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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1.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8. 22. 10:00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구술 기록집

    기획 : 비마이너

    글 : 하금철, 홍은전, 강혜민, 김유미

     

    들어가는 말. 어떤 소년의 대결

    p5.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한 나에게,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얼굴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얼굴이었다. 난 자신의 운명과 대결하며 씨름하고 있는 슬프고 고독한 사람의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1부. 수렁에 빠진 소년들

    살기 위해 돌멩이를 들었다

    김성민(가명) 구술, 홍은전 글

    p25.
    체구가 작고 힘이 없는 사람일수록 싸울 때는 더 무서워요. 힘이 세면 주먹으로 할 텐데, 주먹으로 안되니까 다른 방법을 간구하죠.
    p31.
    나쁜 기억은 되도록 잊고 살고 싶은데 어릴 때 기억이라 뼛속까지 남아 있어서 안 없어지죠.
    p32.
    저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보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평생 삶의 방향이 바뀌었어요. 돌아갈 수가 없잖아요. 버스 한번 잘못 타서 조금 돌아가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잖아요.

    후기: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에 관한 단상

    p38.
    아버지는 가난에서 오래 전에 벗어났으면서도 나로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가난에 대한 불안과 강박 같은 것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는데, 그 겨울, 나는 평생 아버지를 쫓던 공포의 실체를 본 것 같았다.
    p39.
    나를 있게 한 어떤 세대와 그들이 살아낸 어떤 세상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아득하게 깨달았던 그 겨울, 내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건 그 세대가 무서운 속도로 저물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살아 있는 자의 사망신고

    김춘근 구술, 하금철 글

    p53
    하지만 사람 좋은 만큼 약삭빠르지 못했던 그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p56. 
    그들은 이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p57.
    강제로 섬에 끌려가 22년을 버틴 '출생지 미상'의 한 남자만 남았다. 그는 현재까지 가족들과 단절된 채 살고 있다.

    후기 : 기억 복원을 통한 '인간 선언'

    p59. 
    그러나 그와의 인터뷰 녹취록을 몇번이고 다시 들여다보면서, 그의 말을 그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이나 '숙명' 같은 단어로 간편히 정리해버린 내가 너무 경솔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p60.
    22년은 다름 아닌 그라는 존재가 부모님에 의해 사망신고된 채로, 그리고 이 사회에 의해 지워진 채로 살아온 시간이다. 그 때의 기억을 다시금 꺼내 놓은 것은 자신을 둘러싼 잊힌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자,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렸던 이 사회를 향해 스스로 '인간' 임을 선언하는 행위이다.
    p60.
    기억을 복원하고 공유하기, 이것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이고 당당한 '인간 선언'이 아닐까?

     

    꿀수록 불행해지는 꿈

    한일영 구술, 김유미 글

    p65.
    소년이 이유도 모른 채 겪은 이 일에 대해, 그 누구도 해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국가에 반복해서 붙잡히고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한 소년이 아직 여기 있다. 
    p69.
    집에 가고 싶은 게 최고의 꿈이었어요. 그 꿈도 결국에는 내가 능력이 됐을 때 꿀 수 있는 게 여기의 꿈이야, 선감학원의 꿈. 내가 능력이 안 되는데 꿈을 꾸면 불행해져요.
    p85. 
    당신이 죄를 짓고 갔다고 하면 나는 애들한테 얘기 못한다, 솔직히. 그렇지만 당신은 피해자다. 그렇기 때문에 애들도 알아야 된다, 그랬어요.

    (★) 이 분의 경우는 아내분이 현명한 분 같았다. 선감학원 및 삼청교육대를 거친 그의 삶의 보상이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힘이 되는 사람을 만난 건 다른 분들에 비해서 참 다행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후기 : 예순의 소년이 겪은 울분과 억울함

    p87.
    울분과 억울함에 짓눌려 한평생 살아온 그가 이제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그는 이제 정확하게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청하고 국가가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이 예순의 소년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것일까.

