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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3. 가치 있는 삶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11. 26. 10:00

    The Call of Character

    마리 루티

     

    머리말

    p10.
    결과적으로 이 책에 어떤 목표가 있다면, 전문화된 학술 용어를 빌리지 않고 인간의 삶이 얼마나 복잡한가에 대해 충실히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 속에서 소위 말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논의가 펼쳐질 때, 우리 문화가 취하고 있는 논조에 반박하기 위해서 이 책은 세 가지 반론을 제시한다. 첫번째로 진정한 자기 수련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핵심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리의 정체성에 계속해서 새로운 면모를 더해 가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략) 두번째로 마음의 평정을 갖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은 대체로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어쩌면 다소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p11.
    세번째로 나는 인간의 욕망에는 놀랄 만한 특수성이 있으며 바로 이 특수성이 우리가 가진 기질을 현실에서 발휘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뒷받침 해 준다고 생각한다. 
    p13. 
    하지만 그러한 용어 중 자아가 가장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일반저긍로 나머지 두 용어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두면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정체성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감각, 그리고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회적으로 이해되는 성격인 사회적 페르소나를 모두 아우른다. 마지막으로 기질은 여러 모로 사회성이 제한하는 한계에 저항하는 것으로, 인간이 지닌 가장 별난 주파수를 표현한다.
    p17.
    다시 말해, 좋은 삶의 열쇠는 고통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을 소화하고 변화시켜 우리가 우리 자신과 더 가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또한 이 능력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과도 더 가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1부. 진정한 나로 사는 삶

    1장. 기질의 부름

    p27.
    더불어 나는 근본적으로, 일반적이 생각과는 달리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함이 실존적인 비극이 아니라, 사실은 엄청나게 귀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싶다.
    p27.
    다시 말해, 실존적이라는 말은 인간이 겪는 근본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다.
    p28.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그저 간단하기마 한 물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여러 면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삶과 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 노력의 정점을 보여 준다.
    p28.
    삶이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명쾌한 정답이란 없으며, 바로 이 점이 인간이란 존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는 것을 당신이 알 수 있도록 말이다.
    p31.
    첫 번째 요점은, 욕망은 어떻게든 돌고 돌아 항상 우리 삶 속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시하거나 억누르거나 피해 가려고 하면 할수록 욕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중략) 두 번째는, 우리가 욕망을 갖고 있지 않은 척할 때만큼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욕망의 힘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략) 세 번째로, 과학과 정의는 욕망에 맞서 자신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것만큼, 욕망이 가진 활력을 들이고자 노력해야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p39.
    많은 이를 괴롭히는 이 모호한 실존적 불안은 우리가 느끼는 욕망과 만족 사이에 근본적인 불일치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마음속의 열망과 일상생활 속 진부한 현실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다. 열정이 두려워 억압하는 경우가 이러한 불일치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의욕망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것 같다.
    p44.
    다시 말해, 열정은 우리가 안일함에 빠지지 않게 하며, 개개인의 독특함을 죽이는 문화라는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 준다.
    p48.
    내 생각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였다. 즉,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 삶이 의미가 없거나, 빛나지 않거나, 이 세상에서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삶의 의미, 빛,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때때로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p49.
    전통적 가치를 담고 있는 권위적인 삶의 의미를 답습하지 않아야만 우리는 자신만의 (또한 잠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전통의 붕괴는 문명의 붕괴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인류ㅢ 지혜가 더 깊고 풍부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2장. 변화의 과정

    p63.
    우리가 세상을 향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외부 자극을 수용해야만 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구명줄이 되기도 한다.
    p65.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주도권을 고통에게 내어 주지 않음으로써 고통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과거의 고통이 현재의 모습을 결정짓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면서도, 과거가 항상 현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p68.
    굳어져버린 일부 정체성은 기질이 지닌 특수성 형성의 첫 단추 역할을 하고, 개인에게 가치 있는 의미라는 풍부한 침전물을 포함하고 있어 중요하긴 하지만, 주변 환경과 미묘한 관계를 맺는 능력을 기르는 데 매우 방해가 된다. 그리고 정체성이 너무 심하게 굳어지면, 우리는 기질을 만들어 나가는 평생에 걸친 작업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굳어진 자아는 경쟁 상대인 다른 자아의 발언권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폭압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한 자아는 우리가 운명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실존적인 다양한 능력을 저하시키는 잘못된 일관성을 보인다.
    p77.
    가치란 신이 주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믿지만, 부당한 차별을 방지하고자 하는 규범이 있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행동 규범이 있다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고) 믿기에 나는 엄격한 상대주의*를 따르지 않는다.
    *상대주의 : 절대적으로 올바른 진리란 없다고 주장하며, 인식/가치의 상대성을 주창한다.
    p81.
    자아는 항상 변화하고 독특한 삶의 기술을 형성하는 과정 중에 있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삶의 (시시때때로 변화하며 떄로는 고도로 실험적인) 시인이 될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을 말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완전한 실현을 이룬 자아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리적·정서적 감각을 예리하게 발달시키면서 격렬한 삶의 흐름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이를 알고 인정하는 사람은 한 자아가 다른 자아를 억제하지 않고 표현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사회적 모습을 지키면서도 기질을 잘 기를 수 있게 된다.

