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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생활자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28. 10:00
도심 속 다른 집, 다른 삶 짓기
한은화
프롤로그: 아파트 시대의 이상한 주거 르포르타주
p6.
아파트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삶터로 자리매김하는 동안 아파트 밖 동네는 방치됐다. 어렵게 어렵게 내 집을 새로 지을 수 있어도 낙후한 동네 인프라를 바꾸긴 힘들었다. 단지 안의 안락한 생활은 집단으로 뭉친 개인들이 투자한 결과였고, 단지 밖의 험난한 삶은 집단이 되지 못한 개인들이 발버둥 치다 포기한 결과였다.1장. 어쩌다 한옥
부동산이 아닌 공간으로, 잃어버린 내 삶을 찾아서
쾌적한 집콕을 위하여
우리의 삶은 평당 얼마짜리일까
p28.
그러니까 우리가 준비해 간 것은 구구절절한 삶의 가치였는데, 그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는데, 필요한 것은 딱 하나, 계산기였다.p30.
하지만 그렇게 둘러본 늙은 삶터는 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관통하는 이슈는 두 가지, 재개발 또는 재생이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고, 도시의 생명을 연장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같다. 허물고 아파트를 새로 짓거나(재개발),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하는(재생) 식이었다. 여기서 재생은 공공에서 주도한 '벽화 칠하기' 재생이 아닌, 상권이 개발되면서 민간에서 주도한 동네 리모델링을 뜻한다.p31.
아파트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동네는 손대지 않아 정말 낙후됐고, 재생의 현장에는 저렴한 임대료를 쫓아온 젊은이를 따라 자본도 몰려들었다.어느 날 한옥이 내게로 왔다
p45.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살면 된다. 타인의 시선을 섞어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결혼식 대신 집 짓기
티끌, 아니 팬티 모아 집 짓기
p56.
목적 없는 과소비는 버려야 할 쓰레기만 남길 뿐, 결국 돈주고 짐을 사서 공간만 차지하다 버리게 되는 불쾌한 일의 연속이었다.p57.
첫째, 외출할 때 물은 싸 들고 다닌다.
둘째, 옷은 안 산다.
셋째, 밥은 집에서 먹는다.
넷째, 해외여행은 안 간다.
다섯째, 택시는 안 탄다.2장. 오래된 동네의 비밀
아파트 밖에서 마주한 재개발과 재생의 민낯들
그 골목길의 주인은 따로 있다
p64.
땅을 살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두 눈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p69.
정부는 도시 삶터의 기본적인 인프라 투자에 인색하다. 동네는 방치되다 결국 스스로 터 무늬를 지우고, 고달팠던 땅의 역사를 밀어버리고 아파트로 재개발되기를 바란다.p69.
서울에서 시골 같은 동네를 찾았더니, 공공이 외면하고 방치한 도시의 민낯을 만나게 됐다.늙은 삶터의 뒷조사
p82.
아파트가 싫어 택한 서울 시골 동네의 사연은 알면 알수록 기막혔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모드 갈아엎고 새로 짓느라 길의 역사가 끊긴다. 아파트 단지 이전에 어떤 동네가 있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옛 동네에서는 길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방치되고 방치된 역사였다.내 땅이 사라졌다
p87.
오래된 동네의 땅을 살 때 이런 문제를 예방하려면 한국국토정보공사(LX)에 신청해 경계측량 및 현황측량을 하면 된다. 경계측량은 땅의 경계를 GPS 좌표로 찍어주는 것이고, 현황측량은 이 경계를 기준점으로 주변 집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둘 다 하려면 비용이 150만원 가량 든다. 땅을 사기 전에 진행하기엔 부담스러운 매몰 비용이다. 통상적으로 땅을 사고 기존 건물을 철거한 뒤 새 건물을 짓기 전에 경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거치는 절차다.p90.
집을 지으면 어른이 된다고 한다. 늙는다고도 했다. 대체 어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을 떠올리다 든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는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이니 그 안에서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수록 세상은 넓고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알게 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작아진 나만큼 줄어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간극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p91.
"집 짓기는 결국 마음 짓기인 것 같아."
집 짓는 과정에서 무수히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시 지어 올리고, 그렇게 애써도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러면서도 꿈을 꾸고 희망하며 살아가는 삶. 우리는 어쩌다 오래된 동네에서 한옥을 짓게 됐고 마음을 짓게 됐으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Made In 자이'의 세상
p102.
오래 살아야 이웃사촌이 된다. 길도 정비되지 않고,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는, 그리하여 오래 살기 힘든 오래된 동네에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없다. '선 정비, 후 공동체'가 맞다. 낡아 비틀거리는 동네에 공동체 시설부터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낭만적인 시각이다.골목길에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
3장. 집이 나에게 물었다
공간의 치수를 정하고 삶의 테두리를 정리하기
Q. 리더냐, 동무냐
Q. 방이 좁아도 괜찮은가
Q. 방은 몇 개가 필요한가
p134.
"역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집이 제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정감을 주는 집이죠. 비싸야 좋은 집이 아니라 내 의지로 선택한 집이자 작은 부분까지 (직접) 결정한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집에 살 때 자부심과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마음에 안 들거나 원하지 않는 집에 살면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잖아요."Q. 고쳐 쓸까, 새로 지을까
p140.
공간에는 삶이 담긴다. 특히나 집 설계도는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삶의 계획도나 다름없다.Q. 몇 밀리미터면 충분할까
p149.
