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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8. 15. 20:38
제마 하틀러
그 상자가 옷방 한가운데 놓여 있어 방해가 되고 언젠가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는 건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남편은 마음만 먹으면 의자 없이도 간단히 올려놓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보다 상자를 안 치우고 빙 돌아가는 걸 택했고, 뻔히 보면서도 이틀 동안이나 무시했다. 애초에 자기가 필요해서 내려놓은 건데도 내가 시켜야만 치우겠다는 말이다.
"바로 그게 문제잖아." 이렇게 말하는 내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했다. "나는 당신한테 하나하나 시키기 싫단 말야."남자와 여자는 사회적 조건도, 사고방식도 다르고 그로 인해 서로 다른 세상을 산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생전 처음 만난 여성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려주지만 나와 13년을 함꼐 산 파트너는 그렇지 못한다. 따라서 오랜 고민 끝에 어렵게 정답을 찾았다고 느끼는 여성들과 이야기할 때 나오는 대답이 바로 이것이다. 그냥 내려놔요. 꺠끗한 집, 완벽한 엄마, 빨래, 머릿속 목록들, 걱정들, 다 내려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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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그리고 임신과 출산 이후 여성의 삶은 맞벌이가 되든 아니든 많이 달라진다. 자신만의 공간(시간)이 없어지고 남편 혹은 아이들로 채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 역시, 결혼하고 아이는 없지만, 나의 공간이 없어졌다. 내 물건을 둘 공간도 없고, 조용히 들어가서 무언가 할 공간도 사라졌지만,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공감이다. 내려놓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