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코리안 티처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1. 08:31
서수진
봄학기 - 선이
선이는 학생들의 이름을 소리 내 읽어보았다. 원래 이름에서 너무 멀어져버린 것 같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까?
선이는 그 순간 새로 시작한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월급을 떼먹는 악덕 사장에게 따질 수 있도록 한국어를 익혀야 한다. 비인간적인 욕설을 할 때 알아챌 수 있도록, 불법적인 시급을 줄 때 항의할 수 있도록, 아니, 처음부터 그런 곳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름 학기 - 미주
고모들이 미주 흉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못됐으니까 혼자 씩씩하게 잘 사는 거야"라고 미주를 두둔해줄 때는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나는 너와 같은 남자들을 안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 그렇게 해서 여자를 겁주는 남자들. 여선생을, 여직원을 다르게 분류하고 낮잡아보는 남자들. 모든 걸 신체적 힘의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남자들.
가을 학기 - 가은
매일의 수업이 발견이었고, 경탄이었다. 그래서 출근길이 늘 기대되었다.글
가은은 창밖으로 몸을 더 빼내어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을 찾았다. 길에는 단 하나의 은행잎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은행잎을 모두 훔쳐가버렸고, 누군가가 계절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다.
겨울 학기 - 한희
한희의 경우 영국인 남편이 한희의 영어 실력을 증명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H대 어학당 책임 강사 면접에서 국무과 교수는 한희의 남편이 영국인이라고 하자 "영어는 잘 하겠네"라고 반색했다. 한희는 제이콥과 한국어로 대화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럴 때 한희는 여전히 차갑고 물살이 센 강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기 역시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하희와 다른 방식으로 웃고, 다른 방식으로 경탄하고,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에서 살아갈 것이다.
겨울 단기 - 선이
우리는 왜냐하면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에 왔어요. 하지만 한국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돈을 쓰는 사람입니다.
(★)
어학당을 다녀보지 못해서인지 이 곳의 삶은 또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점이 있긴 했다. 나는 보통은 다들 잘 사는 유학생들이 배우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따지고 보면 해외에서 어학당을 다니는 사람들 역시 현지에서 일하기 위해 언어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이 소설의 내용이 실제로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직장인은 어디든 비슷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