집 짓기는 거대한 프로젝트 같지만 어찌 보면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다. 아주 사소한 결정을 놓고서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결정들이 쌓여 집을 만들기에, 좀처럼 '쿨'해질 수 없다.p153.
쿨한 건축주는 애초부터 될 수 없다. 집 짓기에서 두번째 기회란 거의 없기 떄문이다.4장. 단지 밖은 정글이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한옥을 박제해 두는 정부를 고발합니다
한옥은 왜 다 똑같이 생겼을까
p165.
한옥은 양극화가 심한 시장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옥은 하이엔드 하우스이거나 헌 집이다 한옥은 미를 사랑하는 재벌의 세컨드 하우스이거나, 곧 철거될 옛날 집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서울시는 한옥 육성책으로 이 지원금을 꺼내 들었다. 서울에 사는 보통의 사람들이여, 돈을 지원해 줄테니 한옥을 지으세요. 한옥보존구역 안에 있어 기존의 한옥을 부수고 양옥으로 짓지 못하는 집주인들이여, 이 지원금으로 한옥을 고쳐 사세요. 한오그이 대중화에 앞장서세요.(★)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책에서 말하는 지원이라는 부분이 생각보다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지로서의 한옥은 요즘의 생활과 맞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는 생활 한옥의 기준을 보존 한옥과 구분할 필요가 있고, 그에 따른 지원도 차등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아마 이렇다면 결국에 일이 늘어난다고 불평하는 누군가가 존재하겠지만...
21세기에 조선 한옥이라니
전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p198.
결국 사는 사람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 한옥이 주인공이어서는 명맥을 이어가기 힘들다. 한옥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옛것의 가치와 현대 생활의 변화를 두루 살피고 공간에 담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프로 불편러의 탄생
p211.
어쩌면 사이좋은 이웃사촌은 현실 세계에서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파트가 폐쇄적인 공간이어서,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엘리베이터로 집까지 가는 동안 이웃을 만날 틈이 없어서 이웃사촌을 만들지 못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래된 동네에서도 이웃사촌은 없다. 이는 공간의 문제보다 신뢰의 문제일 것이다. 신뢰는 오래 알고 지내야 생긴다. 한 사람을 알고 믿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오늘날 우리는 뜨내기로 살아간다. 전제 만기로, 아이들 교육 때문에, 아파트값이 오르기를 기대하며 옮기고 또 옮겨 간다.5장. 드디어 짓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파란만장 좌충우돌 집 짓기 여정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우리 집은 초울트라 럭셔리 하우스
땅 밑 아무개씨 이야기
"아, 그 크레인으로 지은 집?"
p244.
공사 내내 재야의 고수를 정말 많이 만났다. 그들이 묵묵하게 지내온, 때론 견뎌온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내공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먹먹해졌다. 소규모 건설 현장은 이런 노장들의 힘으로 근근이 굴러가고 있다.사모님으로 콴툼 점프
p251.
집 짓기는 사람과 맺는 관계의 집합체였다. 각 공정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품이 더해져 집이 모양새를 갖추어 나갔다.너의 이름은
6장. 기어이 살다
나의 집, 나의 삶, 나의 생태계
한옥 생활자, 40세 집구석 은퇴 라이프
p298.
15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늘 남의 일상만 쫓으며 살았다.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삶이었다. 나의 시간은 주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는 데 쓰였다. 한옥을 짓고 나서, 한옥에 살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전처럼 예측할 수 없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다만 이전보다 잘 쉰다. 주말이면 집구석 은퇴 라이프에 모두한다. 날이 좋다고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꼭 가야 할 것만 같은 조바심이 생기지 않느다. 밖에서, 차 안에서, 허투루 썼던 시간을 아끼게 됐다.한옥은 불편한가
p307.
우리에게 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쉼은 실로 다양하다.네모반듯하지 않아도 괜찮아
p316.
꽉꽉 채우지 않아도 좋다. 틈이 주는 활력이 크다. 집 짓는 동안 내 마음을 괴롭혔던 삐뚤뺴뚤한 땅과 그렇게 작별했다. 살아보니 네모 반듯하지 않아도 괜찮다.농약 사는 여자
서촌 시골살이
p334.
간편한 삶도 좋지만, 그 삶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삶은 다채롭고 그 속도도 다양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서촌 시골살이의 느린 속도가 꽤 마음에 든다. 이 오래된 공간과 사람을 통해 삶을 더 배워나가고 싶다.남과 비교할 수 없는 집
에필로그
세 가지가 없는 집
(★★)
집을 지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마음을 고이 접었다. 나는 공동주택의 삶에 지쳐 독립된 집을 가지고 싶다 생각했는데, 허허벌판이 아닌 이상 층간 이웃은 없더라도 벽간 이웃은 여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테리어도 엄두가 안 나는 나는 저자 부부의 활약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다. 운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결국 꼼꼼하게 귀찮지만 끝까지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모습 때문에 무책임한 시공자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같고, 반대로 나는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집은 집대로 날리는 부실시공을 하게 될까 겁이 덜컥 나버렸다.
나이를 먹으면 없던 공포감도 느끼는 재주만 느는 것 같다.
(+)
최근에 다른 집과 관련된 책을 읽고 북토크도 참석했다. 내가 찾는 집...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 안에서는 그러한 집이 없다. 나는 그저 안전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집. 넓지 않아도 되는 집. 나의 생활이 침해 받지 않는 그런 집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