     

    3장. 욕망의 특수성

    p88.
    우리가 지닌 근본적인 취약함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수용하게 하며, 우리의 근본적인 결핍은 삶이 지루해질 틈이 없도록 창의성을 맘껏 펼칠 기회를 열어 준다.
    p89.
    슬픔은 흔히 내면에서 일어나는 동요를 잠재워 우리가 더 높은 자기 인식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슬픔의 밀실에 머무르면 깊은 자기 이해라는 결실을 거둘 수 없다. 슬픔을 조금씩 놓아주기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는 새롭게 얻은 지혜를 활용할 수 없다. 잃어버린 것을 대신할 적절한 대체물을 창의적으로 찾아내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고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픔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상실로 인해 생겨난 공허함은 채워져야만 한다. 공허함은 우리가 대체물을 찾게 한다.
    p100.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자아와 타인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타인을 우리 욕망과 동일시할 때 실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해도, 타인은 결코 우리를 실존적 불안에서 구원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없으며, 우리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 줄 수도, 마법처럼 고통을 가시게 하거나 어떤 최종적인 상태에 이르게 할 수도 없다. 타인이 자아실현의 순간이라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겠으나, 우리를 구원해줄 수는 없다.
    p116.
    그러나 언어가 마음을 괴롭히는 공허함에 대항할 수 있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똑같다. (중략)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마침내 모두 다 끝났다는 느낌 또한 가질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언어에 한계란 없으며, 이러한 성질이 언어의 강력한 힘이 된다. (중략) 어느 쪽이든, 언어는 우리와 우리의 결핍 사이에 일종의 장막을 쳐 주어 우리가 지나친 공허함을 겪지 않게 해 준다. 또한 우리가 불안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않게 하고, 불안의 정도를 낮추어 불안이 우리를 잡아먹는 것을 막는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의 도구라 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애초에 내며의 결핍이란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결핍이 존재하는 한 언어는 결핍을 완화하는 가장 좋은 해독제가 된다. 

     

    2부. 나를 책임진다는 것

    4장. 행동의 청사진

    p121.
    삶이 이렇게 예측 가능해지는 한 가지 이유는 젊은 시절에 선택했던 삶 또는 관계의 무의식적 패턴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은 나이가 들며 성숙해지고 복잡해지는 반면, 이미 짜인 우리의 무의식적인 정서적 각본은 변화에 맞춰 수정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한다.
    p122.
    대부분의 무의식 패턴은 우리가 다 자라고 나서 발달하긴 하지만, 일부는 5세 이전에 깊이 뿌리내린다. 더욱이, 우리의 자아를 혀성하는 모든 경험은 무의식 속에 흔적을 남기기는 하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은 더욱 특별한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트라우마가 우리 정체성을 형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가 되는 이유다. 
    p123.
    자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 의식적으로 접근하기란 불가능하기에 과거를 없던 일로 하고 삶을 재구성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느냐는 우리가 나중에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p132.
    본질적으로 반복 강박의 "논리"란, 우리에게 상처가 되는 시나리오를 충분히 자주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우리는 "괜찮아지리라는" (또한 더 이상 화나거나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 논리가 난해하게 들리겠지만, 연습이 완벽함을 낳는다는 것이 삶의 절대 진리임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비논리적인 것은 아니다. 
    p133.
    하지만 불행히도, 반복 강박은 우리가 열심히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결과를 낳기 어렵다. 우리의 패턴은 완전히 고착되어 고통스러운 시나리오의 미로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즉, 반복을 마냥 거부하는 것이 좋은 시나리오가 아닌 만큼, 아무런 중재 없이 거듭 반복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좋지 않다. 
    p136.
    그러므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불안이 따르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이 자유를 찾게 되었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두근거림은 과거가 현재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현재가 그 과거를 충실히 복제해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p143.
    고난을 이겨 내는 능력에서 삶의 수많은 역경을 대처할 수 있는 개인적인 능력이 생겨난다. 고통을 견디는 것뿐만 아니라 대사(代謝)해 내는, 즉 고통을 소화하고 합성하며 불필요한 것을 여과해 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 육체적 고통이 아닌 이상) 고통이 우리 안에 영원히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하는 정신적 건강함을 지녔다는 뜻이다.
    p145.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슬픔에 대한 회복력을 잘 갖추었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에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쯤 있는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것이 고통, 그리고 반복되는 고통이 꼭 기질에 반하지 않고 오히려 기질을 강화하는 이유다.

