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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 어쩌면 스무번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3. 17:19

    편혜영

    어쩌면 스무번

    처형의 입금이 또 늦어졌다. 아내는 기다리지 않고 안부를 묻는 척 전화를 걸었다. 처형에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잔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참았다. 그러는 언니는 제대로 살고 있느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중략) 그러고 보면 인생을 아는 건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

     

    호텔 창문

    '네가 누구 덕에 살아났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운오는 언제나 확률을 생각하며 참았다. 형은 어차피 자신보다 일찍 죽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위였고, 보통은 그렇게 되기 마련이니까.

     

    홀리데이 홈

    긴 인생을 두고 봤을 때 이진수가 군이이었던 것은 잠시 뿐이지만 어떤 일은 그럴수록 평생 지속되었다. 
    별안간 장소령은 박민오가 남편을 처음 소령님이라 불렀을 때 느낀 거북스러움이 무엇 때문인지 깨달았다. 병원에 누워 있던 이진수의 부하를 본 후로 장소령은 누군가 이진수를 알아보면 겁부터 났다.

     

    리코더

    어떤 말은 내내 품고 있지만 결코 소리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는 것도.

     

    플리즈 콜미

    술은 미조가 온종일 잠을 자든 소리 죽여 울든 내버려두었다. 오히려 잠은 자도록 도왔고 마음껏 울도록 도와주었다. 미조에게 그렇게 해준 건 술이 유일했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면 느긋하고 애틋하게 지난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짧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조금 더 마시면 금세 낙담에 빠져 들었다. 취하면 사정은 더 나빠졌다.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찾아왔고 알고도 간과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후견

    신원을 도용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애당초 신상을 만천하에 공개한 건 아버지라고. 우리가 불리해서 키운 전장은 언제나 우리 자신을 낱낱이 드러낸다고.

     

    좋은 날이 되었네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며, 흘러가는 건 다 좋은 거라고, 좋은 건 다 흘러간다고 말했다.

     

    미래의 끝

    어떤 더한 일이 생겨야 엄마가 아줌마를 찾을지 생각했다. 무슨 일인가 생기기를 바랐고 더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다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아줌마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시련이 닦치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 도움이 필요치 않아서가 아니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

     

    작가의 말

    내게 있어서 소설은 언제나 처음에 쓰려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자리이거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멈춘다.
    이제는 도약한 자리가 아니라 착지한 자리가 소설이 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 낙차가 소설을 쓰는 나를 조금 나아지게 만든다는 것도, 그렇기는 해도 나아진 채로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 같다.

     

    (★)
    단편 영화를 몇 편 본 기분으로 소설책을 읽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