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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업데이트 중)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8. 16. 17:55

    신영복

    * 돌베개


    사내 독서모임 지정도서였다. 글을 읽다보면 뭉클해진다. 갇혀 있는 동안 나의 부모가 중년에서 노년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님이 칠십이 되셨다는 이야기에, 우리 엄마도 일흔까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사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이 책은 현대인들이 생소한 근대사 어휘가 많기 때문에 나 역시 단어로 아는 듯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 그 뜻을 재확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불어 한자를 결합하여 만드는 어휘들이라서 같은 한글자(예를 들어 피서가 더위를 피하는 것도 있지만 책을 피한다는 의미로도 쓸 수 있으니...)가 다른 뜻이 되는 경우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방구석 철학자란 표현을 내가 많이 쓰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제한된 외부 자극의 환경에서는 오롯이 자신의 존재에 더 집중할 수도 있어서, 사색의 깊이가 더 깊어지는 것 같단 생각도 했다. 젊은 시절을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결국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소위 말하는 옥바라지를 열심히 해주던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겠지.

    (★) 개인 생각 및 의견


     

    초판 서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부쳐

    (★) 평화신문의 붓글씨를 신선생이 쓰떤 글자들을 하나씩 뽑아서 만들고 싶었다는 생각...

    p7.
    가장 고통스러운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메시지로서,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닿는 조용한 호소력이 신성생의 글에는 있었던 것이다.

     

    영인본 <엽서> 서문. 우리 시대의 고뇌와 양심 / 이영윤

    p11.
    그 작은 엽서는 바쁘고 경황없이 살아온 우리들의 정수리를 찌르는 뼈아픈 일침이면서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자기성찰의 맑은 거울이었다. 그것은 작은 엽서이기에 앞서 한 인간의 반듯한 초상이었으며 동시에 한 시대의 초상이었다. (중략)
    사람이 그리운 시절에 그 앞에 잠시 멈출 수 있는 인간의 초상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이다.

     

    증보판 서문. 시대를 넘어 민족의 고전으로 / 전우익

     

    고성(古聖) 밑에서 띄우는 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 1969년 1월 ~ 1970년 9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사랑은 경작되는 것

    p23.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p23.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개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Das beste solite das liebste sein.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독한 풍화(風化)

    p25.
    불행은 대개 행복보다 오래 계속된다는 점에서 고통스러울 뿐이다. 행복도 불행만큼 오래 계속된다면 그것 역시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단상 메모

    p26.
    독서는 타인의 사고를 반복함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얻는다는 데에 보다 참된 의의가 있다.
    세상이란 관조(觀照)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지난달에 어머님을 가까이서 뵈오니 어머님께서는 이제 완연한 '할머니'였습니다. 칠십 노인이 아무려면 할머니가 아닐 리 있겠습니까만, 저의 마음에는 항상 젊은 어머님이 계십니다. 아마 제가 늘 그전 마음으로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이 할머니가 되셨다는 이 당연하고 새삼스러운 사실이 도리어 제게 참 많은 생각을 안겨 줍니다.

     

독서생활자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