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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각각의 계절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1. 15. 10:00
권여선
* 문학동네
사슴벌레식 문답
p14.
갈등과 암투만 먹고 사는 인간 같다.p27.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있었다.* 간명 : 마음에 깊이 새겨 잊지 아니함.
p34.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뻣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p38.
직시하지 않는 자는 과녁을 놓치는 벌을 받는다.(★) 어디로 들어와? 어디로든 들어와. 4명의 절친의 모습에서 우리가 겹쳐 보인다. 각자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우리는 다시 모일 수 있을까?
실버들 천만사
* 천만사 : 아주 많은 일
(★) 반희는 대화 후 자기 검열을 한다. 나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그래서 뭐?란 생각을 마무리 한다고 적다보니 꼭 앞선 단편 <사슴벌레식 문답> 같단 생각이 든다.
p48.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여야 했다.p76.
난 세상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에 안 띄고 싶어.p76.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하늘 높이 아름답게
p103.
몸이란 게 움직이자 달래면 움직여져요, 사모님.p113.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무구
p142.
소미는 외로웠고 앞으로 자신이 더 외로워질 것을 알았다.(★) 부동산은 사기였을까 아닐까?
* 무구 : 때가 묻지 않고 말고 깨끗함.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 순박함.
깜빡이
p163.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이 그날 하루 중 가장 좋았다.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p166.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음식은 기피할 의지만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 떄문이다. 아니, 기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점점 더 그 말에 사로잡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다.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도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및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 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기억의 왈츠
p197.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p202.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일은 마치 몸이 뒤집힌 채 거꾸로 치달려가는 느낌이었는데 그러다보면 결국 최악의 과녁에 정통으로 박히리라는 느낌, 그러면 끝장이라는 시원하고 원통한 예감만 들었다.p203.
내일을 생각하지 않듯 어제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 손에 쥔 확실한 패는 오늘밖에 없고 그 하루를 땔깜 삼아 시간을 활활 태워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12월 3일이 아닌 1월 23일(음)
해설. 권희철(문학평론가) / 영원회귀의 노래
p233.
질문에 특별히 뾰족한 구석이 없는데도 또 거기에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때때로 우리가 질문을 받고 맥락 없이 불안이나 모욕을 느끼는 데 근거가 없지 않은 것이다.p235.
준희와 정원이 발견하고 다듬어 만들어낸 '사슴벌레식 문답'이란, 수군거리며 주눅들게 만드는 질문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마들고 긍정하고 실천하며 밀어붙이는 방법,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강철로 단련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실용적인 방법이지 않을까.p244.
붙잡을 수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니고 붙잡고 있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그 실을 통해 내 이지러진 삶이 딸에게 전달될 것이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p248.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단 한 번을, '반복'과 '다시'의 되돌아오고 되돌아가는 흐름 속에서 고쳐 쓸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의지가.p255.
노래는, 표현력이 강한 발성과 기쁨과 슬픔을 담은 곡선들 그리고 지나갔다가도 되돌아오고 희미해졌다가도 강렬해지는 파동들로 이루어져, 언어로 결정화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과 의미를 초과하여 범람하는 정동에 대한 탐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