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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1.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2. 10:37

    하재영

    p23.
    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학교에는 규율이 많았다. 규율이 많다는 것은 혼날 일이 많다는 의미였다. 학교에서 혼나는 것과 집에서 혼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엄마에게 혼날 때 다른 가족들은 내 편을 들거나 엄마를 말릴 망정 나를 '구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누군가 혼날 때 그 아이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름이 불리고, 쭈뼛거리며 일어서고, 교단으로 걸어 가고, 선생님에게 체벌을 받는 과정을 모두가 '본다'. 내가 정말 두려워 했던 것은 혼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모멸을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p26.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p45. 
    나에게 계급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발된 구역과 개발되지 않은 구역을 가르는 '길'이었고,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이었으며, 학급에서 아이들이 이루고 있는 '그룹'이었다.
    p58.
    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원짜리 자취방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포클레인이 밀어버릴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 현재든 비교대상이 필요했다.
    p63.
    계층도, 세대도, 삶의 궤적도 다른 다양한 여성들을 지배하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불안'일 것이다.
    p83.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조차 기어이 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 장소가 있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 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p84.
    글을 쓰면 쓸수록 가난해졌다. 애초에 직업이 될 수 없는 일을 직업으로 여겼는지도 몰랐다. 월세부터 생활비까지 거의 모든 돈을 동생에게 의존했다. 나의 글은 가족을 착취한 결과였다.
    p93. 
    청탁이 없어 발표할 수 없는 소설을 쓰고 있을 때 내가 소망한 것은 노동으로서의 글쓰기, 생계를 감당하는 글쓰기였다.
    p107.
    남에게 의존하며 불안하게 흔들리던 20대는 지나갔다. 나는 30대이고 혼자 나를 책임지고 있었다. 안온했다.
    p115.
    혼자 무언가를 배우고 혼자 낯선 나라에서 지내고 혼자 유기견을 돌보면서,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여전히 처음 하는 일들이 두려웠지만 두려움 때문에 원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p175.
    눈을 뜰 때마다 상실을 깨닫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중략)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떠나보낸 것은 개 한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게한 내 삶의 시절이었다.
    p181.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p198.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p216.
    <작가의 말>
    기억하기와 글쓰기의 공통적 속성은 사실을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편집한다는 것이다.

     

    (★)
    현재 사는 집이 너무 괴로워서일까? 이 공간에서 빠지고 싶은 생각이 가득할 때, 남들이 사는 공간과 그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작가들의 책들이 좀 있었다. 내 집 마련의 어려움, 내 공간을 꾸미는 즐거움 등등. 이 책을 읽으면서 임대 아파트 아이들의 차별 이야기, 동생의 지원으로 버티던 반 고흐 이야기 등도 떠올랐다. 다들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을 그런 공간에 살고 있을까?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