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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3. 라면을 끓이며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1. 23. 10:00

    김훈

    * 문학동네

     

    (★) 본 책은 기존 산문집의 합본이며, "이 책의 출간으로, 앞에 적은 세 권의 책과 거기에 남은 글들을 모두 버린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었음.

    1부. 밥

    라면을 끓이며

    p14.
    이것은 온갖 맛의 패키지인데, 먹고 싶은 욕망을 순식간에, 그리고 싸잡아서 만족시킨다.
    p17.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그 외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p23.
    미역국의 위안은 섬세하고 된장찌개의 위안은 깊다. 이 깊이와 섬세함은 스밈과 우러남에서 온다.

     

    광야를 달리는 말

    p35.
    아, 젊은 내 아버지는 망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에 흐느끼며넛도 조국이라는 사슬에 얽매여 칭칭 감기는 운명을 저주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가엾은 내 아들과 같은 젊은 아버지를 안아주고 싶었다.
    p40.
    <정협지>에 대한 60년대 초반 대중의 열광에는 그 시대의 꿈과 좌절, 고난과 희망이 뒤섞여 있다. 정(情)은 사랑과 인정이고, 협(俠)은 외로움이다. 정은 상대를 긍정하고 보듬는 삶의 태도이고, 협은 세계의 악과 대결하고 타인의 재난에 개입하는 삶의 원리이다.
    p42.
    아버지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공회전하는 그의 시대에 몸을 던져 가루가 되면서 좌충우돌했다. 아버지는 세상에 대한 미움이 많았고, 그 미움 때무넹 스스로 괴로워했다.

     

    바다

    동해

    p46.
    바다는 시간을 통과해 나가지만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았다. 바다는 늘 처음 보는 바다였다.
    p46.
    빛과 파도와 노을은 공간에 가득 넘치면서도 공간을 이루지 않았고,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았다.
    p50.
    삶을 지속하려는 자만이 연장을 만든다.

    서해

    p57.
    빛과 어둠은 지속되는 시간의 가루들을 서로 삼투시켜 가면서 교차되는데, 그 흐름 속에 시간과 공간은 풀어져서 섞여 있다.

     

    밥1

    p63.
    모든 '먹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밥2

    p68.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남태평양

    p69.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p83.
    기념물들은 희생자들의 죽음을 헌신으로 미화했고, 가해자들은 그 뻔뻔스런 단어 뒤에 숨어 있었다.

     

    갯벌

    p86.
    끝끝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무서움이 저녁 갯벌에 가득하고, 먼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온 내 짐보따리는 무겁다.

     

    국경

    p101.
    인간의 갈 길은 멀고 멀다.

     

    p109.
    공은 전쟁과 놀이, 다툼과 공존의 구형이다.

     

    목수

    p114.
    그러나 누구의 삶인들 고달프고 스산하지 않겠는가. 나무통이 좁아서 뿌리가 비어져나온 옥수수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새로운 슬픔으로 지나간 슬픔을 위로한다.

     

    p118.
    인간가 인간이 연결됨으로써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해낼 수 있다.

     

    목숨1

    p122.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 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목숨2

    p126.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p128.
    그러므로 죽음과 싸우지 않고, 죽음을 인도하는 것이 의업의 길이며, 그 길은 생로병사에 거역하는 길이 아니라 생로병사와 함께 흘러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어른다울 것이다.

    * 의업 : 삼업의 하나. 마음으로 하는 의지의 활동을 이른다.

     

    2부. 돈

    세월호

    p137.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인간은 삶을 기약한다.
    p144.
    그렇게 해서 4·16의 슬픔과 분노는 특별히 재수 없어서 재난을 당한 소수자의 것, 우는 자들만의 것, 루저들만의 것으로 밀려났다.
    p149.
    한국 국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정치 권력에 속아왔다. 불신은 사람들의 정치정서 속에서 허무주의로 자리 잡았고, 그 허무주의는 일상화된 악(惡)이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라, 그 일상화된 악의 폭발인 것이다.

     

    돈1

    p155.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돈2

    p158.
    돈은 기호이지만, 세상만물에 대한 포괄적인 구매력을 행사한다. 사람들이 다들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돈의 이 포괄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돈3

    p161.
    돈이 주는 안도감과 돈이 주는 불안감, 돈이 주는 성취감과 돈이 주는 절망감으로부터 우리는 도망칠 수가 없다. 돈은 추상성과 구체성을 동시에 완벽하게 완성해낸다. 무서운 일이다.

     

    신호

    p165.
    신호는 남으로부터 나에게로 오는 것이고, 나로부터 남에게로 가는 것이다.

     

    라파엘의 집

     

    서민

    p171.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서민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은 바로 그 지도자의 천민 근성이다.
    p172.
    지도자가 귀족의 명예심을 잃을 때서민의 지옥은 시작된다. '서민'은 귀족의 반대말이 아니다.

     

    러브

     

    불자동차

    p177.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구조받을 권리가 있고 또 인간이기 때문에 재난에 처한 인간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자명한 윤리가 매일매일의 도심에서 확인되고 있다.
    p183.
    사회가 고도로 조직화되고 세분화 될수록 사회의 밀도는 높아가고 인간은 고립되게 마련이다.

