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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겨울을 지나가다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12. 16. 10:00
조해진
문장을 얹으며, 미래에 꺼내 쓸 빛을 품은 소설
김혼비 / 에세이스트
p5.
아끼는 단어들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마음속 사전에서 오랜만에 '애일(愛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사랑해야 할 햇빛'이라는 멋진 비유로 '겨울의 낮'을 뜻하는 이 단어는 '매일을 아낀다'로 해석되면 '부모를 보살필 수 있는 날이 적은 것이 안타까워 하루라도 더 정성껏 모시려고 노력함'을 뜻하기도 한다.1부. 동지 / 冬至
p9.
시간이 담긴 그릇.......
잠든 엄마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몸은 시간이 담긴 그릇 같다고.p14.
한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방과 복잡한 복도와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컴컴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p20.
나는 엄마가 살고 싶어 한다고 늘 생각해왔으니까. 엄마 자신을 위해서 병원을 다니고 치료를 받은 거라고 믿었으니까. 실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 다만 버틴 것일 뿐, 대체 언제부터 엄마가 죽음에 투항한 상태였는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p24.
그 어떤 날이든 돌아오는 길이 쓸쓸했다는 건 똑같았다.2부. 대한 / 對寒
p50.
엄마가 투병하는 동안 나는 엄마의 현재에 내 미래를 투사하는 일에 더 성실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걷고 싶을 때 걷지 못하고 배설해야 하는 순간에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내 노년을 상상하는 일은 떨쳐내려 해도 떨쳐지지 않은 채 끈질기게, 그야말로 질리도록 끈질기게 이어졌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 미래를 근심하느라 엄마가 직면한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자꾸만 잊는 내가 싫었고 징그러웠지만 , 그렇다고 제어되는 것은 없었다.3부. 우수 / 雨水
p82.
"그런 마음은 참 좋은 거야.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야."혼자에게 쓰는 편지. 겨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p102.
<겨울을 지나가다>를 쓰는 동안엔 겨울은 통로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겨울은 춥고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지만, 그래서 아주 차갑고 길쭉한 통로가 연상되지만, 그 통로 끝은 어둡지 않으니까요.p104.
한 가지, 기억해주시겠어요?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1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보고 엄마가 겪었을 투병 과정이 모두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병의 시간을 묘사한 글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 때가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당시에 나는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를 할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을 덜어주는 그 선택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와 달리 다른 가족들은 엄마가 우리들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기를 바랬고, 현재의 법 아래에는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건 아픈이들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2부의 경우는 <3일의 휴가>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또한 한동안 아까워 먹지 못했던 엄마표 김치와 마늘장아찌, 그리고 고추장. 슬프게도 나는 김치를 담그지 않았고, 고추장도 사먹는다. 가끔은 엄마표 밥상이 생각이 나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감자탕과 오징어젓갈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해외를 다녀오면 늘 부산스레 빨래감을 챙겨주시고, 항시 끓여주시던 김치찌개도...
이 소설을 읽고 나서인지 읽기 전인지... <제철행복>을 읽었다. 동지와 대한. 그 의미가 알고 싶다면 <제철행복>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