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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6. 김지은 입니다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11. 04:38

    김지은

    "도와줄게"
    그 한마디에 막연히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 깨졌다.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과연.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폐쇄된 조직 안에서 느꼈던 무기력과 공포에서도 벗어났다.
    다만 부여잡고 지키려던 작은 나의 일상도 무참히 사라졌다.
    조직은 폐쇄적이었다. 단순히 일을 해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후보와의 경쟁을 통해 이겨야 했기에, 캠프 안의 의사 결정은 수직적으로 이루어졌고 캠프에서 겪는 일들은 작은 것조차 절대 밖에 누설하면 안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레 위축되고 경직되어 갔다.
    종종 위법과 편법을 목격했다. 선거라는 것이 원래 이런가 싶었다. 앉아서 안되는 일 투성이인 무서운 곳에 온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때가 많았다.
    미투 이후 모든 과정은 위력 그 자체였다. 나는 사실을 밝히면, 물론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내 생각은 순진했다. 내가 상대해야할 가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권력 조직이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고,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그 말 한마디에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성폭력 피해자는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다.
    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 측, 특히 가해자의 가족들, 직장동료들의 2차 가해는 이런 식으로 비슷하게 이루어진다고 들었다. 보통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신상 털기, SNS 털기, 메신저 털기 등은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가해자가 첫번째로 하는 작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2차 가해, 2차 피해의 아주 대표적, 기록적 사례로 꼽힐 정도로 그 심각성이나 피해가 너무도 크다고 했다.
    피해자의 곁에 서기로 결심한 이유 중에 하나도 일단 쪽팔렸다. 너무 창피했다. (중략) 그리고 둘째로는 최책감이 너무 심하게 들었다. (중략) 피해자가 그 일을 겪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그 죄책감.
    성폭력 신고는 쉽지 않다.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후 2년 가까이를 직장도 없이 재판에만 매진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혔지만, 피해자의 일에 함께하는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
    직장 내 성폭력이 아닌 일종의 정치적 스캔들이 되어 시끄러워진 사건이라서 책을 선뜻 선택해서 읽지 못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실, 어느 한쪽의 말을 들어서도 안되는 사건이지만, 정작 언론이나 온라인 상의 댓글 등에서는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말들이 좀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저자가 일반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만약 그 상사로부터의 부당한 폭력/폭언을 당했다고 한다면, 우리의 첫 반응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즘에는 오히려 진실이 화제성에 묻혀 파악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배경을 지우고 사건이 발생했다고 단순화 한다면 오히려 객관적으로 문제를 밝히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그 어떤 편견도 없을 것이다.
    이전에 회사에서 성희롱을 하시는 임원의 소문이 있었다. 술자리나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 여자 직원을 따라오라고 하면서 듣기에 낯뜨거운 남자들의 잡담을 듣게 하거나, 다소 일부 친한 사람들의 사적인 저녁 모임에 여자 직원을 불렀으나, 선약을 핑계로 피하는 그녀에게 '고과'를 운운하는 것.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인지를 못했다는 것. 본인은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것. 편하게 대해서 그랬다는 것. 하지만 말하고 싶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
    나 역시 사회 초년생 때 이상한 이야기를 사무실에서 가끔 듣기도 했다. 사실 그 때는 내가 이런 부분에 너무 무지해서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면서 넘겼는데 여자 상사들이 항의를 하면서 그게 나쁜 말이었다는 것을 배웠을 정도이다. 아, 저런 말에는 강하게 반발을 해야 하구나. 내가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내 무지가 나를 피해자로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 잘못을 배우지 못해 저지르는 저들의 무지가 결국 가해자가 되는 발단이 될 것이다.
    몰랐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몰랐다는 것은 전적으로 나만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사실 우리가 정말 몰랐을수도 있는 것은 직/간접 경험이 불가능한 것, 예를 들어 평생 젓가락 구경을 못한 사람이 젓가락의 용도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미 회사에서는 성폭력과 관련한 교육을 매년 했었고, 임원 등이라고 해서 그 교육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비슷한 사례로 이슈가 된 사람들도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가끔 평판이 좋은 사람들은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실수들을 범하기도 하다. 마치 '정신이 나갔었나봐'이다. 정신이 나갔다고 해서 면책을 받는 부분도 나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사망한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고서는 업무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술을 많이 마셔서 등의 핑계를 정말 핑계일 뿐이다.
    이런 부분은 남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이 상대보다 권력을 더 갖고 있다고 해서 자행하는 나쁜 일들 자체가 모두 문제가 된다는 기본적인 사고. 그리고 어느 일방적인 편들기가 아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는 자세. 이런 것들이 향후에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비슷한 이슈는 잊혀질 때 쯤이면 여기 저기서 툭툭 튀어나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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