     

    소방관의 죽음

     

    3부. 몸

    바다의 기별

    p191.
    가을은 칼로 치듯이 왔다.
    p196.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자1

    p197.
    비는 살아 있는 것들 속에 숨어 있던 냄새를 밖으로 우려내서 번지게 한다. 

     

    여자2

    p203.
    아마도 그 여자들의 마음이 세상과 더불어 아늑하지 못하거나, 얼굴과 자아 사이에서 하해하기 어려운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p205.
    인간과 언어가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으로 바뀔 때 더러움이 발생된다.

     

    여자3

     

    여자4

     

    여자5

    p217.
    해마다 3만여 명의 딸아이들이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낙태되고 있다. 이 나라는 살해당한 딸들의 지옥이다. 딸들은 살아서도 죽어간다.

     

    여자6

    p222.
    아직도 아줌마들의 자유의 표정은 소외된 자유다. 그 자유는 아직도 무언가 더 채워져야 할 목마른 자유인 것처럼 보인다.

     

    여자7

    p223.
    사람의 목소리는 경험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추억을 끌어당겨준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생명의 지문이 찍혀 있다. (중략) 그러므로 내가 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너를 경험하는 것이다.

     

    손1

    p229.
    스스로의 결핍의 힘이 아니라면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세계를 시간 위에 펼쳐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상상력은 스스로의 결핍에 대한 자기 확인일 뿐이다.
    p235.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

     

    손2

    p238.
    손은 세상과 타인을 움켜잡고 쓰다듬고 깨우고 재우고 변형시킨다. 손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육신이다.

     

    발1

     

    발2

     

    평발

     

    4부. 길

    p254.
    사람이 길을 버리니, 길이 또한 사람을 버리는 것이어서, 옛길은 이제 적막하고, 새길은 또 옛길이 되어간다.

     

    바퀴

    p258.
    그리고 그 많은 바퀴들을 내 몸에 거느리고, 나는 여전히 땅에 묶여 있고, 땅과 더불어 살아 있고, 땅이 버티어 주어서 살아 있다.

     

    고향1

    p264.
    위태로운 고향의 마지막 나날들이 할머니에게는 옛날과 조금도 다름없는 평화로운 날들이다. 
    p266.
    뿌리 뽑히고 거덜난 삶 속에서 삶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늘 눈물겹다. 그들은 고난에 찬 삶을 통해서 말없는 실천에 도달해 있었다.

     

    고향2

    p274.
    타향 위에 고향을 건설하지 ㅁ소하는 한 당신들은 영원히 고아이며 실향민인 것이다.

     

    고향3

    p278.
    다들 서울로 몰려들어서 출신지 지역별로 정치적 패거리 작당을 한다면, 서울은 끝끝내 만인의 타향일 뿐이다. 한강은, 아직은 타향을 흐르는 강이다.

     

    p287.
    쇠는 단단함으로써 부드럽고, 쇠의 날은 날카로움으로 섬세하다. 쇠는 그 양극단의 모습을 함께 지향한다.

     

    가마

    p292.
    그러나 인간의 언어로 쓰여지는 나의 글은 그 여정에서 보여지는 저 은밀한 이야기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p295.
    세 마리는 '너'와 '나'와 '그'를 이룬다.

     

    까치

    p298.
    아마도, 자연을 거스르는 것들의 강력함은 그 외형과 구조의 견고함에 의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 강력함은 허약함을 내장하고 있지만, 이 내장된 허약함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일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거대한 허약함을 드러낸다.

     

    p303.
    이 세계에 사는 일은 고난과 수치를 내포하고 있다. 꽃조차 예외는 아닐 것이다.

     

     

    수박

    p309.
    돈과 밥이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필시 흥부의 박이다.

     

    11월

    p315.
    순응과 저항이 다르지 않다.

     

    바람

    p316.
    바람 소리는 바람의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세상을 스치는 소리다.

     

    5부. 글

    칠장사 - 임꺽정

    p321.
    삶을 살아내는 자들은 삶을 설명하거나 추상화하지 않는다.

     

    연어 - 고형렬

    p331.
    저절로 되어진 것들의 힘은 무섭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 추운 겨울 그가 알아챈 박경리 선생님의 모습. 과연 그만 알아봤을까? 그 때에는 모르는 척 해주는 그런 배려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작가의 말

    p346.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
    작가의 신간(<허송세월>)이 나올 때 즈음, 독서모임에서 사람들이 자주 언급했던 작가의 작품을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펼쳤다. 사실 내가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다. 아니, 첫 글이 어쩌면 내가 기대한 내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이런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내지 못했던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책이 주는 귀한 경험의 시간을 가지고 난 뒤에는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세월호 관련된 글에서는 다른 분의 책이 떠올랐다. 우리는 사회적인 모순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버리고, 그게 나의 문제가 아니라면 쉽게 외면하거나 안도하고 잊어버리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내가 되었을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조금은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생각조차도 생각을 해야 할 사람들은 하지 않고 덜 해야 할 사람들만 자꾸 반성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슬픈 현실이 있지만...

독서생활자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