 흐름을 잊곤 한다. 사망 직전의 모습에서 고인의 삶 전체로 시야를 넓히는 것도 사별자의 중요한 애도 과업이다.
    p156.
    살아야 할 이유가 거창하다면 죽지 말아야 할 삶의 이유들을 생각하게 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삶의 끈들을 많이 만들어주는 거요. 아직 확실한 답을 찾진 못했어요. 잘 모르겠어요. 왜 죽지 말라고만 하는지.
    p159.
    우리는 종종 자살 사별자들을 위로한다며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선택입니다'라는 말을 한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이 자살 사별자에게 하는 쉽고 편한 위로다. 자살은 사별자가 고인이 죽음을 향해 갔던 그 길을 고장 난 기계처럼 무한정 구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이해할까 말까 한 일이다. 자살을 자살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그 순간에도 비겁한 변명이고 살아남은 사람이 살기 위한 합리화인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되는 일이다.
    p167.
    당장 어떤 결정도 하기 힘들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도 좋다. 물건을 떠나보낼 때도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다만 언젠가는 고인의 유품을 사별자의 방식으로 정리해야 한다. 고인의 생전 그대로 모든 걸 가져갈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물건은 변하고 낡을 것이다. 고인이 없는 빈자리에 고인의 물건을 둔다고 해서 그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인을 잃은 슬픔은 사별자가 평생 가져가야 할 짐이다. 그리고 그 짐의 무게는 평생 짊어지고 갈 정도여야 할 것이다.
    p174.
    자살학(Suicidology)의 창시자이자 오랜 시간 동안 자살자의 마음을 연구했던 임상심리학자 에드윈 슈나이드먼(Edwin S. Shneidman) 박사는 자살은 내적 대화의 결과라고 했다. 우리 마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훑어보며 탐색하고, 그중에 자살이 있지만 자살을 거부하고, 다시 자살을 훑는다. 자살이 거기에 있고 자살이 다시 거부된다. 그러다가 자살이 최종 해결책으로 선택된 후에는, 자살을 계획하고 이제 자살이 고통의 해답으로 고정된다는 것이다.

     

    4장. 남은 삶에 대해 엄두를 내는 용기 - 네 번째 애도의 밤

    p188.
    "정말 미안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내가 미안해."
    p199.
    심리학에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도덕적 가치관을 위반했고, 그래서 그 행동을 취소하거나 수정하도록 만드는 감정으로 설명한다. 죄책감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용서하거나 또는 자신이 부족했다고 믿는 부분을 보충해야 한다고 한다. 죽음 이후 사별자들이 느끼는 죄책감은 사별자를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옭아매는 감정이다. 죽음은 사별자가 어떤 행동을 취소하거나 수정하다고 해서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205.
    "일단 어떤 사람이 목숨을 끊으려고 결심한다면, 전저긍로 설득당해 난공불락으로 닫힌 세상으로 그가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세세한 것들이 맞아떨어지고 모든 일이 그의 결정을 강화해준다. 이러한 죽음은 모두 각각 그 나름의 내적 논리와 다시는 없을 절망을 담고 있다."

     

    5장. 고인의 행복, 고뇌, 열정까지 온전히 기억하기 - 다섯 번째 애도의 밤

    p233.
    "죽은 자에 대해 좋은 말이 아니면 하지 마라(De mortuis nihil nisi bonum)"라는 라틴어 표현이 있다. 나는 이러한 경구가 죽은 사람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기 때문에 고인을 책망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이 경구는 때로 죽은 자를 신성시하며 고인에 대해 어떤 얘기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선을 만들기도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사별자는 고인의 인생에 대한 기억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고인의 인생을 재구성하고 편집한다.  (중략) 하지만 과장된 찬사나 과장된 비난으로 고이느이 삶을 기억하려는 것은 건강한 애도가 될 수 없다.
    p251.
    고인의 시간은 여기서 끝났지만 사별자의 시간이 흐르는 한 고인과의 관계는 결코 끝날 수 없다. 우리가 한때 사랑했고 미워했던 사람들,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아프고 좋았던 경험들, 그리고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인생에 대해 배운 것들에 대해 사별자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자링에서 사별자의 새로운 삶의 의미가 생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애도는 회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발견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6장. 내 삶과 고인과의 건강한 연결 - 여섯 번째 애도의 밤

    p270.
    치료적 글쓰기는 혼자여도 좋지만 그 글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함꼐 있다면 더욱 좋다. 나의 글을 읽고 질문해주는 사람, 그때 내가 느꼈던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어떤 사람 말이다. 슬픔은 연결의 감정이다. 누군가를 잃은 그 자리에서 사별자는 다시 누군가와 단단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p277.
    우리는 마치 한번도 경험하지 않을 것처럼 삶에서 죽음을 베일로 가려놓는다. 그러나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가고 나서야 삶과 죽음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는 문 하나를 두고 있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모든 사별은 항동안 사별자를 슬프게 만들고 후회와 죄책감으로 번민하게 만들 수 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철학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도 한다. 모두가 정상적인 애도다. 

    * <자살과 그 이후(Suicide and its Aftermath)>, 아이리스 볼튼

    p284.
    8. 한 번에 한 순간씩, 하루씩 넘기며 살아가세요.

     

    같이 읽기 >>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315.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북로망스 점심 약속 때문에 방문했던 부산의 낯선 동네의 카페에 있었던 책. 사실 이런 소설을 선호하지 않지만, 시련이 있다고 느끼는 요즘에는 동네에서 이런 신비로운 대상을 통해

    lacasademariso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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