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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3. 만질 수 있는 생각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5. 3. 26. 10:00

    이수지

    * 비룡소

     

    들어가는 글

    p9.
    나의 마음도 그럴까. 나의 하루하루를 남김없이 소진하면 다시, 스스로 꽉 차오를까.
    p9.
    매일을 채우고 소진하다.

     

    1. 그림의 언어로 열리는 세계

    p17.
    스무살짜리는 매일 하는 자아 탐구도 힘들었다. (중략) 지금보다 더 어리석었던 나는 진지한 데 가서 진지하다고 화냈고, 가벼운 데 가서 가볍다고 화를 냈다.
    p18.
    매력적인 그림책들은 무거운 것을 가볍게 살짝 들어 올려 단순한 마음으로 전하는 힘이 있었다. (중략) 자기도 모르는 예술에 휘둘린 예술가보다는, 자기를 구성하고 포장하여 내놓을 줄 아는, 세상 이치에 바른 창작자가 더 좋아 보였다.
    p46.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오는 낯선 감정이 스며든다.
    p51.
    동물원은 신기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배우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갇힌 자연에 대한 쓸쓸함과 연민을 접하는 장이기도 하다.
    p54.
    기억은 윤색되기 마련이고, 실제로 어디까지가 진짜였는지 흐릿하다.
    p57.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면서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어쩌면 '어른'은, 우연히 자기 바로 앞에 선 작은 영혼에게 그때 당면한 최선을 다해 주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일을 계속하는 모습을 그저 보여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멘토라는 말은 흔하지만, 스스로 멘토가 되고자 한다고 멘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단숨에 드러나지 않지만 말없이 삶으로 보여주는 수많은 멘토가 있다.

    * <그림으로 글쓰기>, 유리 슐레비츠, 김난령 옮김, 다산기획, 2017

    p74.
    원칙이 공고한 세계에서는 변칙을 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곤 하다.
    p75.
    앞선 모든 사람과 모든 작업이 선생이다. 때로는 반동도 동력이 된다. 악당은 나의 성장을 돕고, 강렬한 뒤끝을 불러와 나의 내부의 땔감이 되어 준다. 그다음에는 내 멋대로 아름답게 타오를 뿐이며, 그 불꽃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2. 온종일 달리고 싶다

    * 낭중지추 (p95) : 주머니 속의 송곳, 탁월한 사람은 눈에 띈다

    p105.
    보여 주기 식으로 규모만 키우고 밖에서 유명인들 모셔 오느라 애쓰지 않고, 원하는 사람들이 시작해서 원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 있을 때, 그것이 정말 '축제'이지 않을까.
    p107.
    우리는 항상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구나.
    p114.
    확실한 것은, 애들 보면서도 일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는데, 그 리듬을 타려면 어찌 되었든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유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충 면피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닌, 제대로 된 작업을 내고 싶다면 말이다.
    p117.
    그러나 머리는 날고 있되 몸은 지상에 딱 붙어 있었다. 삼십 대 후반의 그때 나는, 그랬다.
    p118.
    삶을 지속해서 선택에 직면하게 만든다. 단풍 물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고,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모두 가볼 수는 없다.
    p119.
    어느 길로 가든 그 길의 생이 있고, 똑같이 내가 가지 않은 다른 길 위의 나를 상상해 보겠지. 인생으 ㄴ그야말로 트레이드 오프.
    p125.
    때떄로 문제들은 자리를 바꿔 보는 것만으로 상당 부분 해결될 때가 있다. 세상의 당연한 것드렝 대해 "원래 그래"라고 하지 않고 다시 새롭게 말해 본다.
    p132.
    글이 있으면 작가의 이야기가 되지만, 글이 없으면 독자가 자기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p134.
    그러므로 내 책에는 여백이 많다. 정말 주용한 것은 말도 할 수 없으니 비워두는 것이다.
    p147.
    산과 바다라는 큰 이름을 가지며 우선 이름 때문에라도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려 애쓰게 되지 않을까요. 너른 마음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p152.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에요. 이름을 짓고 부름으로써 그 존재재와 나 사이에 구체적인 접점이 마련되고 이제 서로 더는 떨어질 수 없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 되는 것이죠. 그 접점은 한 번 생겨나면 양쪽에 흔적으로 남아요.

     

    3. 만질 수 있는 생각

    p182.
    종이책은 '만질 수 있는 형태의 생각'이다. 종이책의 촉감과 책을 넘기는 행위는 '책을 보고 있는 나'를 인식하게 된다. 책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p190.
    책이란 참으로, 손으로 읽는 물질이기도 한 것이다.
    p193.
    종이 여러 장이 탄탄하게 엮여 구성된 것이 책이다. 페이지 하나하나 독립된 세계를 표상한다. 책 속에 완벽한 세계들이 켜켜이 들어 있는 것이다.
    p204.
    하지만 서로 충분히 시간을 들여 애쓰다 보면, 결국 어느 공통의 장소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 <우리 다시 언젠가 꼭> (비룡소, 2022)

     

    4. 네 개의 책상

    p259.
    나에게 볼로냐는 살아 움직이며 계속 변화하는 하나의 텍스트이다.
    p263.
    그렇게 징글징글한 시간을 다 보내고 그 끝에 책이 '나왔다'라는 사실이 부러운 것이다.
    p275.
    책 읽기는 놀이입니다. 독서가 교육이 될 때 책 읽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p277.
    '네 생각은 어때?'라는 말은 놀이를 여는 말입니다.
    p287.
    "나는 이 이야기를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었지만, 그림으로 담아내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I could picture it, but wasn't capable of capturing it in pictures.")
    p290.
    스스로 작가라는 의식이 없는 작업은 후집니다. 작가의 자아만 너무 보이는 작업도 후집니다. 좋은 작업과 후진 작업, 두 가지만 존재할 뿐이지, 그 작업이 '작가주의'적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p292.
    작가주의란 말이 모호한 건, 작가가 한 말이 아닌데 작가에게 묻기 때문이다.
    p305.
    이십 대에는 밖으로 쏘다녔고 삼십 대에는 내 것 하느라 바빴는데, 사십 대는 통역을 하는 나이라고 했던가, 어떤 외부의 에너지를 모으는 중간 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세계가 이미 있지만, 여전히 정의되지 않은 어떤 보글보글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이들이 함꼐 모이기만 해도 예상치 않은 폭죽이 터질 것 같았다.
    p315.
    보라,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쉽다. 그림책은 사소한 데서 시작되며, 그래서 엉뚱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
    제주도 독립 서점에서 고른 책이었다. 그림작가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고, 국제상을 수상한 분이라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른 업에 종사한 한 사람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나도 언젠가 한번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단 생각도 했다. 우연히 몇달 뒤, 용산의 한 호텔 지하에 있는 서점에서 이수지 작가의 책들을 모아 놓은 큐레이션 매대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보니,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그리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쓰고 싶고, 특히 그림을 잘 그리든 못그리든 그림 일기라도 쓰는 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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