     

    5장. 관계의 신비한 힘

    p157.
    더욱 친밀한 관계가 우리와 우리가 외면해 온 모습을 만나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가 낭만적인 동맹의 관계를 갈망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 동맹 관계가 우리 내면의 비밀스러운 방의 문을 열고, 우리 안에서 억압받거나 경시되었던 기질의 측면을 소생시키기 때문이다. 
    p158.
    거짓된 자기표현은 일반적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단이다. 거짓된 자기 표현은 우리가 삶을 잘 살아 나갈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무궁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세상의 영향력을 차단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p163.
    우리는 혼자일 때보다 관계를 맺음으로써 얻게 되는 보상이 더 크다고 생각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이유 없이 관계를 선택한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이러한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p166.
    무엇을 회피할 것인지는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지만큼이나 삶의 전반적인 안녕에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도피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모르고 욕망의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포착하지 못했더라도, 욕망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6장. 책임의 윤리학

    p181.
    우리의 상처는 우리의 잘못된 상황 해석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타인의 행실이 나쁘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략) 이처럼 학대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보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고, 상처에 대한 책임을 가해자 자신이 아닌 다친 피해자에게 전가한다 이는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타인의 만행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사고 과정이 만들어 낸 일이라는 생각과 같다.
    p188.
    나는 먼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에 열중하여 과거를 잊어버리는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놓아 버리는) 것일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p188.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망각은 무책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가장 이해하기 쉽다. 
    p189.
    망각한다는 것은 잔혹 행위를 겪으며 살해, 고문, 폭행, 모욕을 당했던 사람들의 운명보다 우리 마음의 평화를 더욱 중요시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기억한다는 행위는 충실함을 의미한다. 기억은 어떤 사건을 우리의 의식에서 지워 내고 싶은 유혹에도 우리가 그 사건이 남긴 흔적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윤리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p190.
    말하자면, 우리의 현재는 새로운 (그리고 더욱더 보람 있는) 삶을 꾀하기 위해서 과거 속에서 관련된 일을, 즉 현재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떠올려 낸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로서, 자기 삶의 윤곽을 수정해 낼 수 있는 생명체로서 삶을 지탱해 나가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p191.
    현재를 충실하게 산다는 이상은 행보한 현재를 위해 과거의 통찰을 버려 오히려 현재를 무너뜨리고는,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복잡한 역사를 빼앗음으로써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현재에서 과거의 흔적을 더욱 몰아낼수록 과거를 능가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정반대다. 과거가 현재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재에 당면한 문제와 과거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것이다.
    p193.
    우리도 우리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타인들도 똑같이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여, 말하자면 일종의 취약성의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p196.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가장 큰 윤리적 문제는 우리와 현저히 다른 개인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인간" 공동체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지젝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타인이 지닌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장 "극악무도"한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p203.
    앞서 피력했듯, 우리가 더 이상 타인이 겪고 있는 실존적 투쟁을 우리의 일처럼 여기지 못할 때 관용을 베푸는 윤리적 태도를 잃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전쟁 또는 그와 비슷한 폭력의 시나리오는 애초에 우리의 동일시를 방해하려고 만들어졌다.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우리의 분노를 완전히 없애버려 우리는 양심에 거리낌 없이 고통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전쟁의 선전 도구가 적을 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그려 낸다면, 그 이유는 자신과 닮은 존재를 죽이는 것보다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존재를 죽이는 (또는 고문하는) 것이 더욱 쉽기 때문이다.
    p210.
    더불어, 기질을 기른다는 것은 우리 내면의 어둑한 구석에 숨어 있는 굶주린 악마를 상대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악마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다. 그러므로 자기도 자신을 잘 모르겠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폭력의 변명이 아니라, 더욱 광범위한 대인 관계 윤리의 출발이 된다. 이는 상처를 주는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고 각별한 윤리적 각성을 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각성이란 우리도 가끔 느끼듯, 우리가 무의식적인 동기 앞에서 한없이 미약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3부. 나를 잃어버릴 용기

