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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아까워지는...글쓰기방/일상 2019. 6. 21. 09:00
2019.06.20 점심
요즘에는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내 일을 하는 것이 다시금 마음이 더 편해지는 시기가 왔다.
집에서 일하면 항상 점심을 대충 먹게 된다. 한편으로는 사무실과 다르게 온종일 움직이지 않을 것이 뻔한데, 뭐하러 많이 먹냐는 생각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비해서 식사량도 늘었고, 매 끼니 찾아 먹으면서도 온종일 배고품을 느껴서인지 체중은 한 껏 최고치를 찍고 있다.
어제도 누군가 나에게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운동.
사실 나는 운동 중독(?)처럼 미친듯이 운동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한번에 여러 개의 종목을 배우러 다녔던 적도 있고, 운동이 과해서 운동 선수들도 걸리기 어렵다는 근육염증으로 한동안 운동 금지도 권고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숨쉬기 운동(?)을 빼고는 전혀 운동과 상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우울증 치료 방법 중의 하나가 그나마 가장 쉬운 걷기부터 시작한 운동이 있다고 한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이미 반은 해결이 되었다고 할 정도. 일종의 의지가 생겼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언제부터 운동을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 아니, 운동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오히려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나는 더 많은 운동과 여행을 즐겼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주춤한 시기는 마지막 이직 전후 였던 것 같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와 같이,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욕이 사라진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의욕이 사라진 것인가? 며칠전 간만에 호수 근처를 달리기 하면서 순간적으로 느낀 "중독"될 것 같은 느낌을 봐서는 운동이 싫어진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아마 삶에 대한 근본적인 나의 태도가 변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 이 순간, 심해에 무한히 빠져버리는 느낌이다. 어제 통화했던 부모님의 목소리, 집에 돌아와서 보니 많이 상해 있었던 시어머니의 택배, 어지럽혀진 집, 그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나의 몸 상태. 그래서 나는 밤 사이 이상한 꿈에 시달리다가 이른 새벽 잠에서 깨버렸다.
근처 스타벅스가 문을 열자마자 나는 따뜻한 라떼를 주문했고, 이와 함께 이전에 남편이 사줬던 호박떡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조용히 집에서 먹는 아침은 사무실의 아침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요즘들어 자꾸 울컥해지는 내 상태를 고려하면, 정말로 마음 편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밤 사이, 혹은 어제 웍샵으로 확인하지 못한 이메일에 답장을 하나하나 쓰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무얼 먹어야 할까 고민한 것도 아닌데, 그냥 손이 덜덜 떨리면서 약간은 당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서둘러 전기 밥솥에 쌀을 앉혔다. 밥이 되는 동안 회사 동료와 업무 채팅을 하고, 밥이 완성된 순간 밥을 어떻게 먹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김밥 재료가 남았다. 원래는 2인분의 김밥을 쌀 재료겠지만, 나는 밥 2공기를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밥보다 다른 재료가 더 많이 든 김밥을 대충 말고, 촘촘하게 썰 생각도 나지 않아 대충 크기로 서걱서것 잘랐다. 그리고 다시 회사 노트북을 앞에 두고 밥을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유통 기한이 지난, 혹은 애매하게 남은 반찬을 먹어치우느라 고생한다는 주부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한편으로 나도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먹어치워야 할 반찬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오늘 나는 수일이 지나버린 된장찌개 일부와 더운 날씨로 상해버린 콩을 버려야 했던 상황이었으니까.
음식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된 것인지, 아니 그런 역할을 맞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변하고 있고, 지금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특히, 내가 겪어본 적 없고 예상하지 못한 나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