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019.06.26
    글쓰기방/일상 2019. 6. 27. 11:20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매번 다르기도 혹은 같기도 한 어느날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날이기도...
    누군가에게는 좌절을 느끼고 상처 받은 날이기도...
    누군가에게는 예기치 못한 행운에 슬그머니 미소 짓는 날이기도...
    누군가에게는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로 지쳐버린 날이기도...
    누군가에게는 느긋하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날이기도...
    누군가에게는 바쁘게 허덕이면 움직여야 하는 날이기도...

    그런 오늘, 아니 지금은 어제, 울리에게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 날이었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병원을 움직인 엄마는 간단하지만 약물치료를 위한 관 삽입 수술을 받았다. 마취가 풀리기 전까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슴에 꽂혀 있는 작은 바늘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치료를 위해 억지로 억지로 밥을 삼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장시간 누워서 일반인들도 손에 함부로 만지면 안되는 약물을 몸 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한두시간 끝날 일은 아니어서, 아침부터 엄마와 함께 부산히 몸을 움직이신 아빠의 저녁 식사를 챙겼다. 엄마가 걱정되어 밥도 허둥지둥 급하게 드시는 아빠를 보면서 체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피곤해 보이는 아빠가 밤 늦게까지 엄마와 함꼐 있는 것은 안될 것 같아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들어가서 쉬시고 새벽에 오시라고 했다. 아빠를 그렇게 보내고 난 뒤, 불꺼진 병실에서 나는 잠들지 못하는 엄마와 그저 말 없이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눈 빛만 교환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득이하게 다인실로 입원을 한 상황인데, 특히 엄마 옆자리 환자가 예민해서 아무것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첫번째 단계가 끝난 뒤, 두번째 약물 투여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엄마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옆자리에서 욕만 안했지만 엄마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그 소리가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구토가 시작되면 화장실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소음. 조심하려고 해도 몸을 가눌 힘조차 없어서 혹은 그냥 병원 기구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그 소음조차도 시끄럽다고 나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중간 중간 엄마의 상태와 약물 투약 상황을 지켜보러 간호사 선생님이 오시는 것조차도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그들이 못내 불편했던 엄마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투덜거림이 아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자정이 넘어 세번째 약물 투약이 시작되면서 구토와 함께 다리 경련이 시작되었다. 급하게 의사 선생님을 부르고, 그 전에 야간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이리저리 엄마를 살피기 시작했다. 몇분 후 의사 선생님이 도착해서 약물 투여 진행에 대한 소견을 말하는데, 옆에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잠 좀 자자고, 잠 좀. 뭔 이야기를 계속 하고 그래. 잠도 못자게."

    옆자리에서 뭐라 하든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 또 들려오는 고함소리.

    "심각한 것도 아닌데 내일 낮에 하지, 사람 잠도 못자게. 안되면 그냥 내일 해. 별것도 아닌 것 같고 호들갑이야"

    본인의 잠을 방해한다며, 엄마의 치료과정에 불평을 하는 사람이 꼴보기 싫어서 나도 버럭했다.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의사 선생님이 확인하러 오셨으니 양해좀 해주세요."

    두어번 반복 되었을까? 의사 선생님이 내 어깨를 다독이며 잠시 밖으로 나가서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온다. 간호사 선생님은 옆의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서 지금 의사 선생님이 진료 중이시니 이해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간호사 선생님의 부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사람은 똑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별것도 아닌 일로 자기 잠을 방해한다고. 문득, 그렇게 잠을 잘 자고 싶으면 병원이 아니라 근처 호텔을 예약하던가 아니면 1인실을 예약해서 입원을 하지, 왜 다양한 병을 가진 사람이 모인 다인실에서 꼴불견처럼 자기 일이 아니라고 저렇게 막말을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화가 났다. 

    결국, 약물 치료는 중단이 되었다. 10여분 사이. 우리에게 잠을 못잔다며 불평하는 그 분의 코 고는 소리가 입원실 안을 울린다. 아참, 아까 그 분은 옆의 할아버지가 가는 귀를 먹어 잘 듣지 못해 여러번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도 시끄럽다고 소리 질렀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잠이 오지 않는 엄마를 다독여 침대에 눕히고 나는 보호자 간이 침대를 펴서 누운채 병원 천장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어느 순간, 엄마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고함을 지르던 옆자리 환자가 잠꼬대 하는 소리가 들린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이 세 문장을 여러번 반복하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전혀 연관은 없지만, 우리에게 못되게 군 것을 괘씸하게 여긴 누군가가 혼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 소리가 또 끝나자, 엄마가 깨서는 속이 안 좋다고 말을 한다. 엄마를 데리고 병실 밖 큰 화장실에서 속을 비우고 난 뒤에 우리는 병원 휴게실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병실에서 엄마를 재우고 나는 다시 간병인 간이 침대에 누웠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5시가 가까워지고 엄마가 못내 걱정된 아빠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 나를 부른다.

    "너는 일해야 하니까 얼른 네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잠도 좀 자거라"

    아빠는 내 등을 떠밀며 고생했다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아빠 등에 떠밀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아직 밖이 어둑어둑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며칠의 입원과 약물 치료가 앞으로 몇번은 더 있을 것인데, 아무래도 다인실은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엄마가 잠을 좀 잘 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픈 순간에도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나에게 신세를 지어 미안하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엄마가 부디 치료를 잘 받고 다시 건강해져서 우리에게 잔소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모래시계를 바라보듯,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독서생활자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