     

    열다섯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어요

    이대준 구술, 하금철 글

    p92.
    고아라는 말이 그저 단어 뜻 풀이대로 '부모 없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살이 그 자체를 홀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임을 그의 이야기를 통해 새삼 이해하게 된다. '홀로 헤쳐나감'. 이것은 그저 낭만적이기만 한 단어가 아니다. 그 세월동안 그가 겪어야 했던 폭력과 억압의 밀도가 그런 안이한 해석을 막아선다.
    p106.
    제일 중ㅇ한 건 배움의 기회를 빼앗은 것 그것에 대해 사과를 받아야 해요.

    후기 : 그와 함께 돌림 노래를 부르겠다.

    p110.
    나는 그동안 그의 증언을 기계적으로 듣고 옮겨 적는 데만 급급했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을 아픔의 목소리를 듣는 데는 한없이 나태했던 것이다.

     

    2부. 삶이라는 공식에 샘해지지 않는 삶

    해일의 시간을 경험한 조개의 이야기

    김성환 구술, 강혜민 글

    p134.
    정말 개같은 인생이었다. 나는 야바위꾼이었고 깡패였고 사채업자였고 홈리스였고 약물 중독자였고, 선감학원과 삼청교육대의 피해생존자이고 전과자다. 지울 수만 있다면 지난 모든 과거를 지우고 싶다. 죽고 싶어서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p135.
    못 배운 게 한이다. 내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면 지금 난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p136.
    내 삶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개입해서 나를 이 꼬라지로 만들었을까. 나이만 먹은 바보가 되버렸다.

    후기 : 지독한 해일의 시간, 그후

    p138.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휩쓸고 지나간 커다란 사건들이 있었고,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풍파 속에 던져진 아주 작은 조개였다. 조개는 해일의 출렁임에서 도망갈 수 없었다. 그게 그의 운명이었고 삶이었기에 그냥 살아졌다. 그렇게 그 시간을 겪어내고 우리 앞에 맨발로 선 사람. 살아남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지독한 해일의 시간에 대한 증언을 그의 관점에서 그의 목소리로 전하고 싶었다.

    (★) 읽다가 한이 가득한 페이지를 접하게 되었다. 본인 삶에 타인들,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들이 어질럽힌 그 삶을 살아내면서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에 어쩌면 그 때는 쉬운 선택이었을 수 있었다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 선택만이 가능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누가 이들의 인생을 보상해준단 말인가.

     

    선한 사마리아인은 없었다

    김성곤 구술, 하금철 글

    p144.
    연민과 도덕적 잣대라는 상반된 감정이 뒤엉켜 심난했다.
    p145.
    뒤늦게야 깨달았다. 선감학원 피해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느 정도는 위선에 가깝다는 것을. '범죄자'라는 낙인과 '무고한 피해자'라는 이미지 사이에서 나는 후자의 모습만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범죄자'로 드러난 순간과 마주하자 뒷걸음칠 치려 했다. 낯설고 두려웠다.
    p151.
    열 살도 안된 아이에게 닥친 고독하고 어두운 떠돌이 생활.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이야기였다. 대체 이 이야기는 어디쯤에서 끝나는 걸까. 어린 아이가 그렇게 거리를 떠도는데 아무도 보호자에게 인계해주려 하지 않았다.
    p158.
    "거기엔 시계와 달력이 없었어요."

    후기 : 한 퇴로 없는 삶에 관하여

    p170.
    그의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의 범죄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여기에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

    오광석 구술, 강혜민 글

    p179.
    이 글은 그날부터 "배고프고, 매 맞고, 일하고 훈련받는" 게 전부였던, 선감학원을 경유한 한 사람의 기억과 존재 증명에 대한 이야기다. 
    p186.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했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았다.
    p193.
    기억은 '불확실하다"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이가 한 사람도 없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기억만을 믿을 수밖에 없다. 기억조차 거짓이라면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단 말인가.
    p194.
    과거의 나를 증언해줄 가족도, 선생도, 친구도 없다.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후기 : 나에 대한 흔적 찾기

    p196.
    즉 사회적 존재의 자리에서 삭제된 이들이 '나에 대한 사회적 흔적'을 찾아내는 과정은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임과 동시에 그 개인에게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며 내 존재의 시원을 찾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실존적 물음 앞에 서는 행위가 된다.

