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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2. 출근하는 책들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9. 23. 13:17

    구채은

     

    당신은 일터에서 울어본 적이 있나요?

    p10.
    그런데 이 생산성 낮은 '도피성 독서'를 통해 단언컨대 '일하는 인간'으로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명료해지며 단호해졌다곤 말할 수 있다.

     

    1부. 나를 붕괴시키는 일

    건배사에 학을 떼는 당신에게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p18.
    곰곰이 생각해보면 '친교'와 '뒤풀이'를 가장한 직장인들의 회식 자리는 그야말로 상하관계가 작동하는, 그렇지만 억지로 과장된 웃음과 익살을 연기해야 하는 연극 무대 같은 공간이다. 장르는 부조리 코미디다. 웃긴 듯 하지만 불가항력의 모순과 서늘한 폭력이 있는 희비극. 모두가 이 극 속에서 광대가, 배우가 된다. 그리고 배우들 사이엔 엄연한 계급과 연공서열이 존재한다.

     

    1지망이 아닌 일을 하고 있다면

    이진경,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들>

    p26.
    1지망의 일은 이룬 게 없다. 계속 2지망, 2지망 하다 3지망. 그렇게 엇갈리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또 살아보니 나쁜 게 아니더라. 오히려 엇갈림 속에 응집되고 축적된 에너지가 삶을 더 개성 있고 다채로베 해주는 것 같았다. 고유의 지문처럼, 나여야만 생성되는 삐뚤빼뚤한 총천연색의 오솔길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p31.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세계와 빚은 마찰을 고스란히 삶에 녹여 내 나만의 지도를 그려가는 것도 삶터와 일터에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고 감당해야 할 생애 전제 조건 아닐까.
    p32.
    그리고 애초에 삶이란 건 명중해야 할 과녁이 없거나, 매번 흔들리거나, 비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이런 일 할 사람 아닌데요

    레이먼드 카버, <비타민>

    p41.
    현실은 남루하기 그지 없지만, 그것이 활자로 형상화된 것을 보았을 때주는 환기와 고양감이 있으니까.

     

    익스트림 롱쇼트로 일을 바라보면

    조제프 퐁튀스, <라인: 밤의 일기>

    p43.
    자본주의의 속도는 비정할 정도로 빠르다.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모두가 그 트랙 위에서 허겁지겁 뛰게 만든다. 안 뛰면 낙오다.
    p49.
    물론 때론 일은 낭만적이다. 자부심을 머금게 한다. 우쭐하게 만들고, 어깨뽕을 세워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게의 생계노동은 엄혹하며 숙연하고 잔인하고 잔혹하다. 때론 흉포한 것일지도 모른다.

     

    #퇴근길 농담. 일의 고통이 내면의 바다를 위협할 때는

    p52.
    내게 '독서'란 행위는 이렇게 시시각가 변해가는 내 바다를 항해하면서, 내 고통을 돌보고 자정하는 시간과 같았다.

     

    2부. 인간관계가 어렵다면

    똑부 꼰대 상상사의 내면이 궁금하다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p64.
    이를테면 완전한 직업인-되기를 구현하기 위해 끝없이 절차탁마한다. 인간적 결함을 제거하고 또 삭제해나간다. 이제 완전한 100%의 '일터의 자아'를 구현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우리는 다 별로니 상처 주지도 받지도 말자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p75.
    누가 한 말로 상혼을 입을 때, 그 말에 내가 휘둘린다고 느낄 때,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골몰할 때, 간혹 나의 기준과 원칙까지 무너진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땐 '니 까짓게 뭔데'라고 응수한다. 또 이렇게 생각해본다. 당신은 별로, 우리 모두 다 별론데 당신 말 따위에 괴로움을 받지 않겠노라고. '우신'의 전사 중 한명인 망각과 자아도취가 이 일도 금세 잊게 만들겠노라고.

     

    일터에서 필생의 악연을 만난다면

    존 윌리엄스, <스토너>

    p83.
    투사는 개인의 고유한 역동과 콤플렉스에 기반하고 있어서, 풀기도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p84.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더 나쁜 일이다.'

