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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어쩌면 스무번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3. 17:19
편혜영
* 문학동네
단편 영화를 몇 편 본 기분으로 소설책을 읽었다.(+)
최근에 과거에 읽었던 한국 작가들의 소설 모음집을 몇번 다시 읽으면서 이 책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으니 기억이 나는 것도 나지 않는 것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떄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 개인 생각 및 의견
어쩌면 스무번
(★) 넓은 옥수수밭 근처로 이사온 부부. 귀촌에 대한 꿈을 접게 해준 단편 중 하나라고 할까? 관심이 너무 많은 이웃, 이상한 종교단체(옥황상제), 그리고 남의 집 마당까지 스스럼 없이 들어와서 강매하듯 설치를 유도하는 CCTV 업체까지... 아마도 아픈 장인이 아니었다면 주인공은 이 마을을 뛰쳐나왔을지도 모르겠다.
p24.
처형의 입금이 또 늦어졌다. 아내는 기다리지 않고 안부를 묻는 척 전화를 걸었다. 처형에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잔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참았다. 그러는 언니는 제대로 살고 있느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중략) 그러고 보면 인생을 아는 건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호텔 창문
(★) 평생 누군가 나를 살려줬단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까? 죄책감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오히려 반감을 유도할 뿐인듯. 평소 좋은 행실이 아니었던 사람도, 죽음으로 의사자가 되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 우리는 죽음에 관대할 때도 인색할 떄도 떄가 맞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p54.
'네가 누구 덕에 살아났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운오는 언제나 확률을 생각하며 참았다. 형은 어차피 자신보다 일찍 죽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위였고, 보통은 그렇게 되기 마련이니까.홀리데이 홈
(★) 처음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는 반듯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군대라는 폐쇄된 조직 안에서 각자의 길과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부대 납품 단가 부풀리기에 가담한 사람들과 이를 고발하는 양심 있는 사람. 결국 이진오는 대표로 책임을 지고 제대를 하고 고깃집 사장이 되었으나 육우를 한우로 파는 등의 영업 비리로 결국 빚이 늘어나면서 담보를 잡은 아파트를 팔고 교외 집을 팔기 전까지 살기 위해 이사. 이후 이진수의 부하라며 미심쩍은 방문을 했던 박민오와 낯선남자는 이진수의 과거 폭력성을 언급하며 과거 비리에 대한 내부 고발을 한 뒤 입원했던 부하의 친구들이라는 사실이 암시적으로 드러나는데...
p64.
긴 인생을 두고 봤을 때 이진수가 군이이었던 것은 잠시 뿐이지만 어떤 일은 그럴수록 평생 지속되었다.p81.
별안간 장소령은 박민오가 남편을 처음 소령님이라 불렀을 때 느낀 거북스러움이 무엇 때문인지 깨달았다. 병원에 누워 있던 이진수의 부하를 본 후로 장소령은 누군가 이진수를 알아보면 겁부터 났다.리코더
(★) 자발적으로 사라지고 싶은 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감리사 수오는 벽돌 붕괴로 다친 미화원의 유가족으로부터 갖은 오해와 비난을 받고 책임지듯 회사를 퇴사했는데...알고 보니 무영과 수오는 학창시절 수련장 건물 붕괴 사고를 겪었고, 수오는 근처에 같이 깔려 있던 친구의 죽음을 목도했던 경험이 있었다는 것... 어쩌면 수오의 자발적 실종은 자신의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사회로 나왔다가 근래의 사건으로 인해 터져버린 것이 아닐까?
p108.
어떤 말은 내내 품고 있지만 결코 소리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는 것도.플리즈 콜미
(★) 유학중 만난 남자와 결혼하여 중국에 살고 있는 딸을 만나러 온 미조. 딸의 집으로 모르는 남자의 전화가 줄기차게 걸려오고, 미조는 마치 치매진단을 받고 돈 문제가 있었음에도 사라져버린 남편과 관련된 전화가 아닐까 확대해석을 하게 된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것이 없다는 간단하고도 무심경한 이유로 그저 외면해버리는, 어쩌면 요즘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현대 가정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p114.
술은 미조가 온종일 잠을 자든 소리 죽여 울든 내버려두었다. 오히려 잠은 자도록 도왔고 마음껏 울도록 도와주었다. 미조에게 그렇게 해준 건 술이 유일했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면 느긋하고 애틋하게 지난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짧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조금 더 마시면 금세 낙담에 빠져 들었다. 취하면 사정은 더 나빠졌다.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찾아왔고 알고도 간과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p131.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걸까. 자신이 그랬듯 딸 역시도 도울 수 없으니 문제삼지 않기로 한 것일까.후견
(★) 아이를 입양 보낸 적 없는 소명의 명의를 도용한 누군가에 의해서 네덜란드로 입양된 사라가 자신의 친모라고 생각하여 연락이 오는데... 소명은 어떻게 명의가 도용되었는가... 이유를 찾다가 전학생을 떠올리게 되었고, 교내 게시된 상장에 적혀 있는 자신의 주민번호를 보게된다. 과거에는 졸업앨범에도 주민번호가, 그리고 가수들은 앨범에도 주민번호를 기재하기도 했었던... 개인정보보호의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래도 게시를 할 거면 뒷번호라도 가려주고 게시를 하던가, 아니면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런 것들을 한번쯤은 신경써주는게 맞지 않을까?
p158.
신원을 도용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애당초 신상을 만천하에 공개한 건 아버지라고. 우리가 불리해서 키운 전장은 언제나 우리 자신을 낱낱이 드러낸다고.좋은 날이 되었네
(★) 성실하던 어머니를 떠난 윤이 자신의 삶에서 한탕을 기대하는 사이 빚을 지고 심지어 돌보던 아이의 아버지가 학대를 한다며 가위로 상해를 입히는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한번에 큰 돈을 가지겠단 욕심을 부린 것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남은 인생이 빚을 갚기 위해 살아야 하는 인생이 되버린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들어 슬퍼졌다. 과연 나라면 어떤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아마도 지금의 나는 죽음을 쉽게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에서 이모라며 친근하게 다가오다가 명함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주민번호까지 기재하며 빚 변재를 요구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p183.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며, 흘러가는 건 다 좋은 거라고, 좋은 건 다 흘러간다고 말했다.미래의 끝
(★) 건설현장 일용직 아빠가 책임자가 된 현장에서 사고가 나자 책임지고 일을 그마두면서 가출을 하는데... 생계를 위해서 결국 엄마는 아이를 대학 보내기 위해 가입했던 학자금 보험을 손해보면서 해지하고... 이런 사이에 보험 아줌마와의 하루를 보내며 다양한 집을 방문하는 아이의 눈에 비친 피곤하고 비루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p207.
어떤 더한 일이 생겨야 엄마가 아줌마를 찾을지 생각했다. 무슨 일인가 생기기를 바랐고 더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다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아줌마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시련이 닦치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 도움이 필요치 않아서가 아니다. 그럴만한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작가의 말
p210.
내게 있어서 소설은 언제나 처음에 쓰려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자리이거나 전혀 다른 지점에서 멈춘다.
이제는 도약한 자리가 아니라 착지한 자리가 소설이 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 낙차가 소설을 쓰는 나를 조금 나아지게 만든다는 것도, 그렇기는 해도 나아진 채로 삶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