     

    넝마주이 왕초가 만난 하나님

    현정선 구술, 하금철 글

    p203.
    이 이야기는 거칠었던 그의 젊은 시절의 삶에서 건져 올린 어떤 희망에 대한 기록이다.

    후기 : 살아 있는 하나님들과의 만남을 꿈꾸며

    p220.
    그의 노력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트라우마에 신음하는 사람을 보듬고 치유하는 일을, 역시나 트라우마로 신음했던 이들에게만 전가하지 않기를, 그 정도로 우리 사회가 무책임하지 않음을 증명하기를 바란다.

     

    눈초리들의 감옥

    김창호 구술, 홍은전 글

    p225.
    "내 한 몸 건강해서 힘껏 일하면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될 때, 그땐 신이 필요하지 않아요."
    p237.
    원생들은 낮에는 자신을 가두는 감옥을 제 손으로 쌓았고, 밤에는 목숨을 걸고 그 감옥을 탈출했다.
    p242.
    삼중고란 첫째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 둘째가 신체적 질병, 셋째가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병이다.
    p242.
    이들에게 사회는 '감옥 밖의 감옥'이다. 교도소가 눈에 보이는 벽으로 이들을 가둔다면 사회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이들을 가둔다. 김창호의 표현에 의하면 바로 '눈초리들의 감옥'인 것이다.

    후기 : 듣는 사람이 있어 가능한 이야기

    p251.
    극단적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데, 이유는 말 그대로 극단적인 경험 자체가 일상적인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p253.
    오두막 공동체는 김창호처럼 학대당하고 냉대받고 배척당한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부록> 선감학원 함께 알기
    명랑사회, 거리의 아이들을 '정화'하다. : 선감학원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피해자의 고통

    하금철 글

    p260.
    이들이 이토록 참혹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왜 가족과 자기 이름마저 잃고 그 상처를 꼭꼭 숨기며 수십년을 살아야 했던 걸까. 그들의 고통을 단순히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라 국가폭력 피해로 여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것 혹은 상처를 회복하는 길에 동참하는 것은 이 이유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 답을 구하고자 한다. 그것은 단지 선감도라는 작은 섬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밀어붙였던 일이다.
    p284.
    이렇게 국가와 그 대리자들에 의해 강제로 납치된 아동들은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로부터 절연돼 모든 것 (옷, 신발, 머리카락까지)을 상실한 채 알몸으로 시설에 수용되었다. 이렇게 입소한 원생들은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가 말 한 것처럼 "고통과 욕구만 남은, 존업성이나 판단력을 잃어버린 텅 빈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삶과 죽음은 인간적인 친밀감 따위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아주 가볍게 결정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선감학원이라는 수용소는 이처럼 한 인간 존재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면서 시작됐다.
    p288.
    결코 위생적일 수 없는 이런 조건에서 수시로 당하는 위생 검열은, 결국 자신이 더럽고 불결하다는 것을 매일같이 확인받고 모욕당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p290.
    전쟁에서 고통은 일종의 부산물일 따름이다. 그러나 수용소는 고통을 유발하는 폭력행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즉 '쓸데없는 잔인함'이야말로 이 폭력의 본질이다.
    p295.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범죄나 자살과 같은 방식으로 비로소 스스로를 인간적인 존재로 드러낼 수 있었다. (중략) 그들에게 '범죄'는 온통 적뿐인 세상을 향항 말 걸기의 한 방식이었다. 물론 그 말은 세상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닌 그야마롤 분노와 절규였고, 세상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 응답받지 못한 이들은 자살을 생각하거나 끝내 그 길로 가고 만다.

     

    (★)
    이런 글을 접할 때면 늘 생각이 많아진다. 뭐라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그리고 사실 이런 책을 통해서 알게 되는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문제들을 볼 때면... 이런 문제들이 진정한 인권문제가 아닌가 싶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