     

    오해하고 할퀴는 직장 인간관계의 본질

    안톤 체호프, <관리의 죽음>/<공포>

    p93.
    동료에게서 친교, 우정과 친밀감을 느낄수도 있지만, 오해와 반목, 갈등과 상처를 주고받기도 쉽다. 기본적으로 이윤 창출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여서다.

     

    #퇴근길 농담

    업무 메신저 쿠션어 사용법

    p95.
    어떤 표현과 태도, 몸짓으로 말하는지 텍스트만 봐선 알수 없다. 활자는 비언어적 정보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차선책을 발명했다. 쿠션어를 많이 쓰는 것이다. 이모티콘이나 특수기호나 'ㅎ', 'ㅋ' 같은 자음, '!', '~' 같은 기호를 붙인 그 쿠션어 말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비언어적 표현은 매뉴얼이 없다. 회사, 업종, 세대, 직급별 표준 가이드라인도 없다. 뜻풀이도 없다. 개인차도 심하다. 적지 않은 오해도 불러온다.

     

    3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일터에서 죽기 살기로 용기내야 할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p107.
    '안 되면 말고' 정신과 함께 이런 문장을 머금고 일을 처리했다. '어차피 죽을 것, 한번 해보고 죽지 뭐. 까이면 할 수 없지. 그조차 죽으면 아무도 모를 텐데. 뭐.'
    p108.
    유장한 시간 속에 있는 작디작은 존재로서의 나를 원격으로 인식하는 것은, 나의 영역과 반경을 보다 자신 있게 확장시키게 도와준다.

     

    동료가 망하면 기분이 좋아요

    티파니 와트 스미스,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p115.
    일터란 곳은 결국 교활하게 타인의 실패를 바라는 하이에나들이 우글거리는 곳 아닐까.

     

    현대판 계급 지도, 직업등급표에 기죽지 않으려면

    스탕달, <적과흑>

    p127.
    그 안경이 오히려 그 사람의 내면을 짓누를테니까. 안경을 오래 쓰면 쓸수록 그의 시야는 좁아지고 시선은 해체되며 계급이 부여하는 이름, 지위, 신분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예뻐야 하는가, 유능해야 하는가

    게르드 브란튼베르크, <이갈리아의 딸들>

    p135.
    이갈리아인들이 내린 XX염색체에 대한 아름다움의 정의는 무엇이었을까. 삶에의 싱그러운 활기, 엄밀함과 엄격함, 야심과 능동성, 온유함과 투지, 건강함과 활력 이런 것들 아니었을까.

     

    #퇴근길 농담

    상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p139.
    인생 행복의 4대 보험의 첫 번째가 바로 좋은 인간관계, 특히 '회사 상사'라고 한다. 나머지 세가지 보험은 자율성, 의미와 목적, 재미있는 일이다.
    p144.
    그러니까 너무 싫은 상사를 만나면, 일단 (1) 부정성 편향 탓에 모든 직장인들이 상사를 싫어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2)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상해보고, (3) 그 상사도 외로운 직장인일 뿐이라는 것까지 고려해본다.

     

    4부. 매너리즘에 빠진 그대에게

    사람을 뒤틀리게 만드는 일

    니콜라이 고골, <외투>

    p151.
    자기 자신에 도취돼 살아 간다. 직이 주는 달콤한 명예가 인간을 뒤틀리게 만드는 것이다. 승진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고, 그 안에서의 일의 소명과 내용물은 사라진다.
    p153.
    몰입을 통해 자신을 잊는 것이 아니라, 몰입을 빼앗기고 자의식만 비대해진다. '당신이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라는 말처럼, 어떤 일에 노력과 힘을 들이면 거꾸로 그 일이 나에게 노력과 힘을 들여 나를 규정하게 된다.