    7장. 열정의 방향 전환

    p215.
    사건이란 희한하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기적과 같기도 하다. 사건은 사물을 다르게 평가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점을 뒤집는다. 사건의 핵심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p227.
    우리가 아무리 즐거운 경험을 갈망한다고 하더라도, 과하지 않은 수준이어야지 비로소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 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삶에서 항상 절제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불행히도, 절제는 사건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질을 지닌다. 사건이란 엄청난 가능성과 극도의 동요를 모두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지만 우리를 낯선 곳으로 밀어내기 때문에, 이 가능성은 항상 우리가 지위를 잃게 될 가능성,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게 될 가능성과 얽혀 있다.
    p231.
    그러므로 다소 관습적인 삶을 살아 왔던 우리 생활에 특별함을 더하는 방법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자세겠다. 우리의 기질만을 우선시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지만, 기질을 따르지 않는 삶도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p237.
    인간은 우리가 조상에게 물려받은 신념이라는 것이 불변의 사실, 진리 또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인간이 수 세기에 걸쳐 얻게 된 깨달음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을 이해하려던 인간이 이루어 낸 가장 최근의 성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인식은 옳고 그름, 고결함과 타락이 구분이 완전히 흐려진 철저히 상대주의적인 세계관에 우리가 더욱 쉽게 빠지도록 만들었다.
    p240.
    그렇게 사건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열정이 흘러들 수 있도록 한다. 우리에게 우리의 믿음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 열어, 우리가 새로운 이상, 가치, 목표, 열망을 세상에 펼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더 위대하고 적극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다. (중략) 이들의 열정은 흔히 말하는 열심히 노력한다는 수준 "이상"의 것으로, 자신의 관심사에 아주 깊이 몰두하게 하고, 이들의 삶 "이상'으로 많은 이의 삶을 이롭게 한다. 그래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때로는 자아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빗방울이 바다에 섞여 없어지는 것처럼, 자아를 대의명분에 내던져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8장. 불안의 긍정적인 측면

    p244.
    또한 행복의 근원은 우리 존재 안에 있다고 믿도록 만들어서 정치에 무관심해지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불행은 사회에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행복에 대한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게 되므로,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그 어떤 정치 활동도 하지 않게 된다.
    p246.
    우리 신체는 매우 쉽게 과흥분의 상태가 되곤 한다. 우리 정신 또한 지나치게 흥분하면 사고 과정과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에는 지독히도 제멋대로 구는 어떤 것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 안에서 생겨나며, 우리를 언제든지 붕괴시킬 수 잇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균형을 잃게 될 위험이 있기에, 평온함이 계속해서 지속된다는 것은 예외적이며 불안을 어느 정도 느끼며 사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다.
    p248.
    평화로운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다. 약간의 평온함은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많은 이가 명상과 마음 챙김(mindfulness)으로 도움을 받는 것 같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세상의 모든 긴장감이 사라진 삶이 좋은 삶이라면서 평온함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강박일 수 있다.
    p251.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고치는 것보다 일어나지도 않은 잠재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친 관심을 기울여 신체를 살피게 되었다. 정말 화가 나는 점은,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p252.
    그러나 삶에서 모든 위험을 없애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따는 생각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삶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처방하려는 우리 사회의 필사적인 노력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인간의 본성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는 비참한 무력함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불안을 삶의 흐름 속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지 못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불안에 대처하는 능력을 분명히 잃어버렸다. 대신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인 조치란 조치는 모두 취한다. 그러나 실용주의적 조치는 우리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주고, 삶이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실에 지나치게 압도당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고심할 기회를 뺏는다.
    p254.
    분명히, 우리는 뒤처질 때가 있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삶을 따라잡을 수 없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가 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위기 상황에 휘말리는 것이 결국엔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삶의 경로를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위기 덕에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p255.
    잠시 멈춰 생각해 보면, 많은 이가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작은 기적과도 같다. 언젠가는 우리 삶도 막을 내린다는 운명은 우리가 짊어지기에 너무 큰 고통이기 떄문이다. 
    p256.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덧없음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p261.
    실패는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실패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가는 우회로와 같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지만, 실패는 우리 각자가 있던 일상적인 살므이 줄거리가 잘 전개되지 않을 때마다 새로운 삶의 줄거리로 우리를 자극한다. 
    p270.
    불안은 이 에너지의 한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불안을 적으로 만들지만, 불안이 항상 우리의 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불안은 종종 우리가 바란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바람을 바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기시켜 준다. 

     

    9장. 에로스적 삶

    p286.
    우리가 영원한 듯한 순간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우리는 어떤 면에서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이 자아 상실의 상태는 우리가 더 본능적인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찾게끔 한다.
    p293.
    결국 창조란 무아지경의 상태와 고통스러울 정도의 끈기가 위태롭게 뒤섞인 것이다.

     

    (★★)
    인생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던 생각을 점검해보기도 하고, 몰랐거나 외면했던 것들을 다시 되살피는 기분.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