     

    원치 않은 부서로의 인사 이동이 괴롭다면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 반면교사 (反面敎師) :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는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 

    p161.
    윌리는 이상적 직업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낙차' 때문에 자살을 택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낙차가 생겨나지 않게 일터에서 '이상' 따위는 만들지 않고, 비정하고 냉정하게 살아가는 것은 어떠한가. 어차피 힘들고, 어차피 괴로운 곳이 일터라고 인정하고 실제를 차갑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퇴근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만 하는 당신에게

    솔 벨로, <오늘을 잡아라>

    p170.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파괴하는 어떤 무엇의 얼굴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건 꼭 인간만이 아닐수도 있다. 시스템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일의 야만과 모순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나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73.
    어쩌면 오늘날 일이란 건 애시당초 개인의 신념과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일은, 직업은 자본주의적 문명에 따라 규격화돼있고 분업화돼 있으며, 건조하고 비정하다. 일은 우리가 일에 부여한 이유, 가치, 의미, 소명 같은 뜨거운 신념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서릿발 같이 차가운 '자본주의의 미소'를 봉싯봉싯 지으며, 그 신념과 가치들을 위협할지 모른다.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런 위협은 타성처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런 때 만큼은 일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의미'를 오히려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포악스러운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p176.
    어쩌면 곁가지의 낭만, 소확행에 가까웠던 그 한 줌의 재미 같은 일터의 낭만이, 그가 일을 하는 이유, 목적이자 삶을 지탱하는 이유가 됐다. 세월이 쌓이면서 그 낭만 그 자체는 그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이 됐다.
    p181.
    책이 된 한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일터에서 지키고 싶었던 초심은 무엇인가요. 힘든 일터에서 발견한 당신만의 순정과 낭만과 의식은 무엇인가요. 

     

    반복은 광휘를 만든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들>

    p187.
    어떤 성취도 영광도 지난한 반복이 있어야 하고, 찰나의 섬광이 깃드는 승리의 순간보다 반복과 재반복 속에 선물처럼 삶의 광휘가 숨어있다는 것을.

    (★) 광휘 : 환하고 아름답게 눈이 부심 또는 그 빛, 눈부시게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퇴근길 농담

    일터에 이데아는 없다

    p191.
    현실은 비관하고, 이상 속의 '관념'을 선이라 떠받드는 식의 사고는 우리 일상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5부. 끝과 시작, 다시 일

    죽기 전에 과연 일 생각이 날까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p203.
    불행하게 오래 살아도, 행복하게 단명해도 그 삶은 고통스럽다거나 아쉬운 삶이다.

     

    욱해서 퇴사하고 싶을 땐

    아데레르트 폰 샤미소, <그림자를 판 사나이>

    p209.
    어쩌면 '일하는 사람'이란 그림자는 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 더욱 그 위용을 드러낼지 모르겠다. 불안한 사회에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으니까. 임금노동만이 우리의 삶을 보장해준다.

     

    우리는 일로 연결되어 있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p217.
    서로가 한 일의 결과를 공유하면서 대도시는 지탱되고 유지된다. 그 일은 인프라와 시스템과 관행과 치안, 안전과 제도를 만든다. 그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모두 구조적으로 연결돼 있다.

     

    일터의 연극은 언젠가 끝난다

    프란츠 카프카, <단식광대>

    p228.
    그리고, 다시 내가 맡은 배역이 준 가면을 어루만져 본다. 가면을 오랜만에 벗는다. 한 생명으로서 오롯이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성실하게 일했던 나의 맨 얼굴이 있었다. 닳고 녹슬었지만 어딘가 단단하고 반짝반짝하다. 오늘도 애썼다. 고생했다.

     

    자, 이제 눈물을 뚝 그치고

    p231.
    '책은 우리 내면의 얼음을 깨는 도끼'라는 말을 믿는다.

     

    (★)
    책은 즐거움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살기 위해 읽는 느낌이었고, 과거에는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한 보상, 오락 등의 즐거움이었다. 그 즐거운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엄마가 했던 말처럼 쓰잘데기 없이 책에 빠져 사는 한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책을 읽고 즐길줄만 알았다. 깨달음이야 있었겠지만,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그 즐거움이 더 우선이었다. 책을 읽고 가만히 그 문구들을 음미하는 일보다는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인지했냐 안했냐의 그 여부가 더 중요했다.
    요즘에는 책을 읽다보니 다들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받아들여라.
    다들 부처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인가?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방법을 찾으라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나의 분노나 슬픔은 쉬이 잠재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복수를 살벌하게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에 더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지도...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